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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채성준] 국군의 날, 군의 사기와 명예를 다시 세워야 할 정치의 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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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성준 서경대 교수

채성준 서경대 교수
채성준 서경대 교수

오는 10월 1일은 제77회 국군의 날이다. 6·25전쟁 당시 국군이 38선을 돌파한 역사적 날을 기념해 1956년 제정된 이래, 국군의 헌신과 희생을 기리는 상징적 기념일로 이어져 왔다. 올해는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처음 맞는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 정치권과 국민 모두 국군의 현실을 직시하고, 국가 안보의 미래를 재설계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한반도 주변 안보 환경은 여전히 위중하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은 진행 중이고, 최근 북·중·러 군사 협력 강화는 정전체제를 흔들며 '제2의 냉전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국익 중심' 국제질서 재편과 함께 주한미군 규모 및 역할 조정마저 대두되고 있다. 동맹이 '조건부 지속'의 불확실성이 되는 현실에서 더 정교한 자주국방 전략과 외교적 균형 감각이 절실하다.

더 심각한 위기는 내부에서 비롯된다. 정년 전 전역 신청 간부 수가 올해 상반기에만 2,800여 명으로 역대 최대이고, 그중 80% 이상이 부사관과 위관급 장교다. 간부 휴직자 수도 3,800명을 넘어서 일선 부대에선 인력 공백으로 훈련과 행정 기능에 지장이 초래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인구소멸에 따른 병력 축소도 불가피하다. 게다가 장교·부사관 충원이 난항을 겪으면서 질적 저하로 인한 지휘체계 전반의 불안정과 작전 수행 능력 약화가 우려된다.

이는 단순한 인사행정 문제가 아니다. 군 내부의 사기와 자긍심이 무너진다는 신호다. 여기에 '비상계엄 사태'는 군이 처한 신뢰의 절벽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회 청문회와 수사에 군 수뇌부가 소환되고 '내란 및 채상병 특검'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조직 전체가 어려움에 직면했다. 젊은 장교들 간에서는 "내가 지켜야 할 국가는 무엇인가"라는 회의감마저 퍼지고 있다. 정치적 갈등이 군 조직을 흔든 결과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강한 국군은 단지 외부의 위협을 억제하는 존재가 아니다. 외교, 경제, 사회 전반을 지탱하는 국가 생존의 기반이다. 우리 군의 전투력 향상을 위해선 당장 무기 첨단화나 전략도 중요하겠지만 국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사기 진작이 시급하다.

지금처럼 군이 안팎의 복합적 위기를 겪는 시기일수록, 군 자체의 자정 노력 만으론 한계가 있다. 정치가 응답해야 하고,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 특히 이재명 정부가 감당해야 할 정치·안보적 책무는 막중하다.

첫째, 군 인력 기반의 회복이 요구된다. 간부 이탈이나 지원율 저하는 수치상으로 끝날 게 아니다. 내년부터 초급 간부 보수를 6.6% 인상하는 등 처우 개선에 나설 계획이라지만 그것만으론 역부족이다. 복무 여건과 인사 체계, 전역 후 경력 관리 등 군을 지속 가능한 직업군으로 만드는 전반적인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 복무 중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교육 시스템과 민간 연계 프로그램 또한 강화되어야 한다.

둘째, 문민 국방장관 체제에서 추진되는 군 개혁은 정치적 쇼가 아니라 실효성과 신뢰 회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장병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군의 자율성과 조직문화를 존중하는 리더십이 요구된다. 외부의 신선한 시각이 내부 저항을 극복하려면 설득력 있는 방향성과 진정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셋째, 안보는 정쟁의 도구가 아니라 국가 생존의 조건이라는 점을 정치권 전체가 인식해야 한다. 비상계엄 사태를 둘러싼 정치와 군 간의 불신을 바로잡고, 어떠한 이유에서든 정치가 군을 흔들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군은 특정 정권이 아닌 헌법과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다.

넷째, 대외 안보 전략 역시 보다 정교하게 수립돼야 한다. 미·중 패권 경쟁 및 북·중·러 밀착 등 급변하는 안보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략적 청사진이 요구된다. 자주국방 역량을 강화하되, 한미동맹과 지역 협력의 균형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국가 안보는 자존 또는 굴종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국군의 날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다. '어떤 가치 위에 우리 군이 서 있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지는 날이어야 한다. 지금도 전방 철책선에서 묵묵히 조국을 지키는 한 병사의 눈빛 속에서 우리는 한국의 미래를 본다. 그 눈빛이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정치가, 정부가, 그리고 우리 사회 전체가 짊어져야 할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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