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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오류에 책임 떠넘기기까지... 흔들리는 출산특례 청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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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부동산원 청약홈 화면
한국부동산원 청약홈 화면

과거 주택청약에 당첨된 적이 있어도 아이를 낳으면 또 한 번 청약을 신청할 수 있는 '출산특례 제도'가 허술한 제도 설계로 청약 신청자의 불만을 낳고 있다. 이 와중 한국부동산원과 건설사, 국토교통부는 피해 구제는커녕 책임 떠넘기기를 하고 있다는 비난까지 사는 중이다.

17일 매일신문 취재에 따르면 경기 하남에서 자가 아파트에 사는 A(33·남) 씨는 지난 2일 현대건설이 경기 과천 주암동에 짓고 있는 'TheH 아델스타'의 신혼부부 특별공급분 주택청약에 당첨됐다. 2023년 5월 결혼한 A 씨는 다음달 첫 아이를 낳았고 현재 임신한 아내와 둘째를 기다리는 와중 주택청약 당첨이란 기쁜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미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A 씨였지만 주택청약을 신청할 수 있었던 건 지난 3월 국토부가 도입한 출산특례제도 덕분이었다. 출산특례제도란 지난해 6월19일 이후 아이를 낳거나 아이가 들어선 가구의 주거 안정을 돕기 위해 도입된 제도로 주택청약 시 특별공급 기회를 한 번 더 주는 등 출산율 제고를 위한 정책의 일환이다. 과거 특별공급 당첨 이력이 있더라도 청약이 가능하며 1주택 소유자라 하더라도 '기존주택 처분 조건'으로 청약할 수 있다.

직장에서도 가깝고 네 가족이 살 수 있는 보다 넓은 집 청약에 당첨이 된 A 씨는 아내의 출산을 앞두고 기쁜 소식을 확인한 뒤 곧장 비보를 전달 받았다. 곧바로 부적격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분양 담당자는 A 씨에게 "온라인 청약 과정에서 '출산특례' 항목을 선택하지 않았다"며 부적격 이유를 밝혔다.

A 씨는 어이가 없었다. 청약 신청 과정에서 '출산특례'를 고를 수 있는 선택지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원인은 부동산원의 주택청약 홈페이지 '청약홈'의 '괴상한 설문'에 있었다. 청약홈에서 주택청약을 신청하면 첫 설문은 "본인 및 세대구성원 중 과거 특별공급 당첨 이력이 있습니까?(단, 배우자의 혼인 전 당첨 이력은 제외)"다.

A 씨는 결혼 전이든 후든 특별공급에 당첨된 적이 없었다. A 씨 아내는 결혼 전 한 번 당첨된 적이 있었지만 '배우자의 혼인 전 당첨 이력은 제외'라는 조건 때문에 A 씨가 고를 수 있는 건 "아니오"밖에 없었다. 상세 설명을 봐도 "세대 내 특별공급 당첨 이력이 배우자의 혼인 전 특별공급 당첨 이력뿐인 경우에는 본 문항에서 "아니오"를 선택"하라는 말뿐이었다. 이에 A 씨는 당연히 "아니오"를 선택했다. 그 뒤부터 그 어디에도 출산특례 선택 화면은 나오지 않았다.

확인 결과 첫 설문에 "예"를 눌러야만 출산특례를 고를 수 있는 선택 화면이 나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부동산원의 설문 설계 오류다.

부동산원은 "본인 및 세대구성원 중 과거 특별공급 당첨 이력이 있습니까?"란 질문을 던져 특례적용자와 특례비적용자를 먼저 구분하고 특례적용자를 다시 혼인과 자녀 출생 기준으로 혼인특례와 출산특례로 나누려는 의도에서 설문 문항을 만들었다. 특별공급 특례에는 혼인특례와 출산특례가 있다. 하지만 첫 설문에 '단, 배우자의 혼인 전 당첨 이력은 제외'라는 조건을 붙이는 바람에 A 씨 같은 사람을 특례적용자로 구분하지 못했다.

쉽게 말해 A 씨 본인이 과거에 당첨 이력이 있어서 "본인 및 세대구성원 중 과거 특별공급 당첨 이력이 있습니까?(단, 배우자의 혼인 전 당첨 이력은 제외)"라는 질문에 "예"를 선택했다면 출산특례 적용자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A 씨는 본인이 아닌 배우자의 혼인 전 당첨 이력만 있었기에 "아니오"를 선택했는데 부동산원은 A 씨에게 출산특례 적용 여부를 묻지 않았다.

이에 대한 부동산원 답변은 간결했다. "이상하면 콜 센터에 문의했어야 했던 것 아닌가"라는 답이었다. 물론 부동산원 입장에서도 방어 논리는 있었다. 청약 신청이 끝난 뒤 최종 화면에 '특례신청 여부: N'이 표시돼 있었기 때문이다.

A 씨가 처음 청약을 신청했을 때 최종 화면엔 '특례신청 여부: N'이 나왔다. 이에 A 씨는 신청분을 취소하고 다시 신청했는데도 출산특례 선택 화면이 나오지 않아 "부동산원이나 현대건설이 자체적으로 적용을 시키려나 보다"하고 넘어갔었다.

현재 A 씨는 부동산원과 현대건설을 믿었던 자신을 탓하고 있다. 아직 기회는 있다.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등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A 씨에게 소명 기회를 부여한 뒤 실질 요건 충족 여부를 중심으로 적격 당첨자를 판단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A 씨는 현대건설과 국토부 핑퐁 게임에 빠져 버렸다. 현대건설은 "출산특례 실질 요건을 모두 충족한다. 다만 국토부 등 상위기관에 문의해 당첨자 적격 의견 등의 확인을 받아오면 이를 반영하여 부적격 판정 철회 또는 적격 판정을 하겠다"고 했다.

이에 A 씨는 현대건설을 설득해 국토부로 적격 의견 요청을 넣었다. 하지만 답은 오지 않았다. 청약 제도를 총괄하는 국토부 담당자는 "그런 판단은 사업 주체인 현대건설이 알아서 해야 한다. 우리가 현대건설에 무언가 확답을 주기도 좀 뭐하다"며 "또한 청약홈 실무는 한국부동산원 담당"이라고 답했다.

A 씨는 소송도 고려하는 중이다. 하지만 아내의 한마디에 의지는 꺾이고 있다. 그의 아내가 "이번 일로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몸이 안 좋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A 씨에겐 곧 태어날 둘째가 걸린다.

A 씨는 "저출산 시대에 출산특례는 국가가 신혼부부에게 내민 희망의 끈이다. 그러나 지금 같이 사용자를 탓하고 소극행정이 만연한 구조라면 그 끈은 너무도 쉽게 끊어지고 말 것"이라며 "청약홈 설문 설계에 오류가 있었다고 인정하고 보완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제도의 기본은 형식이 아니라 실질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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