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북한 스마트폰, '오빠' 치면 자동 수정…"동지로 바꿔"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BBC 공개 영상에 충격…"남한=괴뢰지역" 자동변환 기능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노동당 창건 80주년 경축행사가 9일 평양 능라도 5월1일경기장에서 진행되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0일 보도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No Redistribution]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노동당 창건 80주년 경축행사가 9일 평양 능라도 5월1일경기장에서 진행되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0일 보도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No Redistribution] 연합뉴스

북한이 언어 표현을 통해 외부 문화 유입을 차단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남한식 억양과 단어 사용을 '이색적 요소'로 규정하고, '평양문화어' 사용을 생활 전반에 걸쳐 철저히 지킬 것을 주장하는 내용이 북한 언어학계의 공식 논문을 통해 공개됐다.

9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북한 과학백과사전출판사가 최근 발간한 언어학 전문지 '조선어문' 최신호에는 김일성종합대학 언어학부 김영윤 부교수의 논문이 실렸다. 해당 논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언급한 언어생활 기조를 언급하며 "모든 사회 성원들이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평양문화어를 기준으로 삼고, 이색적인 요소를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문 제목은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밝히신 언어생활에서 이색적인 요소를 쓸어버릴 데 대한 사상의 정당성"으로, 이색적 언어가 체제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을 전면에 내세웠다. 김 부교수는 "평양문화어는 주체성과 민족성이 구현된 고귀한 사상정신적 재부"라며 "우리 고유의 언어 규범에서 벗어난 표현은 말하는 사람의 품격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문명한 언어생활 기풍에 악영향을 준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2023년 제정한 '평양문화어보호법'을 통해 남한식 언어 표현을 불법화했다. 이 법은 남한식 억양, 호칭, 단어를 '괴뢰말 찌꺼기'로 규정하고 있으며, 특히 남한 드라마 속 흔히 사용되는 '오빠'라는 호칭은 금지 대상이다. 북한 당국은 해당 표현이 "비굴하고 간드러지며 말꼬리를 역스럽게 끌어올리는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언어 통제는 단순한 말의 문제가 아니라 체제 유지와 직결된다는 인식도 담겼다. 논문은 언어의 순결성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사상과 문화, 제도를 지키는 사업"이라고 명시하며, 언어 정책이 이념 및 체제 보호의 핵심 축임을 강조했다.

북한 당국의 이러한 입장은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외부 콘텐츠의 영향을 차단하려는 목적과도 맞닿아 있다. 남한의 드라마, 음악, 일상 언어가 일종의 '사회적 균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언어 규제를 고강도로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6월 서울에 위치한 유엔인권사무소가 주최한 '북한 인권 상황 증언 행사'에서도 북한 내부에서의 언어 단속 실태가 공개됐다. 2023년 5월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탈북한 김일혁 씨는 "제가 아는 22세 청년이 남한 드라마 세 편과 K팝 노래 수십 곡을 유포했다는 이유로 공개 총살됐다"고 증언했다. 그는 "석 달에 두 번꼴로 공개 처형이 있었고, 한 번에 12명씩 총살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성 탈북민은 "2015년부터 본격적인 휴대전화 검열이 시작됐고, 저장된 연락처에 '오빠'라는 단어가 있거나 하트(♥) 이모티콘이 붙은 경우도 제재 대상이었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증언은 외신을 통해서도 확인된 바 있다. 영국 BBC 방송은 지난 6월 북한산 스마트폰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키보드 입력 시 '오빠'라는 단어는 자동으로 '동지'로 바뀌고, "친형제나 친척에게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라는 경고문이 함께 표시됐다고 전했다. '남한'을 입력하면 '괴뢰지역'으로 자동 변환되는 기능도 탑재돼 있었다.

북한의 언어 규제는 단순한 언어 정책 차원을 넘어, 외부 정보 유입을 철저히 차단하고, 내부 사상 통제를 강화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단어 하나, 억양 하나까지 통제 대상이 되는 북한의 언어 현실은 외부 문화에 대한 철저한 경계심과 체제 유지를 위한 내부 통제 의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