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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여정기] 우리나라 산업재해와 '안전한 일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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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기 산업안전보건공단 대구광역본부 건설안전부장

여정기 산업안전보건공단 대구광역본부 건설안전부장
여정기 산업안전보건공단 대구광역본부 건설안전부장

대한민국 K팝이 세계에 울려 퍼지고, SK하이닉스·삼성전자가 만든 반도체들이 인공지능(AI) 시대를 뒷받침하고 있다. 한국 선박사들이 만든 배들은 세계 바다를 누비고, K방산무기들은 세계 각국 군대의 우선 구매 대상이다.

6·25 전쟁이 끝나고 폐허가 되었던 국가에서 우리는 기적처럼 부활했다. 그대로 '거지 민족'으로 전락해 주변국의 상품 판매 시장이나 생산거점으로 전락할 수도 있었지만, 우리는 민주화와 산업화에 성공했고 나아가 문화강국으로까지 발돋움 했다.

하지만 이런 우리나라도 아직 부족한 부분들이 많다. 그중 하나가 산업재해 분야다. 근로자 1만명 당 산업재해 사고사망자를 뜻하는 '사고사망만인율'은 한국이 '23년 기준 0.39‱(퍼밀리아드)으로서 주요 선진국들 보다 훨씬 높다.

옆 나라 일본과 비교해 보면 일본은 사고사망만인율이 '23년 기준 0.12‱(퍼밀리아드)로 우리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일본과 비슷해졌다는 둥 추월했다는 둥 뉴스에서 떠들어도 결국 비슷한 1인당 GDP 생산을 위해 우리가 3배 많은 근로자 목숨을 잃고 있는 것이다. 이게 따라잡은걸까? 이게 추월일까?

전년도 우리나라 산업재해 통계를 보면 전체 사고사망자는 827명이었다. 그 중 발생형태별 사고사망 원인 1위는 278명(33.6%)의 목숨을 빼앗아 간 '추락'이었다. 추락재해는 산업용 로봇이나 고도화된 기계의 전자적·기계적 오류로 인해 발생하는 고차원적 사고가 아니다. 주로 인간의 방심이나 부족한 안전문화로 인해 발생하는 '재래형' 사고다.

원룸이나 상가 건물을 지을 때, 건물 주위에 쇠 파이프로 된 정글짐 형태의 구조물을 설치하고, 사람들이 거기 올라가 작업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텐데 이 구조물을 비계(飛階)라고 한다. 작업발판이나 내·외부 안전난간을 철저하게 설치하도록 규정된 구조물인데, 기술 지도를 위해 건설 현장에 나가보면 이 비계가 규정대로 제대로 잘 설치된 경우가 드물다. 자재 인양을 위해서, 작업이 불편해서, 설치 시간이 모자라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작업발판이나 안전난간이 빠져 있다.

이런 불완전한 비계 위에서 안전모나 안전대 같은 개인보호구도 갖추지 않은 근로자가 이동하거나 작업하다 발을 헛디디면 추락하여 사망사고로 이어지는 형태가 매년 여러 건 반복된다. 여러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한국이지만 산업재해 분야에서는 아직도 이런 미흡한 문화와 안전의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전쟁을 극복하고 기적을 이룩한 것처럼 산업안전에 대한 문화와 의식 측면에서도 획기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을까? 우리 민족의 저력이라면 못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다만 나쁜 습관은 끊기 힘든 법이므로 개선을 위한 도우미가 잠시 필요할 수도 있다. 연필 잡는 습관이 나쁜 아이들에게 보조용 도구를 끼워 손가락 모양을 강제하듯이, 고용노동부와 우리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지난 7월부터 '안전한 일터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안전한 일터 프로젝트는 정부의 산재 예방 활동을 현장 밀착형으로 대폭 강화하고자 하는 것으로, 전국 고위험 사업장 2만 6천 개소에 대해 ▷사업장별 전담 감독관 1대 1 지정하 ▷추락·끼임·부딪힘·화재폭발·질식 등 5대 중대 재해 예방을 위한 '12대 핵심 안전수칙' 선정 ▷불시점검·시정 조치 및 미이행 시 엄단 등을 특징으로 한다.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감독관 및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인력 900여 명이 2인 1조가 되어 실시하는 점검·감독은 사업장의 경각심 제고 차원에서 예고 없이 불시 방문 방식으로 진행 된다. 고위험 사업장 2만 6천 개소 전부를 최소 1회 이상 직접 찾아가 점검하며 필요하면 추가 점검을 통해 위험 요소가 확실히 시정되었는지 확인한다. 아울러 각종 안전문화의식 향상을 위한 캠페인과 홍보를 병행해 '안전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기본적인 인식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기를 목표로 한다.

이제 어느 정도 먹고살게 된 대한민국은 '품질'을 넘어서 '품격'까지 갖출 때가 됐다. 아무리 좋은 품질의 물건도 사람이 죽어가며 만들었다고 하면 품격을 갖출 수 없다. 이제 산업사고를 줄이고 근로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가며 우리가 세운 산업 강국으로서의 자긍심을 더욱 빛낼 수 있도록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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