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명과 함께해 온 건축은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규범들을 품고 있다. 공간, 물질, 디테일, 조직, 이런 규범들을 한국의 현대 건축을 통해 읽어내지만 그것을 고정불변의 가치로 설파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이 변하고, 건축과 비평이 변하고, 그와 함께 글 쓰는 이도 변한다. 여기에 실린 글은 변화의 궤적을 잇는 매듭이다."(책의 서문 중)
'건축 너머 비평 너머'는 배형민 서울시립대 교수가 지난 20년 간 쓴 글을 추려 만든 책이다.
그가 어떤 인물인가. 역사가이자 비평가, 큐레이터로서 건축부터 미술, 디자인, 조경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기획과 연구에서 뛰어난 성취를 이뤄온 이다. MIT 건축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와 30년 간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교수로 재임해온 그는 2014년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으며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초대 감독과 제5차 광주폴리(도시재생 건축프로젝트) 총감독을 지냈다.
서울시립미술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런던 카스갤러리 등의 초청 큐레이터였고,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로는 2021년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본상을 받기도 했다. 그의 MIT 박사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MIT 프레스에서 출간한 '더 포트폴리오 앤 더 다이어그램(The Portfolio and the Diagram)'은 세계 유수 대학의 필독서로 쓰일 정도다. 그러니 한국 건축계는 물론 문화예술계의 많은 전문가와 독자가 그의 책을 기다렸다는 출판사의 얘기는 과장이 아닌 셈이다.
더욱이 그는 한국 건축사의 생생한 목격자이기도 하다. 한국 현대 건축의 태동을 이룬 1세대 건축가와 직간접적으로 마주했으며, 오늘날 현대 건축의 주축을 이루는 건축가들과 긴밀하게 협업하며 오랫동안 교류했다.
너무 학문적인 글이 아닐까 하는 걱정은 넣어둬도 된다. 그의 글은 논리적 이해와 정서적 공감 사이를 적절히 오가며 한국 현대 건축의 다양성과 건강함을 펼쳐 보인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 순서대로 읽어도, 관심 있는 주제 혹은 아는 건축가를 다룬 글부터 읽어도 좋다.
특히 대구간송미술관과 왜관 수도원부터 부여박물관, 공간 사옥, 설화수의 집,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쌈지길, 제주 오설록 단지 등 직접 가봤거나 마음만 먹으면 가볼 수 있는 건축물들의 이미지와 함께 건축 스케일과 디테일을 보여주는 도판 등이 균형 있게 배치돼 지루할 틈이 없다.
책은 3부로 구성되는데, 1부 '말과 얼굴'은 김수근과 승효상, 김석철, 민현식과 유걸, 신경섭 등을 중심으로 한국 현대 건축의 역사적 배경과 정체성 담론을 말한다. 2부 '사유와 감각'은 대구간송미술관을 설계한 최문규를 비롯해 김승회, 최욱, 임재용, 조민석, 승효상 등의 건축가를 통해 건축 규범과 공간 조직, 도시의 변화에 적응하는 건축 방법론, 역사성과 건축 미학, 시간과 장소의 문제 등 근원적인 주제를 다룬다.
3부 '텍토닉스'는 이정훈, 조병수, 조남호 건축가와 바래 건축사사무소 등의 작업을 바탕으로 재료·구조·물질의 과제를 다루며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건축, 건축에서 실패의 의미, 건축의 실험에 관한 생각을 얘기한다.
책을 다 읽어갈 때쯤이면 독자들은 눈치챌 것이다. 책의 부제가 '갈망, 사유 그리고 애정의 비평'인 이유를. 그의 비평은 우리를 '좋음'과 '싫음' 같은 단순한 대립이나 취향의 관점에서 벗어나, 건축을 통해 생각하게 하고 변화에 함께 대응하게 한다. "갈망이 사유와 학습을 동반하지 않을 때, 애정을 말할 수 없다"는 그의 말처럼 건축 너머, 비평 너머 세계의 애정 어린 탐구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확실한 길잡이가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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