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장렬 연출이 각색한 희곡을 무대화할 때 장점은 서사의 개연과 논리가 뭉개져 때로는 비약과 과장으로 무대를 순항하면서도, 현실의 전경을 파고드는 형상화에 있다. 붕괴되는 한 가족의 몰락과 분열을 그리면서도 노래들은 희망을 장착한 아이러니를 드러내기도 하고, 극중 장면들은 현실을 비틀어내는 우화적인 전경 속에서 살아나기도 한다. 박장렬 연출에 의해 손질된 윤미현 작 <광주리를 이고 나가시네요, 또>는 전작인 전쟁과 IMF로 소환되는 가족의 몰락과 해체를 그린 <집을 떠나며> 시즌2 같은 서사의 분위기로 각색된 느낌이다. '집을 떠나며'는 몸을 팔며 살 수밖에 없는 엄마를 통해 삶의 불균형과 소외된 가족들을 투영하고, 70∼80년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재봉틀을 밝히고 돌리며 살아야 했던 한국 사회 어머니의 절망적인 삶들을 통해 휴전 반세기가 지나도 집을 나설 수밖에 없는 자본으로 비대해진 한국 사회의 현상들을 형상화했다면, <광주리를 이고 나가시네요, 또>는 광주리를 들고 아들을 키우며 집 한 채를 마련해 억척스럽게 살아온 광주리 할머니(최현아 분)의 가족사 이야기다.
◇ 비약·과장의 무대와 서사 해체 ― 박장렬 연출의 형식
광주리 할머니 가족들은 과거도 현재도 분열과 아픔, 삶의 희망을 거세당한 채 살아가는 가족들로 인물들이 형상화된다. 무대 뒤편 달동네 전경 아래로 세워진 집 한 채는 삶의 희망이 정전된 집이다. 무대의 가옥 뒤로는 리어카 한 대가 다닐 수 있는 언덕 비탈이 있고, 가로등의 불빛도 삶의 온기가 없는 채로 소품처럼 광주리 할머니 집을 비출 뿐이다. 마흔 살이 되어가도 취준생인 딸 미미(하지희 분)는 이미 사회와 직장의 괴롭힘으로 집 밖으로 나올 수 없는 히키코모리(히키코모리)가 되어 있다. 날개처럼 두른 이불은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날 수 없는 고립의 삶이다. 딸의 내·외면을 그림자처럼 분신화한 것도 절망의 삶에서 출구는 자신과의 대화뿐임을 보여준다.
방 안에서 이불을 덮고 누워 있거나 분신과 대화하는 미미의 존재는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격리되어 있는 인물이다. 취업의 실패, 대학원 지도교수의 성희롱, 집의 몰락에서 삶의 시간과 존재를 상실해버린 인물이며, 박장렬은 내면의 균열을 '분신'이라는 외부화된 몸을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내면의 목소리·우울·불안 등은 분열된 사회에 적응할 수 없는 소외의 몸이다. "내일모레면 마흔이다"라고 하면서도 정신적 시간은 스무 살의 실패 지점에서 멈춰 있다. 그래서 분신은 미미가 '사회 밖에 남겨진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분신을 통해 "그러기야 하겠어?", "벌써 늙었지 뭐"라고 발화되는 대사들은 미미의 내면에서 한 번도 외쳐지지 않는 절망의 소리이다. "빨리 늙고 싶어요."라는 절망적인 고백은 청년세대가 미래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N포 세대들의 절규의 고백이다. 이렇게 박장렬 연출이 바라보는 현실 세계는 취업의 허들은 절망적이고, 내 집 마련은 꿈도 꿀 수 없는 불평등하고 기회조차 박탈당한 세상의 부조리한 모순들을 죽음만을 기다리는 딸을 통해 드러내고, 극중 인물의 캐릭터를 더 강렬한 몰락과 극단의 막장성으로 내몬다.
