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이 사라지면 우리 가게도 멈춥니다."
대구 수성구에서 12년째 분식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김연숙(52) 씨는 요즘 뉴스를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그는 "매일 새벽 쿠팡에서 도착하는 재료가 하루 장사의 시작"이라며 "배송이 중단되면 새벽부터 시장을 다녀와야 해 인력을 추가로 써야 한다. 지금처럼 혼자 매장을 꾸릴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전국 2,000만 명 이상이 사용하는 새벽배송 서비스가 중단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국민 일상에 미치는 파장이 커지고 있다. 민주노총 택배노조가 최근 정부 주도의 사회적 대화기구 회의에서 '새벽배송 전면 금지'를 주장한 사실이 알려지자, 소비자와 업계는 물론 일부 노조 내부에서도 반발이 터져나오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주관한 '택배기사 과로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대화기구'는 지난 22일 회의를 열고 택배노동자의 심야 근로 환경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민주노총은 "심야시간대(0시~5시) 배송을 전면 금지하고, 오전 5시와 오후 3시를 기준으로 2교대 주간근무제로 전환하자"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에 따라 사실상 현재 운영 중인 새벽배송은 전면 차단될 수 있다.
업계는 민주노총의 이같은 주장이 처음은 아니라면서도, '전면 금지'라는 표현이 공식 회의에서 나온 것은 이례적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노총 측은 "과도한 제한은 일자리 축소와 수입 감소를 불러올 수 있다"며 반대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실질적 사용자이자 최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국민들의 의견은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쿠팡 '와우 회원'만 해도 약 1,500만 명, 컬리 정기 이용자와 유료 멤버십 회원 수를 더하면 새벽배송 정기 이용자는 2,000만 명을 넘는다. 쿠팡, 컬리 외에도 쓱닷컴, 오아시스, 네이버 등을 포함하면 이 수치는 더 늘어난다.
이 같은 수요는 단순한 '편의성' 때문만은 아니다.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 워킹맘, 영세 자영업자 등은 생필품과 식재료를 제때 공급받기 위해 새벽배송에 의존하고 있다. 대구 분식점 김씨도 "냉동식품, 채소, 소스류 같은 건 쿠팡 없이는 공급이 안 된다"며 "쿠팡이 하루 배송 한 번으로 사람 한 명 몫을 대신해주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2024 소비자시장평가지표'에서도 새벽배송은 총점 71.8점으로 40개 생활서비스 중 1위를 차지했다. '가격의 공정성', '신뢰성', '선택 가능성' 등에서 고루 높은 점수를 받은 결과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새벽배송에 대한 만족도는 91.8%에 달했다. 향후 계속 이용하겠다는 응답도 99%에 이르렀다. 서비스 미제공 지역의 소비자 84%는 "새벽배송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긴급한 경우 사용 가능해서'(34%), '편리한 장보기'(44.3%) 등이 주된 이유였다.
택배업계는 서비스 축소나 폐지가 현실화되면 물류 시스템 전반에 혼란이 초래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야간배송을 전담하는 물류센터, 인력, 인프라가 일시에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물류과학기술학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야간배송 기사 중 상당수는 교통 혼잡이 적고, 상대적으로 높은 수입, 낮 시간 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새벽배송 근무를 선호하고 있다. 같은 학회의 조사에서 "야간배송이 불가능할 경우 주간 일자리를 찾겠다"는 응답은 25.6%에 불과한 반면, "다른 야간 일자리를 찾겠다"는 응답은 56.8%에 달했다.
이처럼 실제 현장에서는 야간근무를 선택하는 노동자들도 적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택배기사들 사이에서도 새벽배송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아닌데, 노조가 전체 의견을 대변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 진행 중인 사회적 대화기구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조직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 2021년에는 해당 협의체를 통해 '일일 12시간', '주당 60시간' 이내 근무, 택배비 인상 등 실제 제도 변경에 영향을 미친 전례가 있다.
그간 민주노총은 반복 배송 폐지, 휴식권 보장, 심야 배송 규제 등을 요구해왔지만, 이번처럼 '전면 금지'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이에 따라 업계는 물론 정치권과 소비자 단체에서도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대형 플랫폼 기업들이 활용하는 새벽배송 시스템은 단순 물류 서비스가 아니라, 대한민국 소비 생태계 전반에 걸친 구조라는 평가가 많다. 편의점, 식당, 자영업 매장 등 소규모 점포 상당수가 이 시스템에 맞춰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중랑구에서 식자재 배송을 겸업하는 A씨는 "오전 배송만으로는 수도권 근교까지 재료를 제시간에 공급하기 어렵다"며 "대형 마트나 도매 시장이 문 열기 전, 새벽에만 가능한 물류가 있다"고 말했다.
택배업계는 현재 진행 중인 협의가 연말까지 마무리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업계 내부에서도 "야간 배송의 문제점을 개선하되, 소비자 피해를 최소화하는 현실적인 대안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분식점 사장 김연숙 씨는 "새벽배송이 없으면 장사 접으라는 얘기"라며 "시장에서 재료 사고 정리하고 조리까지 하려면 직원이 2명은 더 필요하다. 하루 순익이 10만원인데 인건비가 15만원 들어가는 구조가 된다"고 호소했다.
그는 "택배기사님들의 권익 보호도 중요하지만, 우리 같은 소상공인의 생존권도 함께 고민해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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