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정동교회 역사관에 다녀왔다. 개신교 선교 140주년 기념예배 후였다. 서울 정동에 위치한 정동교회는 1885년 아펜젤러 선교사에 의해 건립된 개신교(감리교) 최초의 교회로 이승만 전 대통령도 섬겼던 유서 깊은 교회다. 대한제국 때 건립된 베델예배당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었다.
권사님의 도슨트를 받아 베델예배당 안으로 들어가 봤는데, 고풍스런 파이프오르간이 아담하지만 묵직하게 단상 위를 장식하고 있었다. 파이프오르간 뒤편에 작은 방이 있는데, '3·1운동' 때 독립선언문을 몰래 프린트한 장소란다. 설명해 주시는 권사님의 얼굴에 자부심이 넘쳤다.
기독교는 사회적 종교다. 개인 구원은 물론이고, 교인은 공동체의 구원과 성화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다. 권력의 탄압이 심해질수록 기독교는 빛을 발한다. 생명과 바꿀 수 있는 절대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3·1운동' 대표 33인 중 기독교 대표가 16명이었다. 그 엄혹한 시대에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할 수 있었던 것도 기독교 네트워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유관순 열사 등 이화학당, 배재학당 학생 등이 전령 역할을 했고, 전국의 교회당이 지역 거점인 또 다른 베델예배당이 됐다. 이후 상동교회를 비롯한 교회들이 독립운동의 교두보가 됐고, 이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해방 후 독립국가의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1948년 5월 31일 열린 제헌국회 개원식이 기도로 시작됐던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한국전쟁 때 기독교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교회는 분연히 일어섰고 많은 희생을 감내했다. 많은 교회가 불탔고, 목사와 성도들이 죽임을 당했다. 결국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 지금의 번영에 기초를 만들었다. 이후 빈곤과 맞서는 산업화와 독재에 저항한 민주화운동에서도 기독교를 빼놓을 수는 없다. 민주주의 나무만 피를 먹고 자라는 것이 아니다. 예수의 피 위에 세워진 교회는 로마제국 이래 시련과 희생의 역사를 끊임없이 겪었고, 이를 통해 성장했다.
곧 개천절이다. 개천절은 하늘이 열린 날이고 '광명의 날'이다. 몇 년 전 개천절 <조국집회>가 그랬다. '단군이래 최대 인파'가 광화문에 나와 '민주'와 '정의'를 외쳤다. 위기 속에서도 목소리 높여 외치던 그곳에 어김없이 교회가 있었다. 좌파 집회에 민노총이 있었다면, 민주 우파 집회에는 기독교가 있었다. 결국 '정의의 반대말'이 된 조국은 감옥에 갔고, 그를 옹호하던 문재인 정부는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기독교가 함께한 '국민'의 힘이 만들어낸 도도한 역사의 물결이다.
그러나 역사의 발전은 단선적이지 않다. 끊임없이 부침을 거듭하며 나선형으로 전진한다. 며칠 전 교계 원로에 대한 압수수색이 있었다. 이어 부산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가 구속됐다. 예배 설교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며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했단다.
국회의원은 국회 발언에 대한 면책특권을 갖는다. 목사의 교회 설교에 대한 최종 심판은 '하나님의 몫'이다. 법률로 선언하지 않더라도, 인류가 역사 속에서 확립한 상식적 원칙이다. 그래서 엄혹했던 독재정부 때도 세속 권력은 종교에 공권력을 투입하는데 신중했다. 87년 민주화운동이 명동성당을 거점으로 진행된 이유이기도 하다.
혐의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초범이면 벌금형 정도의 선고를 받는다는데 이례적이다. 대형 교회 목사로서 도주의 위험도 없는데, '도주의 우려'가 구속 사유란다. 수많은 교인이 반발했고, 사회 지도층 인사들도 우려를 표하며 연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야당은 연이어 기자회견을 하고, 부산 세계로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렸다.
'종교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이기 때문이다.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등 우리 헌법 최고 가치들도 역사적으로는 모두 '종교의 자유'로부터 시작됐다. 종교개혁과 수십 년의 종교전쟁으로 '신앙의 자유'가 공인됐고, 이를 기반으로 위의 자유들이 함께 인정됐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종교의 자유'고, '종교의 자유'는 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탄압과 시련에 당당하게 맞섰던 선대 교인들의 피 값이다. 한때의 특정 정치집단이 역사를 막거나 되돌릴 수는 없다. 다시 찬란한 개천절 광명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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