"밭에 겨우 물을 대고 있지만 언제 끊길지 몰라 속이 타들어갑니다. 추석이 다가오는데 수확은커녕 그동안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갈까 밤잠도 설치고 있습니다."
경천저수지를 이용해 농사를 짓고 있는 권모(55·문경시 동로면) 씨는 바짝 마른 밭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경천저수지는 만수일 때 2만7천200톤(t)을 담을 수 있지만, 10일 기준 저수량은 5천여t에 불과하다. 저수율 21.7%로 평년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심각' 단계다.
경북 도내 농업용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올해는 태풍이 제대로 오지 않았고 장맛비마저 제 몫을 하지 못했다. 한국농어촌공사에 따르면 전국 3천424개 농업용 저수지의 평균 저수율은 65.9%다. 이 중 가뭄 재난 조치가 필요한 곳은 660곳에 이른다.
◆저수율 20%도 못 채운 곳 속출
경북은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 도내 692개 저수지 평균 저수율은 49.8%로 강원도(56.5%)보다도 낮아 전국 최저치를 기록했다. 평년 대비 73% 수준으로, 절반 이상이 사실상 고갈 상태에 놓였다. 이 가운데 저수지 32곳은 '심각' 단계로 분류됐다. 심각은 저수율이 40% 이하라는 의미다. 농민들 사이에서는 "올해만이 아니라 내년 농사도 장담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
경북의 위기는 수치에서도 드러난다. 저수율이 20% 이하인 저수지가 14곳에 달하며, 이 중 13곳은 '심각' 단계다. 영덕 봉산저수지(13.7%), 청송 청운저수지(15.0%), 구미 옥관저수지(15.4%), 울진 삼율저수지(17.5%), 경주 왕신저수지(20.0%) 등이 대표적이다.
농어촌공사 안동지사가 관리하는 23개 저수지 중에서도 만운, 신양, 위동, 단호 등 4곳이 저수율 40%를 밑돌며 위기 상황에 놓였다. 특히 가장 큰 규모의 만운저수지는 25.8%에 불과하다. 내년에 확장공사가 예정된 단호저수지도 올해 가뭄을 버티기엔 역부족이다.
현장을 지키는 직원들은 밤낮 없는 비상근무에 돌입했다. 안동지사 관계자는 "지금은 한 방울의 물도 아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대로라면 내년 농업용수 공급조차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정치권도 대책 촉구
기상청은 지난 9일부터 12일까지 전남·경남·제주에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 했지만, 경북 북부에는 5~20㎜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단기성 호우로는 이미 바닥난 저수지를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전문가들은 댐 중심의 대책 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지역의 한 환경공학 전문가는 "대형 댐은 광역 용수 공급망을 조절할 수 있지만, 농업용 저수지는 농민 생계와 직결된다"며 "단기적으로는 긴급 급수 지원과 양수장 가동이 필요하고, 장기적으로는 저수지 보강과 관리 체계 전면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정치권도 위기를 주목하고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최근 강릉을 찾아 피해 현장을 점검하며 대책 마련을 논의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간사 정희용 의원은 "강릉뿐만 아니라 전국 어디서나 가뭄 피해가 확산될 수 있는 만큼 정부는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간이양수장 설치, 저수지 물 채우기, 직접급수와 지하수 임시관정 설치 등 용수 확보 대책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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