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스토어에는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바뀐다. 밝은 빛이 쏟아지는 천장 한 번 올려다보고, 탁 트인 넓은 유리창을 또 바라보고, 쾌적한 냄새와 분위기까지 느끼다보면 자연스레 발걸음이 조금 늦어진다. 굳이 물건을 살 계획이 없어도 괜찮고, 오래 머물러도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공간에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이중원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의 신간 '애플스토어에 가면 왜 기분이 좋을까'는 바로 그 막연한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책이다.
지난 25년간 애플은 전 세계 주요 도시에 약 535개의 애플스토어를 열었고, 그 수는 현재도 증가 중이다. 애플스토어는 각 도시에서 때로는 독립 파빌리온형으로, 때로는 마천루 로비형으로, 때로는 지하형으로, 때로는 쇼핑몰 연계형으로 전략적으로 나타난다.
그동안 세계 곳곳의 주요 도시를 건축으로 읽어낸 저자는 "애플스토어는 단순한 상업시설이 아니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해, 서울 가로수길부터 뉴욕 5번가까지 세계 9곳의 애플스토어를 따라 도시를 여행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애플 스토어인 서울 가로수길 스토어처럼 독립 파빌리온형 매장은 가로의 주연이 새로운 풍경을 만든다. 도쿄 마루노우치와 서울 명동의 마천루 로비형은 번화가의 간선도로와 이면도로를 동시에 살리는 실험적 구조를 갖췄다. 뉴욕 5번가와 밀라노 리버티 광장은 역사적 무게를 존중하기 위해 매장을 지하로 내려보내고, 지상은 시민에게 돌려준다.
싱가포르와 방콕 애플스토어는 쇼핑몰과 연결된 연계형이지만, 단순한 상업시설에 머물지 않는다. 백화점의 맥락을 따라 들어갔다가, 어느 순간 전혀 다른 공간으로 빠져나오는 경험은 이 유형만의 묘미다. 저자는 애플스토어의 유형이 단칼에 나뉘지 않는 이유를 도시의 복잡성에서 찾는다. 도시가 그렇듯, 애플스토어 역시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저자는 애플이 위치를 선택할 때 역사성, 관계성, 유동성, 문화성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고 말한다. 사람의 흐름이 어디서 시작해 어디로 흘러가는지, 도시의 자부심이 어디에 쌓여 있는지, 상업과 문화가 만나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애플은 놀라울 만큼 정확히 짚어낸다.
그래서 애플스토어가 들어선 자리는 종종 극적인 변화를 겪는다. 빛이 바래던 거리는 다시 사람으로 채워지고, 스산했던 광장은 머무는 장소가 된다. 새로 문을 여는 애플스토어마다 그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고, 그 앞은 자연스럽게 '핫플'이 된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치밀한 도시 읽기의 결과다.
공간의 힘은 건축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애플스토어는 친환경 기술을 적극적으로 실험하며, 극도로 미니멀한 유리벽과 날렵한 지붕을 선보인다. 그 결과, 매장 앞에 서 있으면 이곳이 공터인지 광장인지 헷갈리고, 내부에 들어서면 상품 매장인지 박물관인지 잠시 혼란에 빠진다. 그 착각의 순간이 바로 애플스토어가 설계한 경험이다.
또 무엇보다 이 공간에서는 '환대'가 느껴진다. 손님을 빨리 들이고 빨리 내보내는 대신, 오래 머물도록 허락하는 태도. 판매보다 체험을 앞세우는 배치. 처음엔 고도의 마케팅 전략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 그 의심은 누그러진다. 소비자에게 다시 도시와 공간을 돌려주고 있다는 인상이 남기 때문이다.
'애플스토어에 가면 왜 기분이 좋을까'는 애플을 찬양하는 책도, 건축 이론서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온 공간을 다시 보게 만드는 안내서에 가깝다. 책을 덮고 애플 스토어에 가게되면 익숙하다고 믿었던 유리벽과 천장, 계단과 광장이 갑자기 다르게 보인다. 다음에 애플스토어에 발을 들일 때, 우리는 최신형 제품보다 먼저 공간과 위치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158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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