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도에는 경기 포천·철원의 비닐하우스 숙소 화재 및 동사 사건이 있었다. 미얀마·캄보디아·베트남 노동자들이 난방이 취약한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생활하다 겨울철 저체온증 또는 화재로 사망했다. 네팔·스리랑카 노동자들이 화학공장에서 위험물질이 누출된 현장에서 작업하다 중독으로 사망한 사건도 있다. 외국인 노동 인력으로 버티는 인구소멸 농가 현실은 더 비참할 때가 있다.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월세를 따박따박 받으면서도 이들의 삶을 인간의 주체로 바라보기보단, 자본의 화력을 키워주는 동물적인 노동행위로 바라보는 악질 사장님, 악질 건물주의 사례는 뉴스로 일상화가 되었다."싸장님, 쩌한테,, 외크러세요. 저도 사람이에요."라는 외국인 노동자와 싸장님들의 쇼츠 대화로 조회수가 10만을 넘긴 풍자 영상들은 한국 사회에 넘쳐난다. 오죽하면 20년 전에 "싸장님 나뻐요. 이게 뭡니까!"라는 개그콘서트 '블랑카' 캐릭터가 등장했을까. 스리랑카 출신 이주노동자의 시선으로 본 한국 사회의 외국인 노동자 현실을 풍자하던 코너는 대중적 인기를 얻으며 시대를 풍미했다. 나아졌을까?
여전히 한국 사회 외국인 노동자의 죽음은 뉴스 한 줄로 흘려보낼 수 없는 구조적 비극의 반복을 보여주고 있다. 연극 <묵티>(작 김윤식, 연출 강량원, 드라마터그 우연, PD 김유진, 극단 동,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는 이러한 '이주의 길'을 따라 망자가 된 외국인 노동자, 불법체류자, 결혼이주여성, 난민들의 영혼을 신화적 신(神)'묵티'로 호명하며, 한국 사회 현실의 근본적인 문제를 신화와 문명의 발전에 따른 도시의 이동 경로로 죽음의 길을 탐색한다. 신과 인간이 혼종화된 신화를 따라 인류 문명이 발전하면서 혈통은 혼혈로, 혼종의 피는 도시 문명화의 이주사를 따라 흘러온 듯하다. 자국의 민족적 혈통을 내세우는 국가의 형성 역시, 만화경 같은 신화적 서사로도 겹쳐진다. 그런 만큼 외국인 노동자 사회의 배타성이 강한 한국인의 핏줄도 본질적으로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혈통과 다르지 않은, 인류 공동체적 혈통일 수 있다는 작가의 상상에서 접근하고 있는 작품이다.
◇ 이주와 죽음의 현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비극
무대는 문명 이전의 도시로 돌아간 듯하다. 공간은 땅의 역사, 이주와 도시문명 개척의 원시성을 드러낸다. 이주사의 항로는 외국인 노동 인력으로 소멸되어 가는 한국 사회 농촌의 비옥한 땅과 동일한 길가를 상징하고 있다. 나무 합판 그대로를 무대바닥 표면에 포개, 문명 개척 시대의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 앞으로는 이주민족의 항로를 표시하는 방향 안내 수직 패널, 그리고 손수레와 나무 의자 정도가 보인다. 바닥은 때로 한국 사회 현실로 전환되어 외국인 노동자들이 진흙 속에서 캐내는 연근 농사 현장으로, 무대 바닥 면을 공간화해 변주되는 정도다. 공간도, 조명의 채도도 기술적으로 정비되지 않은 채 소멸되어 가는 현실은, 도시문명 이전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프롤로그는 브레히트의 특정 작품처럼 신과 인간의 공존을 보여주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묵티>는 신과 인간이 공존하며 도시를 세우고 문명을 개척하던 약 6,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시기에서부터, 페르시아만의 고대 항로와 카르타르(카타르)로 이어지는 문명의 신화적 항로를 따라 한국 사회 외국인 노동자들의 현실(연근 농가)로 병치한 듯, 한국 사회의 이주노동 현실을 신화적 구조와 겹쳐 놓는 서사적 장치가 특징이다. 외국인 노동자의 사회문제를 다루는 일반적 서사들과의 차이점이다. 카르타르의 이동 경로 설정은,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 건설 당시 남아시아 이주노동자 사망사건을 자칭 '망자'가 되어 묵티가 된 신(神)들의 영혼의 의미로 확장한 듯하다. 결국 묵티는 외국인 노동자의 영혼인 셈이다. 작가는 이것을 묵티와 연결해 연극적인 신화성으로 희곡을 배치하는 구조를 만들어 냈다.
