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족오는 태양을 숭배한 고조선 민족의 토템
중국 고대 신화 속에 등장하는 삼족오는 태양조(太陽鳥)의 다른 이름이다. 태양에 까만 흑점이 있는데 고대 사람들은 이것을 검은색의 까마귀가 태양에 살고 있다고 인식했고 여기서 일반 까마귀와 차별화된 세 발 달린 신성한 까마귀 삼족오가 출현하게 된 것이다.
'한국사강좌1'(2001) 고대편 제4장 '삼국의 문화'에서 이기동은 "고구려 고분벽화에 자주 나오는 삼족오는 그 자체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태양의 아들임을 자처한 고구려 왕자의 성격과 결부시켜 생각할 때 매우 흥미 있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기동은 평남 중화군(中和郡) 진파리(眞破里) 1호분에서 나온 금동제의 관모가 중앙부에 태양을 상징하는 삼족오를 원형 무늬로써 배치한 것을 주목하면서 "고구려의 공예기술이 매우 발달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말한 것을 본다면 삼족오가 태양을 상징하는 태양조라는 인식은 강단사학계에서도 공유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삼족오에 대한 고대 문헌 기록을 살펴보면 한나라 때 사상가 왕충(王充·BC 206~AD 220)의 '논형'(論衡) 설일(說日)에 "태양 가운데 세 발 달린 까마귀 삼족오가 있다(日中 有三足烏)"라는 내용이 나온다.
'회남자' 정신훈에는 "태양 가운데 준오가 있다(日中有踆烏)"라는 기록이 보이는데 동한의 학자 고유(高誘)는 "준오는 삼족오를 말한다"라고 주석하였다.
중국 한족의 건국신화에서는 삼족오 관련 기록을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까지 황하문명 유적에서 삼족오와 관련된 유물이 발굴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 황하 중류 중원지역의 중요한 상고시대 문화로 인정되는 앙소문화(仰韶文化) 유적에서는 새가 아닌 물고기가 그려진 채색 도기가 발굴되었다.
'사기' 오제본기에는 "동방에 조이(鳥夷)가 살았다(東長鳥夷)"라는 기록이 보인다. 이는 동이족 중에 '조이'라는 민족이 상고시대부터 동방에 거주한 사실을 알려준다. '사기' 하(夏)본기에는 "조이가 갈석산 부근에서 활동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나온다(鳥夷皮服 夾右碣石 入于海). '한서' 지리지에서는 안사고(顏師古)가 '조이'에 대한 주석을 내면서 "이들은 동북방의 동이족이다(此東北之夷)"라고 말하였다.
이상의 기록을 통해서 우리는 상고시대에 중국 대륙 동북방 갈석산 부근에서 활동한 동이족을 '조이'라고 지칭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회남자'에는 "갈석산을 지나서 조선이 있다"라고 말하였다. '전한서' 가연지전(賈涓之傳)에는 "동쪽으로 갈석산을 지나서 현도군 낙랑군을 설치했다"라고 하였고, '진태강지리지'에서는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다"라고 하였다. 이런 기록들에 따르면 조이족의 주요 활동 무대는 갈석산 부근 고조선과 낙랑군 지역이었다.
그러면 고조선과 낙랑군 지역에서 살던 상고시대 동이족들은 왜 하늘을 나는 새를 토템으로 숭배하면서 '조이'라는 호칭으로 불려지게 된 것일까.
동북방의 고조선 민족들은 매일 아침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을 숭배했고 태양 속에는 세 발 달린 검은 새 삼족오가 산다고 여겼다. 따라서 태양 경배의 연장 선상에서 삼족오를 태양조라 믿으며 숭배한 데서 연유된 것이라고 하겠다.