퇴직한 미미 아빠(김귀선 분)는 "현실이 더 막장 같다"며 다큐 막장 드라마에 심취해 있으면서도, 어린 시절 바나나를 먹고 싶다는 말에 광주리 할머니한테 죽도록 가래떡으로 맞은 트라우마 탓에, 삶의 절박함에서 내몰려진 엄마의 폭력적 상처가 자식에게 애정과 사랑을 줄 수 없는 비극으로 대물림되는 가족이다. 광주리 할머니는 "내가 이 집을 어떻게 마련했는데, 100세 시대에 나도 살아야 한다"며 집을 내놓으라 말하는 며느리와 레슬링 같은 올림픽 경기를 벌이기도 하고, 애들 등록금에 대출에 집만 남았다며 버티는 며느리가 활인마트에서 사온 쌀·치약·라면과 생필품들을 하나둘 광주리에 담아 집을 안 주면 자신이 팔아 쓰겠다고 매일 동네를 돌아다니는 할머니다.
모진 세월을 견디며 아들 하나를 키워 집 한 채 마련한 할머니 인생, 아들도 며느리도 손녀도 "세상은 우리 집보다 더한 게 현실"이라며 씁쓸한 현실 탓을 하면서도 사회도 가족도 그 누구에게도 보상받을 수 없어, 광주리 할머니가 유일하게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재산을 광주리로 지키는 생존의 절망뿐이다. 집 밖의 세상은 더 절망적이다. 독거노인(김민철 분)은 광주리 할머니가 이고 온 쓰다 남은 생활용품도 비싸다며, 다음에는 "쓰다 남은 치약을 사겠다"고 말하고, 한 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살아가는 할아버지(김용운 분)는 바람을 쐬고 싶어 광주리 할머니가 가져온 쓰다 남은 선풍기를 틀고 바람 속에서 죽어간다. 선풍기는 고독사의 잔혹한 현실을 시각적으로 이미지화한 강렬한 은유적 오브제다.
◇ 광주리에 담을 수 없는 불평등과 가난의 대물림
할머니가 파는 광주리 생활용품은 가난과 불평등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사물적 은유들이다. 가난과 불평등한 삶의 연속성을 드러내기도 하고, 달동네 골목길의 봉사와 나눔의 장면도 신마저도 이들을 보호할 수 없는 여전히 달라질 수 없는 절망과 절규의 세상임을 보여준다. 교회 앞에서 초코파이를 받기 위해 줄 서 있는 장면은 국가 복지의 현실을 압축한다. 쏘팔메토 TV 광고를 입체적으로 캐릭터화했는데, 박장렬 연출이 현실의 전경을 비약과 과장으로 비틀어내는 연출의 형식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다. 퇴직한 미미 아빠가 다큐 막장 드라마에 심취해 "어림없지! 불 질러야지!" 하며 드라마 속 복수를 정당화하는데, 자신의 삶에 대한 억눌린 분노를 우회적으로 정당화하는 극 중 장면이다. 현실에서는 무능한 남편으로, 자녀들에게는 책임감이 부재한 부모로 낙인된 절망의 내면이 드라마를 통한 대리 폭력으로 변환된 것이다. 텔레비전 광고를 입체적으로 시각화해 분열되어 가는 정신세계를 보여주고, 쏘팔메토 광고 캐릭터가 현실처럼 등장하는 희화화된 장면은 남성의 욕망과 남성의 자존감이 상실되어 가는 내면을 만화경처럼 드러낸다. 이렇듯 집안의 몰락을 지켜보며 드라마에 빠져드는 아빠의 행위는 '무능한 아버지'라는 희화화가 아니라,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한 남성의 붕괴를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소비적 욕망만을 자극하는 거대 자본주의 모순들을 환기하게 하는 장면이다.
