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Z세대라고 하면 늘 새로운 것만 좇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이들이 반응하는 것은 오래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재개봉한 영화, 레트로 패션에 이어 클래식 음악도 이제 그 흐름의 중심에 서있다. 사실 클래식 음악이야말로 수백년 동안 인류에게 검증받아 엄선된 명작들의 집합체다. '고전'이라 불리는 이 음악은 젊은 세대의 취향과 새로운 공연 소비 방식, 그리고 지역 공연장의 노력과 맞물려 어느새 '힙(hip·멋지다는 뜻의 신조어)'한 콘텐츠로 부상하고 있다. 고전이 '새로운 고전'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다.
◆보고, 듣고, 읽는 클래식 붐
'58초'. 올해 3월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열린 임윤찬의 피아노 리사이틀 티켓 오픈부터 전석 매진까지 소요된 시간이다. 조성진, 임윤찬, 손열음, 선우예권, 양인모 등 최근 '클래식 붐'을 이끄는 이들은 아이돌 못지 않은 티켓 파워를 지녔다. 이처럼 세계 무대를 누비는 젊은 연주자들의 활약은 클래식과 공연장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한국관광공사 한국관광데이터랩에 따르면 올해 3월 20대의 '세대별 핫플레이스' 상위 10곳 중 4곳이 공연장과 미술관 같은 '문화생활시설'이었다.

특히 Z세대 사이에서 부는 '클래식 붐'의 배경에는 클래식을 딱딱하지 않고 흥미롭게 느끼게해주는 SNS 채널의 역할도 크다. 대표적으로 구독자 12만명을 보유한 유튜브 채널 '클래식좀들어라'는 위트 있는 썸네일과 상황별 큐레이션으로 클래식 플레이리스트를 만든다. 출근길·크리스마스에 듣는 클래식부터 무서운 클래식, 꿀잠자는 클래식 등 50여 개가 넘는 콘셉트의 플레이리스트가 마련돼있다. 그중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 드보르작 피아노 트리오, 베토벤 교향곡 7번,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담은 플레이리스트 '걍 살면 되지 않을까 클래식'은 조회수 80만회를 돌파하며, 유튜브를 통해 클래식을 감상하는 Z세대의 새로운 소비 방식을 잘 보여준다.



또한 초등교사로 근무하다 현재 미국에서 음악교육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탱로그'는 '클래식 계의 개그 유튜버'로 불리며 구독자 12만명을 보유하고 있다. 직접 연주까지 선보이며 드뷔시, 바흐, 모차르트 등 거장들을 유쾌하게 풀어내는 영상을 보다보면 어느새 클래식에 입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앞서 소개한 두 채널은 나란히 클래식 입문서를 출간해 교보문고, 예스24 등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에도 올랐다.
복잡한 현실에서 차분히 숨을 고를 수 있게 해주는 점도 젊은 세대가 클래식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로 꼽힌다. 교사 김보민(30) 씨는 "주로 어릴 때 애니메이션에 쓰였거나 SNS에서 접한 클래식을 지금까지도 자주 듣는다"라며 "최근에는 윌리엄 볼콤의 '우아한 유령(Graceful Ghost)'을 가장 즐겨 듣는데, 연주자의 해석에 따라 곡의 느낌이 달라지는 점이 흥미롭다"고 전했다. 이어 "작업할 때 가사가 없는 클래식을 들으며 집중하거나 머리가 복잡할 때 찾아 듣는다. 머릿속에 새로운 걸 채워넣는게 아닌, 선율에 복잡한 생각을 흘려보내다 보면 오히려 비워지는 느낌을 준다"고 덧붙였다.

