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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산과 무너지는 중] 해법은 결국 불가항력 의료사고 형사처벌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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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대한산부인과의사회에 배상한도 상향 제안
환자단체연합도 "의사 사명감 갖게 지원해야"

대구 시내 한 산부인과 신생아실에서 간호사들이 2023년 1월 새해둥이를 돌보는 모습. 매일신문DB
대구 시내 한 산부인과 신생아실에서 간호사들이 2023년 1월 새해둥이를 돌보는 모습. 매일신문DB

정부가 분만 중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 배상 한도를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인 가운데, 산부인과 의사들은 "형사 책임 면제가 산과 현장을 살릴 근본적인 해법"이라며 보다 근본적인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의료계와 환자단체 모두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의 개입 확대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접근 방식에서는 여전히 의견 차를 보이고 있다.

◆형사책임 면제…산과 붕괴 해법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지난달 21일 "정부가 의료진 과실 없이 발생한 분만 의료사고에 대해 배상한도를 10억 원까지 높이고, 배상책임보험 가입을 전제로 국가가 7억 원까지 보상하는 안을 제안받았다"고 밝혔다. 이는 기존 제도보다 국가의 책임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내용으로, 분만 의료사고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 강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의료계는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을 '긍정적인 변화'로 평가하면서도, 실질적인 산과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형사 책임 면제 논의가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산과는 의료 특성상 돌발적인 합병증과 예측 불가능한 위험이 많아, 의료진의 과실이 없음에도 불가항력적으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산과 교수와 전공의가 분만 중 산모 사망사고로 형사 기소된 사건은 의료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이번 사건을 두고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 사망사건 이후 소아청소년과 붕괴가 시작된 것처럼, 이번 기소가 산과 붕괴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효신 영남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국가가 의료사고의 불가항력성과 인과관계의 불명확성을 인정하지 않고 형사 책임을 계속 묻는다면, 산모와 신생아를 위해 마지막까지 현장에 남아 있는 의사들마저 떠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의료계는 형사 면책과 함께 진료 수가 현실화, 근무환경 개선 등 실질적인 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의료소송 위험이 큰 데다 수익성까지 낮은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 한, 젊은 의사들이 산부인과를 기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혜민 칠곡경북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의료소송 위험을 줄이고 진료 수가를 현실화해야만 산과 인력이 안정적으로 확보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환자단체, 보상제도 마련해야

환자단체는 의료계가 주장하는 '형사 면책'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환자단체연합은 지난달 17일 기자간담회에서 서울의 한 대학병원 산과 교수의 형사 기소 사건을 언급하며 "의료과실이 없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형사 고소나 민사소송뿐"이라며 "피해자가 소송 외의 절차로 보상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지 않는 한, 형사 고소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환자단체 역시 고위험 필수의료의 공공성 강화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을 개인 의료진이 아닌 사회 전체가 분담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는 점에는 의견을 같이한다. 의료계와 환자단체 모두 의료사고 피해자와 의료진이 소송 외의 방법으로 조정·보상을 받을 수 있는 공적 기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대구의 한 산부인과 의사는 "정부가 지금이라도 의료 현장의 불안을 줄이고 젊은 의사들이 산과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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