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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문예광장] (시) 껍질/ 전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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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웅 시인
전기웅 시인 '껍질' 관련 이미지.

〈껍질〉

오토바이가 빗길에 미끄러지자
뒤집힌 풍뎅이처럼
단절된 줄 알았던 인간관계가 깨어난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몰려와
휴대폰 꺼내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넘어진 오토바이를 일으켜
도로 가장자리에 갖다 놓는다

구급대가 달려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침묵하며 다시 제 갈 길로 가는 사람들

그들의 도도한 눈빛에서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는 어머니의
부드러운 손길이 보였다

입술을 떠난 말들은
더불어 사는 이웃의 위로였다

눈 마주치지 않으려 했던 고립된 엘리베이터 안에서
적막의 커튼을 치고 숨어있던
어색함의 봉인을
아무는 상처의 딱지인 듯

나 뜯어낸다.

◆시작노트

비가 내리던 날, 오토바이가 빗길에 미끄러져 위험한 순간이었지만 놀랍게도 가장 먼저 달려온 것은 서로 알지 못하는 이웃들이었습니다. 휴대폰을 꺼내고, 오토바이를 세우고, 구급차가 올 때까지 묵묵히 곁을 지키던 얼굴들. 잠시였지만 그 순간은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연대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결국 하나의 큰 곡선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슴을 열고 직선으로 질주하다가도, 우리는 다시 큰 원을 그리며 제자리로 돌아오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각자도생 이라는 말에 익숙해진 요즘은 가까운 이웃의 시선조차 피하려 할 때가 많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의 고요한 적막처럼 말끝이 닿지 않는 순간들이 우리 주변에는 흔합니다. 하지만 뜻밖의 사고 앞에서 껍질처럼 단단히 닫혀 있던 인간관계가 균열을 내고, 내부의 따뜻함이 드러나는 장면을 보며 저는 오래 멈춰 서게 되었습니다.

'껍질'은 그날 제가 본 사람들의 손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도움을 주고도 아무 말 없이 흩어지는 이웃들의 뒷모습에서 어머니의 안도하는 숨결 같은 부드러움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남겨두는 온기와 스쳐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연대의 흔적을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이 시는 결국 고립과 고독의 껍질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보려는 제 작은 시도입니다. 어색함의 딱지를 떼어내고, 서로를 향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는 순간들이 우리 일상의
바탕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씁니다.

전기웅 시인.
전기웅 시인.

◆약력

-시집 '촛대바위' '바이크, 불멸의 사랑'이 있음

-서정문학회부회장, 형상시학 편집국장

-(사)대구경북언론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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