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국감을 지켜보며 평생 통일운동에 매진했던 한 사람으로서 답답함과 만감이 교차한다. '평화적 두 국가론'을 제시하려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향해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한민국의 영토 조항과, 자유민주주의에 의한 평화통일 원칙을 천명한 헌법 제3조·4조를 언급하며 위헌 논란을 제기하였다.
'평화적 두 국가론'이 지금 대두되는 이유는 지난 정부 기간 북한이 80년간 견지해 오던 1민족 1국가론을 포기하고, 우리를 향해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9·19 군사합의를 통해 구축해 놓은 평화 체제를 뒤집어 북한을 주적으로 천명하고 선제타격 운운하며 무인기로 전쟁 상황을 일으키려던 장본인들이 그것을 다시 국민 생명을 지키기 위한 평화 체제로 바꾸어 가겠다는 현실적 노력을 향해 사과는커녕 위헌 타령을 하고 있으니,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차제에 그럼 우리도 북한처럼 통일지향적인 1국가론을 포기하고 2국가론을 표방하며 개헌을 할 것인가?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역사를 다시 들여다보아야 한다. 전범국가로서 분단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동·서독은 일찍 냉정한 현실 인식을 하였다.
1972년 '독일 기본조약'을 체결할 때, 독일연방공화국(서독)과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이라는 쌍방 국호를 사용하였고 서로 체제를 인정함으로써, 1973년에 유엔 동시 가입에 이어 이듬해 비자 발급과 교류 협력 업무를 보는 상주 대표부를 세우는 데 성공하였다.
서독은 동독의 영토 역시 독일로 간주하여 언제든 독일 연방에 들어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는 통일지향적 연방제 단일 국가론을 유지하면서도 외교 및 국제관계에서는 '평화적 두 국가론'을 수용하는 매우 유연한 정책을 펼치며 결국 통일에 성공했다.
그러나 일제 식민지에서 막 벗어나 통일국가를 열망하던 우리 민족에게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의해 강요된 분단 상황은 받아들이기 힘든 정서적 괴리가 존재하였다. 미소 군정에 의한 신탁통치 체제는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 패권 장악을 위해 만들어 놓은 장치였다. 영구 분단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이승만의 단독 정부안은 미국에 의해 수용됐고, 유엔 승인하에 남한만의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그 당시 유엔에서 파견한 한국위원회의 8개국 중 캐나다 대표로 온 조지 패터슨은 한 민족을 강제 분단시켜서 두 정부를 수립하면 내전이 일어날 것은 불 보듯 뻔하다며 격렬히 반대하였다. 결국 그의 예언대로 통일국가를 수립하겠다는 명분하에 북에서 일으킨 전쟁으로 한반도는 끔찍한 참화를 겪고 아직도 그 증오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쌍방이 서로를 괴뢰 정부로 인식하며 자신의 체제로의 흡수 통일만을 지향하는 1국가론은 줄타기 평행선이 될 뿐이다. 우리는 북한을 미수복된 반국가 단체로 규정하고 감시하는 국가보안법을 유지하였고, 그것은 북한도 마찬가지였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북한은 단일 국호로의 유엔 가입 주장을 철회하고 유엔 동시 가입을 받아들였으나 이어진 남북기본합의서에도 우리는 상호 국호를 명기하지 않고 남측, 북측으로 표기하였다.
그런데 북한이 먼저 오래된 이 평행선을 깨고 두 국가주의로 선회한 것이다. 비록 그 당시 윤석열 정부의 행태에 화가 난 북한이 '적대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긴 하였으나 이것은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남측의 태도 여하에 따라 '평화적 두 국가관계'가 나타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의 선택이 남아 있다. 우리가 두 국가론을 주장하려면 최소한 수식어는 바꾸어 '평화적 두 국가론'을 제시하는 것이 마땅하다. 문제는 확실한 개헌을 통해 딴살림을 차릴 수 있는 두 국가주의를 명기하든지, 서독이 취했던 방안처럼 통일지향적인 1국가주의를 견지하되 국제관계에서는 쌍방의 국호를 서로 사용하며 평화적 선린관계를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유연한 자세를 취할 것인지 남아 있다.
평양과학기술대학에서 교무회의를 할 때였다. 다음 학기 강의 과목과 교수진을 정하는 회의였다. 오랜 기간 한솥밥을 먹으며 서로 친해진 터라, 옆자리 북측 처장이 들고 있는 자료를 내가 불쑥 빼앗아 보았다. 10여 개국이 넘는 외국 교수진의 이름 옆에 국적이 있었는데, 대한민국 국적자인 내 이름에는 '남조선 괴뢰'라고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화를 버럭 내며 항의를 했더니, 북측 영도들이 미안해하며 아랫사람들이 어려서 배운 대로 자료를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변명했다. 하긴 우리도 북한 괴뢰라고 배우며 자랐으니 이해가 갔다. 이제 북한에서는 남조선 괴뢰라는 말 대신 대한민국이라고 표기하지 않을까? 우리의 분명한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4대강 재자연화 외친 李 정부…낙동강 보 개방·철거 '빗장' 연다
李대통령, 24일 대구서 타운홀미팅…"다시 도약하는 길 모색"
냉부해 논란 탓?…李 대통령 지지율 52.2%로 또 하락
한동훈 "尹 돈 필요하면 뇌물받지 왜 마약사업?…백해룡 망상, 李대통령이 이용"
김현지, 국감 첫날 폰 2번 바꿨다…李 의혹때마다 교체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