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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현장-양승진] 덜 떨어진 선동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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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진 사회2부 기자
양승진 사회2부 기자

동서고금 역사에서 개국공신(開國功臣)이 대대손손 잘 먹고 잘 산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다. 하나같이 사병(私兵)을 빼앗겼다. 귀양도 갔다. 아량 넓은 군주(君主)는 없었다. 왕권 강화만 꿈꿨다. 그렇게 공신은 버려졌다.

사냥에 성공했으니 사냥개를 먼저 잡아먹는(토사구팽·兎死狗烹) 이치였다. 잔혹하지만 현실이 그랬다. 이용 가치가 없어졌는데 당연했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더 많은 표(票)가 필요해진 지금은 이슈(issue)가 공신 역할을 한다. 정권 창출, 혹은 유지의 동력이 되기 위해선 이슈 선점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또 손익을 빠르게 계산하는 능력 또한 요구된다. '잘되면 내 덕분, 못 되면 네 탓'이기에 도움이 안 되는 이슈는 무시하거나 빠르게 사장(死藏)되기도 한다.

10월 초 알려진 캄보디아 대학생 고문 사망사건이 그랬다. 첫 보도는 8월 중순, 여론의 반향은 없었다. 스쳐 가는 사건이었다. 극적인 반전의 시작은 정치권의 '너 때문에'였다.

'국민을 지키지 못했다'는 야당의 비판에 정부·여당이 움직였다. 캄보디아 범죄 조직에 구금돼 있던 우리 국민을 구한 적 있던 여당 실세는 '긴급 보도자료'를 만들어 배포했다. 1개월 전에는 조용했던 그가, 전면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자화자찬(自畵自讚)으로만 가득했던 그 자료만 답을 알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마음이 다급해진 별 4개(육군대장) 출신 여당 최고위원도 움직였다. 캄보디아로 날아갔다. 현지 경찰과의 공조를 생략하고 직접 지역구 청년을 구출했다고 알렸다. 문제는 그가 구한 이는 보이스피싱·로맨스스캠에 적극 가담한 '범죄자'였다는 점이다. 온몸에는 문신이 가득했다.

뜨끔했을까. 문신은 절묘하게 '모자이크' 처리했다. 자신을 향한 비판을 느꼈을까. "절대 쇼(show)가 아니었다"며 눈물도 훔쳤다.

정부는 대학생 사망 사건 이후 부랴부랴 국민 64명을 송환한다고 대대적으로 알렸다. 경찰 수뇌부가 직접 이들을 데려왔다. 다만, 이들도 '범죄자'였다. 이들에게 속아 재산을 잃은 피해자들에 대한 조치는 없었다. 범죄자를 구한 게 치적(治績)이었고 이를 알리는 데 바빴다. 범죄자 구출이 여론 선점 등에 무슨 가치가 있을까. 물론, '범죄자' 수호(守護)는 그들이 가장 잘하는 건 인정한다.

20일 오후 충남경찰청에서 사기 혐의로 수사받는 캄보디아 송환 피의자들이 충남 홍성 대전지법 홍성지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이날 홍성지원에서는 충남경찰청에서 사기 혐의로 수사받는 캄보디아 송환자 45명의 영장실질심사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오후 충남경찰청에서 사기 혐의로 수사받는 캄보디아 송환 피의자들이 충남 홍성 대전지법 홍성지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이날 홍성지원에서는 충남경찰청에서 사기 혐의로 수사받는 캄보디아 송환자 45명의 영장실질심사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캄보디아 사태는 그렇게 잊혀 갔다. 비판이 쏟아졌으니, 당연했다.

야당 시절, '후쿠시마 오염수' 등 노재팬(No-Japan) 선동에 앞장선 이는 집권 후 5개월간 일본 총리만 3번 만났다. 반대 상황이었다면, '친일 매국노'라는 집중 포화가 쏟아졌을 것이다.

8월 말 타결됐다던 한·미 관세 협상은 10월 말 또 '타결됐다'고 한다. 기간이 길어야 '실용 외교'라면, 조만간 또 다른 '타결' 소식이 들려올 듯싶다. 촛불 들고 반미(反美)를 외친 그들이 수천억, 금관, 무궁화대훈장까지 기꺼이 바쳤다. 사냥개를 먹다 보니, 이제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감탄고토·甘呑苦吐)'에도 실력이 늘었다.

운동선수들은 시합 이후 그날 경기를 되돌아보며 또 한 번 성장한다. 선동가들도 그럴까. 쇼츠(shorts) 잘 나오는 방법, 좋아요 늘어나는 법 외 복기(復棋)할 게 없어 보이긴 하다.

부끄러움을 잊은 그들에게 전한다. 어제와 오늘의 말이 다르다면 당신은 '덜 떨어진 선동가'에 불과하다고. 제발, 수사(修辭)가 아닌 정사(正史), 정사(政事)를 해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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