◇ 여전히 한국 사회를 떠도는 외국인 노동자의 영혼 <묵티>
스스로 '반신'이라고 부르는 '람'은 새로운 가족을 찾아 집을 짓기 위해 인간 세계로 향하고, 외국인 노동자·난민 사망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은숙'은 죽은 뒤 환생한 '신'(자칭 신으로 부르는) 처럼 보인다. '시따'는 싯다르타를 연상시키는데, 정착지를 찾아 끝없이 고난과 불행으로 이어지는 인간 세계 현실 체험의 구도자 길을 떠나는 존재처럼 보인다. 작가는 불교를 상징하는 연꽃 뿌리의 밑동에 붙은 연근을 재배하는 농촌을 배경으로 삼음으로써,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들이 살아가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낸다. 연꽃의 상징성과는 달리 연근 농가의 현실은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고통과 번민, 죽음으로 뒤덮여 있다. 영하의 날씨에 찬물 속에서 버텨야 하는 노동, 비닐하우스 숙소와 저체온증, 그리고 일부 한국인들의 배타적 시선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비가시적 폭력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작가는 자칭 신이라 말하는 시따, 기따, 람, 라원, 은옥, 홍석을 통해 집을 짓고 정착지를 찾아 현실로 진입하는 신화적 설정을 구성한다. 그것은 한국 사회에서 삶이 비극으로 끝난 외국인들과 난민의 망자들이 겪은 죽음의 고통을 체험하고자 하는, 일종의 불교적 애도의 방식이라고 할까.
신화성을 띠고 있지만, 집을 짓고 정착지를 찾아가는 '신'이라 말하는 등장인물들은 죽음으로 망자가 된 베트남, 네팔, 인도,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태국 등지의 이주노동자들과 동일시된다. 그들은 '코리아 드림'을 안고 한국 땅에 정착했으나, 결국 비참한 현실 속에서 죽음으로 소멸된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망자의 혼들이 신의 옷을 입고, 신화적 이주 민족의 길을 따라 한국 사회에 정착한 과정과 땅에서의 노동, 반복되는 비참한 죽음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 망자가 되어 신이 된 이들이 공통으로 찾는 것이 바로 "묵티"이며, 동시에 그들은'묵티'자체가 된다. 묵티는 힌디어에서 '해방'을 뜻하며, 힌두 문화권에서 실제 인명으로도 쓰인다. 이런 점에서 김윤식 작가는 '묵티'를 한국 사회의 외국인 노동 구조 속에서 애도 받지 못한 채 망자가 되어 떠도는 무명(無名)의 외국인 노동자들의 영혼, 비극적으로 희생된 존재들을 위한 구원의 이름으로 호명한다. 그들이 도착하는 곳은 인구소멸 지역의 연근 재배 농촌이다. 작가의 설정에서 연근 농사는 두 가지 서사를 확장한다. 하나는 불교적 관점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죽음과 희생을 바라보는 시선이고, 또 하나는 그들을 향한 한국 사회의 배타적 시선을 드러내는 장치이다. 이 두 시선은 무대에서 총 18장에 이르는 옴니버스 구조 속에서 호명되는 신들은 각자의 서사와 중첩되기도 하고, 때로 연근 밭 농사현장을 중심으로 죽음의 시간까지 교차적으로 채워진다.
◇ 배우들의 몸으로 쌓아 올린 '묵티' 영혼을 향한 애도의 방식
묵티가 관객들의 시선을 무대로 집중시킨 130분은 무대에서 점화되는 극단 동 배우들의 소리, 대사의 리듬과 톤, 신체로 구현되는 캐릭터의 전율들이 행동하고 반응하는 배우의 신체로 집결해 전류(감정)의 볼트를 조절해 가며 발화되는 배우들의 연기는 이 작품에서 작가의 서사만큼, 몇 장면에서는 '연기의 서사화'가 연극 <묵티>의 동력이다. 그 정도의 연기, 극 중 인물로 분하는 배우의 캐릭터 연기들을 "그 정도는","배우라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신화성과 외국인 노동의 현실, 난민과 불법체류자, 노동자들의 현실의 전경을 병렬화하면서 연기 패턴을 달리하게 만든다. 작가는 이들을 메소포타미아 문명부터 문명의 도시를 따라 수천 년 동안 집을 짓고 정착해온 이주민족사와 연결해, 우리의 피가 흐를 수도 있는 공동체적 혈연관계로 설정하고, 그들을 자칭 신으로 치환하는 작가적 테크닉을 보여준다. 이들은 신으로 지칭되는 인물들과 현실의 인간들이 공동체적 노동행위(외국인 노동자와 한국인들의 연근 농사), 마을 주민들과의 거주 문제(월세방)를 놓고 발생되는 갈등과 불법체류자 신분의 전경을 오가며, 때로는 비극의 현실이고 신화성으로 강조된다. 연기가 어려워지고 연출의 강도가 드러나는 지점이다.
