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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김교영] '휠체어 뺑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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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영 논설위원
김교영 논설위원

어떤 상황을 설명하는 단어 가운데 '뺑뺑이'만큼 압도적(壓倒的)인 단어는 없다. 이해하기 쉽고, 묘사가 충실하다. 대개 '뺑뺑이 돌린다' '뺑뺑이 돈다'로 쓴다. 명사 '뺑뺑이'의 뜻은 이렇다. 첫째, 숫자가 적힌 둥근 판이 돌아가는 동안 화살 같은 것으로 맞혀 그 등급을 정하는 기구나 그런 노름을 뜻한다. 둘째, 남녀가 사교춤을 추는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셋째, 불필요하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일을 표현한다.

뺑뺑이는 주로 세 번째 뜻으로 세간(世間)에 오르내린다. 환자를 받아줄 응급실을 찾아 헤매는 '구급차 뺑뺑이'는 의료 시스템의 문제점을 꼬집는 상징어다. 구급차로 이동 중 환자가 숨지는 사건들이 잇따르면서 정부는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뺑뺑이는 멈추지 않고 있다. 상담 전화를 여기저기로 돌리는 '콜센터 뺑뺑이', 행정기관에서 민원인을 서로 떠넘기는 '민원 뺑뺑이'도 뺑뺑이의 대표적인 용례(用例)다.

기자는 주말에 망백(望百)을 넘긴 어머니가 계신 요양원을 3년째 왕래하고 있다. 어머니는 관절이 성치 않아 휠체어 없이는 이동을 못 하신다. 그런 어머니를 승용차에 모시고 나들이 가는 일은 우리 가족에겐 소중한 시간이다. 하지만 현실은 고역(苦役)이다. 맛집을 찾아갔다가, 차를 돌리는 일이 예사였다. '휠체어 뺑뺑이'다. 식당 입구의 계단이 휠체어를 막아선 것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식당(바닥면적 기준·일반음식점 50㎡ 이상)은 장애인 경사로를 설치할 의무가 있다. 물론 법제화 이전의 건축물은 예외다. 그러나 제도와 현실은 달랐다. 갓 개업한 큰 식당에 경사로가 없었고, 경사로를 없앤 흔적이 있는 식당도 있었다. 거부되는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순간이었다. 이동 약자(移動弱者)의 불편을 그저 제도나 숫자 속에서 이해했던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이기도 했다.

지난 3년 동안 '착한 식당'을 만나기도 했다. 경사로가 없어 미안하다며 휠체어를 함께 들어주는 작은 식당의 주인, 휠체어에서 식사하기가 편한 자리를 안내한 직원, 신발 벗고 들어가는 곳인데도 휠체어를 맞아주는 식당도 있었다. 좋은 식당, 고마운 사람들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선의(善意)에만 의지해야 할까. 정부가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를 강화하겠다니,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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