동방의 해 뜨는 골짜기 양곡(暘谷)에서 우이(嵎夷)가 산다고 '서경' 요전편에 기록되어 있다. 저들이 사는 지역을 중심으로 말하면 발해의 모퉁이 해 뜨는 골짜기의 '우이'이고 저들이 숭배하는 토템을 중심으로 말하면 '조이'(鳥夷)였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우이'와 '조이'는 명칭만 다를 뿐 사실은 모두 고조선 민족을 지칭한 것이다. 그리고 저들이 사는 나라 이름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 조선이다.
고조선이 태양조인 삼족오를 토템으로 하였다는 것은 오늘날 고고학적으로도 증명이 가능하다. 중국 요녕성 조양시(朝陽市)는 옛 고조선의 아사달 지역으로 그곳 박물관에 중화 용조(中華龍鳥)가 전시되어 있는데 이 중화용조가 사실은 고조선의 삼족오 유물이다.
현재의 요녕성 조양시는 상고시대에 중국 땅이 아닌 만리장성 밖 동북방의 동이족이 살던 지역으로서 중화지역이 될 수가 없고 용조(龍鳥)는 역사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이다. 오늘날 한족들이 일방적으로 갖다 붙인 중화용조라는 명칭은 역사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다. 옛 고조선 땅에서 발굴된 상고시대 조류화석을 중화용조라 호칭하는 것은 명백한 역사 왜곡이다.
조양시에서 발굴된 세계최초의 조류화석으로 알려진 중화용조는 고조선의 삼족오 실체를 증명하는 고고 유물이고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삼족오는 고구려의 삼족오가 고조선의 삼족오를 계승한 것임을 반증하는 근거라고 하겠다.
◆한국인의 토템을 곰이라 한 것은 식민사관이 남긴 유산이다
'삼국유사' 고조선조에 "환웅이 태백산에 내려와 신선의 나라 신시(神市)를 건설하고 인간 세상을 다스릴 때, 웅녀와 혼인하여 아들 단군을 낳았고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했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고조선의 건국설화에 웅녀(熊女) 이야기가 등장함으로 인해서 우리 민족의 토템을 곰이라고 하는 주장이 일제 강점기 식민사학을 중심으로 제기되었다. 그러나 '삼국유사'의 웅녀설화는 하늘의 태양을 토템으로 숭배하던 환웅 부족이 태백산으로 이동해 와서 현지의 곰을 토템으로 하는 웅녀부족과 결합하여 고조선을 건국하게 된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이 우리 민족의 토템이 곰이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문헌적 근거가 될 수 없다.
한국인의 토템을 곰이라고 한 것은 일본이 한국의 민족혼을 말살시키기 위해 날조한 식민사관이다. 한국인은 미련한 곰이 아닌 하늘을 나는 새를 토템으로 한 조이족(鳥夷族)의 후손으로서 고조선과 고구려의 삼족오, 백제 금동향로의 봉황새, 새 깃털 모양으로 장식한 신라 금관 등이 그것을 잘 증명한다. 한민족의 새 토템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서 한국 대통령의 상징인 봉황문양으로 남아 있다.
◆일본의 건국과정에 등장하는 팔지오(八咫烏)는 삼족오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신무천황의 건국과정에서 일본의 시조 천조대신이 팔지오를 보내 신무천황의 건국을 도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신무천황이 밤에 꿈을 꾸었는데 천조대신이 신무천왕에게 훈계하기를, '짐(朕)이 지금 두 팔지오를 보내니 마땅히 향도로 삼아야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과연 두 팔지오가 공중으로부터 날아 내려왔다. 신무천황이 말하기를, '이 까마귀가 내려오는 것은 상서로운 꿈과 부합된다. 위대하고 빛나는 일이다. 우리 황조 천조대신께서 나의 창업을 도우려고 하시는 것이다'(此烏之來 自叶祥夢 大哉赫矣 我皇祖天照大神 欲以助成基業乎)."
