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에게 식물을 선물 받았다. 평소 식물 생활 관련 웹툰을 즐겨보며 막연히 관심은 있었지만, 생명을 맡아 키운다는 부담감 때문에 선뜻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 나를 배려해 지인은 원예 초보자도 키우기 쉽다며 공기정화식물로 알려진 '스파티필룸'을 건넸다.
나는 정성을 다해 물을 주고 햇빛을 쬐어 주었다. 그런데 초록빛 잎사귀 사이로 하얀색 이파리 하나가 솟아올랐다. 다른 잎은 모두 초록인데 유독 한 잎만 하얗게 올라오니, 혹시 내가 물을 적게 주었나, 햇빛을 충분히 못 보게 했나, 아니면 양분이 부족한 건가 하는 불안이 엄습했다. 초보자의 조바심은 이 작은 변화를 곧바로 '문제'로 여겼다.
◆자기만의 꽃을 품은 아이들
지인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스파티필룸의 하얀 이파리는 사실 '불염포(佛焰苞)'라 불리며, 꽃을 감싸 보호하는 특별한 잎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둥글게 말려 올라오지만 시간이 지나면 손바닥 펴듯 활짝 열리며 안쪽의 꽃이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다시 들여다보니 정말로 얇은 하얀 잎 안에 길쭉한 꽃이 숨어 있었다. 며칠 뒤, 불염포는 서서히 펴지고 도깨비방망이처럼 생긴 꽃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 순간 나는 안도와 기쁨을 동시에 느꼈다. 원예 초보자인 내가 무사히 꽃을 피워낸 것이다.
이 경험은 학교에서 매일 만나는 중학생들의 모습과 자연스레 겹쳐졌다. 익숙한 줄만 알았던 모습 속에서 불현듯 낯선 변화를 드러내는 아이들, 그들의 모습은 하얀 불염포처럼 나를 당황하게 하곤 한다. 아이들은 대체로 초록빛 잎처럼 자라지만, 어느 순간 낯선 '하얀 잎'을 드러내며 교사와 부모를 놀라게 한다. 교실에서의 돌발 행동, 예기치 못한 감정 기복, 또래와 다른 성향은 때로 걱정의 원인이 된다. 우리는 종종 그 원인을 부족한 환경—공부, 생활 습관, 학교 제도—에서만 찾으려 한다. 빨리 고쳐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 아이의 모습을 억지로 펴거나 잘라내려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꽃을 감싸고 있는 불염포였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스파티필룸의 불염포는 성장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청소년에게도 마찬가지다. 잠시 낯설고 불안해 보일 수 있으나, 그 안에는 자기만의 꽃을 품고 있다. 억지로 펴내려 하기보다 기다려 주고 지켜봐 줄 때 비로소 꽃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기다림이 지나친 수용과 허용으로 이어지면 곤란하다. 성장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신중하게 다듬어 주는 일도 분명 필요하며, 이러한 일은 부모의 역할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교육의 본질은 기다림과 균형
식물을 키우며 또 하나 배운 것이 있다. 물과 햇빛, 양분은 어느 하나라도 지나치면 오히려 해가 된다. 관심과 애정은 물, 자유와 경험은 햇빛, 규칙과 원칙은 양분에 비유할 수 있다. 셋 중 어느 하나만 넘치거나 부족해도 아이들은 웃자라거나 시들기 쉽다. 요즘은 무언가가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보다 과하게 넘쳐서 생기는 문제가 더 많다. 과도한 관심과 풍족한 물질적 지원은 아이들을 웃자라게 하고 자신이 다른 아이들보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기를 원한다.
균형 잡힌 환경 속에서 아이는 자기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다른 이와도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며 함께 자라난다. 뿌리를 단단히 내려야 폭풍이 와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또 다른 아이들과의 적당한 거리는 경쟁이 아니라 공존의 토대가 된다. 물이 지나치면 뿌리가 썩고, 햇빛이 과하면 잎이 타듯, 사랑과 관심도 균형을 잃으면 아이에게는 오히려 짐이 된다. 반대로 모든 것이 적절히 어우러질 때 아이는 스스로 빛을 향해 나아가며 꽃을 피운다. 결국 아이의 성장은 누군가가 억지로 당겨 올리는 일이 아니라, 곁에서 필요한 만큼만 물과 햇빛, 양분을 보태어 주며 지켜보는 일이다. 교육의 본질은 기다림과 균형에 있다는 사실을, 나는 작은 화분 속 스파티필룸에게서 배웠다.
교육은 결국 기다림의 예술이다. 스파티필룸의 하얀 불염포를 성급히 잘라냈다면, 나는 꽃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다른 친구들과 다르다고 해서 조바심 내지 않고, 말린 잎이 스스로 펼쳐지기를 지켜볼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하다. 과잉된 간섭도, 무심한 방임도 결국 아이를 흔들리게 만든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이를 대신해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조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기다림 없는 교육은 억지로 잎을 찢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교실전달자(중학교 교사·연필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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