오죽하면 딸 미미가 하얀 페인트를 머리에 칠하며 "빨리 나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비관적 세상에서 달라질 수 있는 것은 죽음뿐이라며 미쳐갈까. 박장렬은 이러한 절망의 세상을 극중 인물들을 광주리 여사 집 거실로 소환해, 미쳐가는 광란 세상을 환타지적이면서도 만화경처럼 형상화하면서도, 마지막 장면은 집의 몰락과 붕괴다. 집 구조만 남겨두고 싹 다 생활도구들을 팔아치운 뒤, 광주리 할머니는 오늘도 광주리를 이고 절망의 집을 나와 다시 한번 광주리를 이고 버스정류장에서 "버스가 안 오면 걸어갈끼다" 하며 눈 내리는 길가에서 구부정한 채 광주리에 희망을 담아보려는 삶을 이어간다. 버스정류장은 삶의 생존과 생활을 이어주는 사회의 공적 공간이다. 그러나 한국사회 희망의 버스는 좀처럼 오지 않기에 한 가족의 몰락과 비극은 여전히 가난으로 대물림될 뿐이다.
"광주리를 이고 나가시네요, 또"는 동일 작품의 전작 무대가 광주리 할머니의 애환과 삶을 한 인물의 서사를 현실적으로 형상화했다면, 박장렬 연출의 포항 <광주리를 이고 나가시네요, 또>는 가난과 불평등이 대물림되는 현실 세계의 가족의 비극과 몰락을 우화적 환타지와 현실로 병치한 것이고, 극중 인물들을 만화적 캐릭터로 형상화하고 극단으로 내모는 장면을 때로는 비약과 과장성으로 보여주면서도 현실을 공감시키는 연출적 시선에 있다. 또한 포항시립극단 배우들도 박장렬 연출의 과한 장면 구성 속에서도 연기 표현들이 광주리 할머니 집과 달동네에 스며들 정도로, 웃음과 애잔함으로 연기의 앙상블을 보여주었다. 특히 토종 포항 말씨를 쓰며 구부정한 걸음걸이에 허리를 20도 정도 뒤로 젖혀 평생을 광주리 하나로 살아온 억척스러운 광주리 할머니로 분한 최현아의 연기는 연출이 설정한 인물 그 자체로 분한다. 좋은 배우다. 포항시립극단의 <광주리를 이고 나가시네요, 또>는 한 인물의 비극이나 한 가정의 몰락을 넘어, 한국 사회 기층의 삶을 떠받들던 여성노동·청년절망·노인빈곤·부동산·가족해체·주거 불안이라는 거대한 균열을 은유적이면서도 박장렬스럽게 무대화한 작품이다. 광주리는 한국 사회가 오늘까지 머리에 이고 희망 없는 절망과 불평등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박장렬 연출은 경님도립극단 <토지1,2>, <리어왕>,<눈물지니 웃음피고- 나무물고기>를 무대화 했으며. 포항시립극단에서는 <바냐삼촌>, <형산강 랩소디>,< 모르메 섬의 한여름 밤의 꿈>을 연출해오고 있다.
|미니 인터뷰 (포항시립극단 예술감독, 연출 박장렬)
─ <광주리를 또 이고 가세요, 또> 전작 공연작품들과 분위기가 다르다. 각색방향은.
"포항 시민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동시대성에 중점을 두었고. 다소 무거운 주제이지만 각 장면에 블랙 코메디적 요소와 폭이 큰 감정선을 바탕으로 하여 인물들의 성격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방법으로 관객들에게 웃음과 아름다움 던져주고자 했다."
─이번 작품에서 광주리 할머니와 가족들, 그리고 주변 인물들이 겪는 소외·분열·상처·죽음의 서사는 결국 불평등한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절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가족간의 소통과 사랑은 이 시대의 불평등한 구조를 이겨나가는 가장 기본적 태도라고 생각한다. 대화를 통한 이해와 배려가 사라지게 만드는 이유는, 가족들이 사회적 위치와 존재의 이유를 잃었거나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가족들을 위한 사회적 시스템과 손길이 사라진다면 비극은 항상 반복 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다. 본 공연은 약자에 대한 공감과 배려가 사라지지 않길 바라는 기도문이기도 하다."
