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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안중곤] 대구시 신청사 건립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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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곤 대구시 행정국장

안중곤 대구시 행정국장
안중곤 대구시 행정국장

"나무가 심어 놓으니까 죽고 심어 놓으니까 죽고 해서 안 되겠다 싶어서 도지사님한테 예산 2.5배를 달라 해서 제대로 심어 놓았단다. 청석(靑石)에 나무 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후세를 위해서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어."

할아버지께 들은 업무와 관련된 유일한 일화이다. 어릴 때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는 대구 중구 대봉동 근처에 살았다. 한집에 사는 건 아니었지만 가까이에 살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신념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 할아버지 댁에 자주 인사 드리러 갔고, 서울에서 서예대회 행사라도 열리면 할아버지 손을 잡고 새마을호를 타고 서울 구경을 이른 나이 때부터 할 수 있었다. 어릴 때라 도청이 어디에 있는지 청석이 뭔지도 몰랐지만 어쨌든 여러 번 말씀을 하셔서 꽤 자랑스러워하시는 일이구나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대구시 공무원이 돼 대구시청 산격청사에서 근무하면서 알게 되었다. 대강당 뒷동산에 간격이 일정하게 청석 위에 심어져 있는 나무들을 보자마자 이곳이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던 그곳임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필자의 할아버지는 경상북도 농정국장을 역임하시고 1979년 퇴임하신 고 안규식 국장이시다.

할아버지가 나에게 남기고 싶었던 교훈은 다음 세대를 위해서 매사를 꼼꼼하게 처리하라는 것이었다. 산격청사의 영선(營繕·건물 유지보수) 업무를 오랫동안 보셨던 할아버지의 손자가 이제는 수명을 다한 건물을 뒤로하고 대구 시민과 대구시 공무원들을 위한 새로운 청사를 짓는 일을 맡고 있다. 운명처럼 말이다.

필자는 외국 출장과 근무를 통해 한 도시에서 시청이라는 건물이 가지는 상징성과 의미에 많은 고민을 할 기회를 가졌다. 샌프란시스코시청처럼 유명 관광지인 경우도 있었고, 뉴욕시청처럼 주변의 고층 건물들에 비해서 아담한 경우도 있었다. 또한 유럽 소도시의 시청들처럼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건물 등 다양한 특징들이 있었다. 공통점은 한 도시의 시청은 시민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고 그 도시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잘 표현하는 건물들이라는 점이다.

대구시 신청사는 '시민을 위한 미래지향적이고 친환경적인 청사'라는 비전을 바탕으로 효율적인 공간 구성과 열린 공간 조성을 목표로 삼았다. 대구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잘 담아내는 작품들을 제출해 달라고 설계공모 예정사들에 요구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건축 전문가들이 공정하게 선발돼서 심사위원회가 꾸려졌고, 이분들이 국제설계공모 출품작 14개 중에 드디어 최종 당선작을 선정했다. 이러한 절차들은 국토교통부 건축설계공모 운영 지침에 따라 전국의 모든 공공건축물 공모 절차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공통된 기준이다.

이제 청사건립자문위원회가 구성돼 좀 더 의견을 모으고 다듬는 과정을 거쳐 내년 연말이면 착공에 들어가게 된다. 시비 4천500억원이 들어가는 대형 사업이면서 대구의 미래를 견인해 나갈 중요한 건물을 짓는 일이기도 하다.

대구시 신청사 건립 사업은 2019년 숙의민주주의라는 전례 없는 과정을 통해 시민들의 중지를 모아 위치가 결정됐고, 설계 심사 또한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되었다고 자부한다. 이제는 우리 모두의 힘을 모아 새로운 청사를 건립하는 데 한마음으로 매진해 나가야 할 때다.

가을바람이 산들 불어서 사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들이 가끔 소리를 낼 때가 있다. '중요한 일이니까 후대를 위해서 꼼꼼하게 추진하라'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담겨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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