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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공원에 민주통일 임대아파트를 [가스인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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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대통령실에 처음 갔을 때 "서울 한복판 이렇게 좋은 땅을 그 동안 군인들만 누렸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매력적인 땅이었다. 청나라·일본·미국 군대가 차례로 주둔했던 용산기지는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관통한 도심 속 거대한 녹지 공간이다.

용산기지가 완전히 반환되면 이곳에는 국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약 300만㎡ 규모의 국가공원 '용산공원'이 조성될 예정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제정된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은 이 부지를 반드시 공원으로 만들고 다른 목적으로 매각하거나 전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단순 행정계획이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전신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넘던 시절 국회가 특별법을 통과 시켜 확정된 국가적 합의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서는 이 용산공원 부지에 임대아파트를 짓자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박주민 의원은 2021년 "용산공원 예정부지에 공공주택을 짓는 방안 논의하자"며 특별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했고 이재명 대통령 역시 2022년 대선 과정에서 용산공원 부지에 공공주택 10만 호 건설을 공약한 바 있다.

최근 박 의원이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하자 다시 용산공원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이 나온다. 용산 지역 커뮤니티에는 "박주민에 비하면 오세훈은 선녀" "박주민 되면 용산 박살난다"는 등 '주민 우려'가 수십 건씩 올라오고 있다. 박 의원은 과거 특별법 개정 시도 때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았다. 오히려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적극 추진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현재 용산공원 인근 녹지 분포도(위)와
현재 용산공원 인근 녹지 분포도(위)와 '용산 민주통일 임대아파트 예상도'라는 제목으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공유되고 있는 지도. 네이버지도 & 인터넷 커뮤니티 갈무리

이 문제는 단순히 용산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용산공원은 대한민국의 역사와 미래가 걸린 국가적 프로젝트다. 뉴욕시는 150여 년 전 맨해튼 중심부의 사유지를 대규모로 매입하고 강제 수용까지 강행하며 센트럴 파크를 만들었다. 만약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섰다면 오늘날의 맨해튼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주어진 공원마저 헐어내고 아파트를 지으려 하고 있으니 도시를 바라보는 안목이 150년 전 미국인들보다도 못한 것 아닌가.

게다가 용산공원 일대는 이미 서울의 문화 거점으로 도약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최근 연간 관람객 400만 명을 돌파하며 세계 주요 박물관 순위에 올랐다. 여기에 국립중앙박물관을 품은 용산공원이 완성된다면 서울은 역사와 문화, 녹지가 결합된 세계적 도시 브랜드를 갖게 될 것이다. 반대로 이 부지가 임대아파트 단지로 전락한다면 우리는 단순히 공원 하나를 잃는 것이 아니라 서울의 품격과 국가 경쟁력을 키울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다.

물론 서울의 주택난은 심각하다. 그러나 그 원인은 박원순 전 시장 시절 수년간 재개발·재건축을 막은 정책 실패에서 비롯된 문제다. 잘못된 공급 억제정책의 후과를 만회하겠다며 국가적 자산인 용산공원을 희생시키는 건 책임 전가이자 당장의 편의를 위해 후대가 누려야 할 자산을 빼앗는 행위다. 아직도 녹물이 나오고 주차난 때문에 고통 받는 재개발 필요 단지가 줄을 서 있다.

이미 인터넷에는 '용산 민주통일 임대아파트'라는 풍자 이미지가 떠돌고 있다. 이는 단순한 농담이 아니다. 국가적 유산이 선거용 포퓰리즘으로 하루아침에 임대아파트 단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시민들의 깊은 불안을 담고 있다. 더 불안한 건 요즘 정치판 때문이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라는 상식적 사고를 뛰어넘는 일만 벌어져서다. 아무 생각 없이 넓은 공원이나 노닐 수 있는 한가한 날이 이렇게 간절하던 때가 있었나 싶다.

조상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정책보좌관 / 법률사무소 상현 대표변호사

조상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정책보좌관 / 법률사무소 상현 대표변호사
조상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정책보좌관 / 법률사무소 상현 대표변호사

* 가스인라이팅(Gas Enlighting)은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칼럼 공간입니다. '가스라이팅'은 1930년대 가스등을 사용하던 시절 파생된 용어입니다. 가스등을 조금씩 어둡게 해 누군가를 통제하는 걸 의미하는데요 '가스인라이팅'은 그 반대로 등불을 더 밝게 비춰주자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자주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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