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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과 전망-엄재진] 대통령 고향 마을과 '사람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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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재진 북부지역취재본부장
엄재진 북부지역취재본부장

지난 22일 안동시 예안면 옛 삼계초등학교는 모처럼 만에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이곳은 이재명 대통령이 졸업한 모교다. 한 시민단체가 '이재명 대통령 당선 잔치 한마당'이란 이름의 조촐한 행사를 마련한 것. 이날 현장에서는 '지역이 살아야 아이들도 성장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추억·연대·지역 사랑의 힘이, 사라져 가는 지역 공동체를 되살릴 수 있다는 진리는 보여 준 자리였다.

이재명 대통령 당선 이후 줄곧 대통령의 고향 마을인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 지통마 개발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져 왔다.

국정감사 자료가 불씨가 되어 중앙 언론과 유튜버들이 이를 확대하고, 서울에서는 먼 지역 일을 두고 조례까지 제정하려는 구의원이 등장하기도 했다. 안동시는 해명에 나섰지만, 정작 고향 마을에는 관광객과 방문객이 꾸준히 늘어나는 등 현장에서는 이미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이 상황을 바라보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말이 있다. '본말전도'(本末顚倒). 나무의 뿌리와 가지를 뒤바꾼다는 뜻이다. 고향 마을 개발을 둘러싼 비판 대부분은 정작 현장의 필요를 보지 못한 채 정치적 해석으로만 덧칠한다. 마을의 생활 여건은 오래전부터 개선이 필요했고, 주변 경관과 교통·안전 문제 또한 주민들이 먼저 요청해 온 사안이다. 그러나 논란은 이러한 '뿌리'보다, 대통령의 고향이라는 '가지'만 붙들고 흔들어대고 있다.

선현의 말도 있다. 맹자는 "'득천하영민'(得天下寧民), 백성이 편안해야 나라가 편안하다"고 했다. 마을 정비와 기반 시설 확충은 특정 인물을 위한 특혜가 아니라, 바로 그 땅에서 사는 주민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일이다. 대통령의 고향 마을과 생가터가 아니었더라도 추진됐을 법한 공공사업이라는 점에서 마을 정비는 '영민'의 영역이다. 정치적 공방으로 흐르는 순간, 정작 주민 삶은 뒤로 밀린다.

물론 생가터 개발은 쉽지 않은 문제다. 정치적 상징이 강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정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과한 조성 사업이 추진될 수도 있다. 모든 공공사업은 이에 대한 경계심 위에서 설계되어야 한다. 그러나 행정이 신중하다는 이유만으로 필요한 정비까지 멈출 필요는 없다. 마을의 생활 기반을 보완하고, 방문객 증가로 인한 불편을 줄이고, 지역의 새로운 활력을 모색하는 일은 정치적 잣대와 별개로 평가받아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인의 고향을 단초로 지역이 되살아난 사례는 수없이 많다. 그들의 흔적을 활용해 쇠퇴한 관광지에서 '지역 브랜드 도시'로 성장했다. 중요한 것은 특정 인물의 영광을 기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자원을 활용해 지역 전체의 삶을 개선하는 데 있다.

안동은 이미 수많은 문화유산을 지닌 도시이다. 여기에 현대적 의미의 '사람 유산' 하나가 더해지는 것이 반드시 나쁜 일은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고향 마을 개발 논의는 단순히 '누구의 고향을 치장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도시재생, 관광 자원화, 문화 콘텐츠 확장이라는 더 큰 틀에서 보면 지역 전체의 미래 전략과 닿아 있다.고향은 특정 개인의 사적 기억이면서 동시에 지역 공동체의 공적 자산이기도 하다.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는 결국 지역이 스스로 결정해야 할 숙제다.

중요한 것은 한 가지다. 본말을 바로 세우고 지역의 이익을 중심에 두는 일. 그 기준만 흔들리지 않는다면, 지금의 논란도 결국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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