◆퓨전·로비 공연…문턱 낮춘 시도
공연장에서 연주자의 손끝을 따라 클래식을 감상하는 일은 또 하나의 새로운 경험이 된다. 공연장들은 최근 젊은 세대의 클래식 공연 관람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가장 흔하게는 전통적인 클래식 공연은 아니지만 애니메이션·드라마·영화·게임 등 미디어에 기반한 OST 음악과 클래식을 접목한 공연들이 클래식 입문을 돕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올해 상반기 공연시장 티켓판매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상반기 클래식 티켓판매액 상위권 10개 작품 중 절반이 미디어에 기반한 음악 공연이었다. 그중에서도 1위부터 3위까지 '진격의 거인 오피셜 콘서트: Beyond the Walls World Tour', '에반게리온 윈드 심포니', '해리포터와 혼혈 왕자 인 콘서트'가 각각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지역 공공예술단인 대구시립교향악단(이하 대구시향)은 '시민행복나눔콘서트', '토요시민콘서트'와 같이 시민과 직접 만나는 공연들을 영화음악, 뮤지컬, 오페라 음악, 팝송 등 대중적인 레퍼토리를 중심으로 꾸려 오케스트라 연주에 대한 관심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있다.
대구시향 관계자는 "평소에도 꾸준한 고정 관객층을 보유하고 있지만 클래식 음악이 영화, 드라마, 예능 등의 매체에서 소재로 활용될 때 일시적으로 관람객 수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라며 "특히 지난해 말에 열린 제511회 정기연주회는 오페라와 뮤지컬 갈라 콘서트 형식으로 구성돼 연말 시즌 젊은 관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대구시향은 만 24세 이하 청년층까지 포함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공연 관람료 50% 할인 정책을 시행해 경제적 부담 없이 클래식 공연을 접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고 있다.


이 밖에도 기존 공연이 이뤄지는 시간대와 장소를 벗어나 관객들과 더 가까이 다가가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수성아트피아는 매달 평일 오전 소극장에서 '마티네 콘서트'를 열고 있다. 여유로운 낮 시간대,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 안에 클래식과 연주자들의 해설이 더해진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공연이 끝나면 관람객들에게 커피와 빵이 제공된다.
또한 공연장 로비에서는 매주 화·목요일 오후 2시, 무료 특강 프로그램 '로비톡톡'이 열린다. 클래식을 비롯해 뮤지컬, 건축, 미술, 여행 등 다양한 분야를 주제로 한 명사특강으로 매회 7~80여 명이 신청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성아트피아는 최근 프리미엄 리빙 브랜드 '풀티'와 협업해 피아노 공연 무대 위에 가구·조명을 등장시켜 클래식 소극장을 감각적인 쇼룸처럼 연출하는 새로운 콘텐츠를 28일까지 선보인다.
대구시향 또한 정기연주회 시작 전 오후 7시부터 약 10분간 대구콘서트하우스 로비에서 단원들이 직접 기획한 실내악 공연을 무료로 선보이고 있다.

◆놓치기 쉬운 공연 에티켓 3
클래식 공연이라고 하면 흔히들 까다롭고 엄격한 규칙들을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은 기본적인 예절을 지키는 것에서 시작된다. 단정한 복장을 갖추고 공연 시간보다 여유 있게 도착하는 것, 연주가 시작되면 휴대폰을 무음 모드로 바꾸고 자리 이동을 삼가는 것이 그 예다. 일상 속 배려처럼 기본적인 것들이지만 공연을 보다보면 여러 번 마주하는 흔한 상황이기도 하다.
관객들이 가장 많이 실수하는 부분은 악장과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는 것이다. 클래식 공연에서 연주되는 교향곡이나 협주곡은 여러 곡으로 구성돼있어, 마지막 악장이 끝나야 온전히 한 작품이 끝난다. 악장 사이에 바로 박수를 치는 것이 아니라, 지휘자의 지휘봉이 내려가고 연주자가 악기에서 손을 완전히 뗀 순간이 박수 타이밍이다. 공연 전 공연장에 비치된 프로그램북을 통해 악장 구분을 미리 파악하면 도움이 된다.
건조한 공연장 환경 탓에 불시에 찾아오는 기침도 관객들의 큰 고충거리다. 공연 전 물이나 사탕으로 목을 촉촉하게 해두면 공연에 잘 집중할 수 있다. 실제로 뉴욕의 카네기홀을 비롯한 여러 해외 공연장에서는 로비에 목캔디를 두고 관객들이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도록 한다.
또한 대부분의 공연장은 저작권 문제로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커튼콜이나 앵콜 무대 역시 별도의 공지가 없는 한 촬영을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작은 매너 하나가 그날 공연장에서 함께한 모든 이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공연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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