─ 무대형상화가 우화적이면서도 만화경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뾰족하고 불편한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관람하도록 하기 위해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관람할 수 있도록 연출했다. 연극적 장치로 환타지적인 상황과 우화적이면서도 만화경같은 인물과 구조를 통해 무거운 주제를 생동감 있고 리드미컬하게 만들었다. 관람 후 많은 관객들이 100분의 공연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관람했다고 하는 관람평을 들었다. 긴장과 웃음이 주는 블랙코메디의 형식을 즐감하고 박수를 보내준 관객들에게 감사드린다. 그 수 많은 멜로적 감성이 아닌 관객들이 극장에서 직관하며 연극적 생동감과 공연의 미적 아름다움을 전하기 위함이다."
─극 중 광주리 할머니 캐릭터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배우들 캐릭터와 연기의 방향은.
"극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이 선과 악의 구도가 아닌 서로가 서로에게 악인이기도 하고 선인이기도 한 관계를 만들고자 했다. 모든 등장인물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나아가는 행위 자체가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 자체는 누군가에게는 아픈 상처로 다가서는 결과로 보여진다. 배우들에게 이러한 점을 주지시키고, 자신이 절대적으로 관심있는 부분에서는 욕망이 들끓는 인간으로 보여지길 원했다. 하지만 그렇치 않는 상황에서는 무기력한 인간으로 보여지길 요구했다. 욕망과 무기력이라는 에너지를 통해 배우들의 감정 폭이 출렁이게 되고 이는 공연을 생동감있게 전개 시켰다고 생각한다. 힘든 감정선을 성실하게 따라와 준 배우들에게 감사드린다."
─거실에서 집단으로 주변인물 모두 집단 앙상블로 표현된 장면이 있는데.
"가족의 이야기지만 그 고립된 가족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나 집단들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안과 밖, 공감과 혐오, 이성과 감성처럼 모든 것은 홀로 존재할 수 없음이 전달 되었다면하는 바람으로 시작화한 장면이다."
─미미의 분신화, 광고의 과장성등.. 의미를 확대한 이유는?
"분신은 누구나에게 존재하는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이기도 하다. 또한 절대적 외로움이 만들어 낸 피신처 같은 인물이기도 하다. 추억이 낳은 상처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광고의 과장성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공허함과 맹목성을 보여주고 했다. 살 수 없는 물건들, 살 필요 없는 물건들이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자신의 시간이든 육체이든 정신이든 무언가를 팔면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회를 구성하는 성인들의 불만을 표현하고 했다. 광고의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자본을 표현함과 동시에 등장인물들의 무기력과 분노를 표현하는 연극적 장치이기도 하다."
─ 앞으로 포항시립극단의 예술감독으로 방향은?
"예술성을 바탕으로 관객들에게 연극적 감동과 아름다움을 선사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끊임없이 단원들의 기량 향상을 위해 신체적, 정신적 워크숍을 수시로 진행하고 있다. 진정성과 성실성을 담보로 하여 포항 시민들의 사랑과 예술적 아름다움을 선사하기 단원들과 함께 노력하고 있다. 포항시립연극단에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린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댓글 많은 뉴스
통일교 측 "전재수에게 4천만원·명품시계 2개 줘"…전재수 "사실 아냐"
"안귀령 총구 탈취? 화장하고 준비" 김현태 前707단장 법정증언
'필버' 나경원 마이크 꺼버린 우원식…사상 첫 '의원 입틀막'
李대통령 "종교단체-정치인 연루의혹, 여야 관계없이 엄정수사"
장동혁 "李겁박에 입 닫은 통일교, '與유착' 입증…특검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