동일한 인간들의 감정과 소리는 연출적으로 주파수를 적절하게 조절하면 극의 분위기는 살아난다. 그런데 한 집단적 공동체 안에서 신의 소리와 캐릭터, 인간의 음성, 불법체류자의 소리, 갈등의 소음들이 동시적으로 발화될 때, 연기의 방향도 연출의 조절 기능도 달라진다. 라디오 주파수가 여러 채널로 무대에서 아웃풋으로 확산되는 것과 같다. 극단 동 배우들은 각자의 역할에서 동시 영역대의 주파수를 각자의 연기화로 조절하고, 때로는 주파수가 명확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확장하며 연기의 볼륨을 조절하는 '연기의 서사화'를 보여준다. 그런 만큼 극단 동의 <묵티>는 작가의 이야기와 배우들의 연기가 핵심이다. 배우의 감각이 연극 속 공간을 채우는 절대적인 존재로 인식되는 몇 장면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불법체류자 '람'을 강압적으로 제압하는 연근 밭 장면이 그렇다.
◇ 애도를 향한'연기의 서사화'
단속반 국호(강현우 분)와 람, 외국인 노동자와 불법체류자 노동 인력으로 연근 농사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는 복주(강세웅 분)가 람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장면. 더 이상 외국인 노동 인력을 쓸 수 없는 국호가 스스로 비닐하우스를 불태우면서 "니들이 살 집은 여기 없어. 애초에 없었고,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없어. 니들은 여기 잠깐 있다가 돈만 벌고 나가면 돼. 그게 이 땅의 규칙이야. 알겠어, 이 더러운 벌레 새끼들아!"더 이상 연근 농사로 살 수 없는 국호의 절망 감정은 절제된 상태로 불타오르는 비닐하우스 불길 장면에서 배우가 무대에서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연기를 감각시킨다. 묵티는 연출의 강도보다는 배우들이 에튜드((Etude)로 장면을 쌓아 올리고 연기로 공간을, 작가의 언어를 배우들이 서사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런 점에서 아쉬운 점은 연출의 공간과 장면의 확장성이 아쉬웠다.
불길 장면은 그로테스크한 전경화가 강한 이미지를 형성했지만, 그 불길 속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죽음과 인간의 비극성은 희미했다. 작가의 옴니버스는 묵티를 찾고 집과 정착지를 찾아 비닐하우스 연근 밭으로 이주한 신들의 이야기,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월세방을 이어주는 부동산 중개사 정희(박지연 분), 베트남 며느리를 두고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사글셋방을 놓고 살아가는 위례(송주희 분)들의 이야기가 섞여 있다. 이 옴니버스를 장으로 묶어 암전 처리한 것은 흐름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음에도, 조명과 공간의 확장, 소리와 사운드의 증폭 등 연출적 장치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드러났다면, 극단 동의 <묵티>는 타오르는 비닐하우스의 전경만큼이나 충격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마지막 장면은, 복주가 메소포타미아부터 집과 정착지를 찾아 흘러온 이주민족과 한국사회를 혈연 관계로 묶어, 외국인 노동자·불법체류자·결혼이주여성·난민들을 파라솔로 공동체를 형성하는 우산으로 씌운 것을 보면, 여전히 이들을 바라보는 정책도, 한국 사회 싸장님들의 태도들도 이제는 그들도 우리 민족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핏줄과 혈액은 같은 인간의 DNA라는 작가적 시선에, 파라솔의 온기가 여전히 한국 사회와 카타르를 떠도는 남아시아 이주노동자들의 망령들을 위로가 되고, 더 이상 죽은 영혼들이 묵티가 되지 않기를. <묵티>는 외국인 노동자 사건과 죽음 문제를 신화와 현실을 병치해 다루고 있다는 것, 극단 동 배우들이 연기의 서사화로 130분을 견디게 한다는 것이 장점이고, 이게 전부다. 묵티의 희곡을 연기로 서사화한 배우들은 국호 역 (강현우) 시따(김문희), 택주(김정아) 홍석(김진복) 정희(박지연), 기따(배선희) 위례(송주희) 은옥(유은숙), 람(이재호) 라원(최호영)이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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