일본의 제1세 신무천황조에 나오는 팔지오는 발이 세 개 달린 까마귀 즉 삼족오를 가리킨다. 그러면 왜 삼족오라 말하지 않고 팔지오라고 하였는가. 삼족오가 일본의 3대 신기(神器) 중의 하나인 팔지경(八咫鏡)을 목에 걸고 있는 신조(神鳥)이기 때문에 그래서 팔지오라 불렀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목에 팔지경을 걸고 있는 팔지오는 태양신 천조대신의 사자로서 인간 세상에 파견되어 웅야(熊野) 산중에서 길을 잃고 곤경에 빠져 있던 신무천황의 동정군(東征軍)을 구제하여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본은 삼족오를 숭배한 한국과 토템이 같은 민족이다
일본의 시조 천조대신은 태양신이고 팔지오는 천조대신의 사자이다. 천조대신이 자신의 사자 팔지오를 보내 제1세 신무천왕의 건국을 도왔다고 '일본서기'는 기록하고 있는데 일본의 팔지오는 명칭은 다르지만 사실은 고조선 고구려의 삼족오와 동일한 태양조이다.
팔지오의 지는 지척(咫尺)을 의미한다. 고대에 팔촌(八寸)을 지(咫), 십촌(十寸)을 척(尺)이라 하였는데, '지'는 여성의 손바닥을 최대로 확대했을 때 엄지와 중지의 거리를, '척'은 남성의 손바닥을 최대로 확대하였을 때 엄지와 중지의 거리를 가리킨다.
지척은 지근거리나 또는 미소한 것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용어인데 일본의 팔지오는 팔각형으로 조성된 8촌 정도 크기의 거울 팔지경을 목에 걸고 있는 삼족오를 말한다.
일본의 팔지오 설화는 고조선 고구려의 삼족오 영향을 받아서 탄생된 것이 분명하다고 본다. 그러므로 한국뿐 아니라 일본도 삼족오 토템을 갖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은 토템이 같은 민족인 것이다.
토템은 어떤 씨족이나 부족이 자신들과 특별한 연관이 있다고 믿는 자연물을 가리킨다. 그들은 토템을 자신들의 조상, 수호신 또는 영적 존재로 여긴다. 그런데 토템의 대상이 된 것은 곰, 늑대, 독수리, 뱀 등 대부분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인의 조상들은 동물이 아닌 하늘과 태양을 토템으로 숭배했고 태양숭배의 연장 선상에서 세 발 달린 까마귀 삼족오를 태양조라 여기며 고조선 이전부터 줄곧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왔다. 그러다가 삼국시대 이후불교 유교가 도입되면서 차츰 민간 신앙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새를 숭배하던 우리 민족의 토템 유적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솟대를 들 수가 있다. 솟대는 마을 입구나 당산나무 근처, 서낭당, 산기슭 등에 세우는 긴 장대 형태의 기둥이며 그 꼭대기에 나무로 깎은 새 예컨대 기러기, 학, 닭 등을 한 마리 또는 여러 마리를 올려놓는다.
이러한 솟대는 오늘날 한국에서는 찾아보기가 쉽진 않다. 전라도 임실군 진뫼 마을 같은 곳에서 일부 전통 솟대를 보존하고 있다. 그러나 밝달족의 고향인 바이칼의 알혼섬에 가면 지금도 마을 여기저기에 솟대를 세워놓은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지' 위서 동이전 마한조 등에 소도(蘇塗)와 관련된 기록이 나온다. 필자는 소도는 우리말 솟대의 한자 음차표기라고 본다. 새를 토템으로 한 샛대가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소도가 되었고 소도는 곧 새를 올려놓는 대, 샛대라고 여긴다.
토템은 상고시대 씨족사회에서 인류가 특정 동물이나 자연물을 조상이나 수호신처럼 여기며 상징적 혈연적 연결을 믿었던 신앙체계이다.
일본이 우리 민족과 동일한 새 토템, 즉 삼족오 토템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일본과 한국은 씨족사회, 부족시대에 동일한 민족이었음을 증명하는 하나의 좋은 근거가 된다고 하겠다.
역사학박사·민족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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