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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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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세상의 모든 아침
파스칼 키냐르 지음/ 문학과 지성사 펴냄

영화평론가 백정우

"1650년 봄, 생트 콜롱브 부인이 죽었다."

파스칼 키냐르의 『세상의 모든 아침』은 이렇게 상실로 시작한다. 고상하고 품위 있는 단어가 아니라 '죽었다.'라고 쓴다. 완전한 절연이고 단절이며 돌이킬 수 없는 현전을 비정하게 표현하는 말, 죽었다. '회한의 무덤'을 작곡한 건 아내 때문일 정도로 생트 콜롱브는 아내를 사랑했다.

2006년 9월 어느 목요일.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열린 '팡테옹 뒤 시네마 프랑세'의 프로그램에는 알랭 코르노 감독의 <세상의 모든 아침>이 포함되었다. 저녁 시간 단 1회 상영이었는데, 길이 막히는 바람에 중간에 내려 광란의 질주를 하였고 상영시간에 딱 맞춰 입장할 수 있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커다란 스크린에 펼쳐지던 아찔한 미장센과 마랭 마레와 생트 콜롱브의 장중한 바로크 음악을 잊을 수가 없다. 파스칼 키냐르의 원작 번역서는 국내에 나오지도 않은 시절이었다.

마랭 마레의 회고조로 진행되는 영화와는 달리 전지적 작가 시점인 책은 콜롱브와 부인의 사랑에 집중한다. 키냐르는 실존 인물인 생트 콜롱브가 기존 악기에 현 하나를 더해서 7개를 만들어 더 깊은 저음을 연주했다는 기록만으로 출발했다. 그에 관한 일화가 거의 없어 창작해낸 두 딸의 이야기는 소설의 드라마를 긴장으로 견인한다. 아름답고 가녀리면서 말 없는 마들렌과 돌풍처럼 거칠고 다혈질인 투아네트의 대조되는 두 세계. 음악을 통해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마랭 마레와 세속과 단절하고 예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속에서 자신의 음악을 지키려했던 생트 콜롱브. 『세상의 모든 아침』이 던진 근본적 질문은 이것이다. 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혹은 음악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마레에게 음악이란 감동과 아름다움의 언어인 동시에 권력과 명예로 가는 수단이었으나, 콜롱브는 상실과 고독에서 진실을 찾고 아내와의 사랑을 영원히 귀속시켜주는 길이었다는 것.

성석제는 "살면서 같은 밥상은 두 번 오지 않는다."고 했다. 한 번 흘러간 감흥과 감정은 다시는 똑같이 재현되지 않는다, 는 얘기일 터. 책의 112쪽은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고 시작한다. 지나간 시간은 결코 되돌릴 수 없고, 화려한 순간은 반드시 사라진다. 그러나 음악이 남긴 흔적(상실과 고독을 정직하게 마주한 자의 울림) 만은 사라지지 않는다, 는 파스칼 키냐르의 진술이자 대미를 위한 결의문처럼 읽힌다. 이승과 저승 사이의 경계가 없는 세계가 근원적 배경이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영화평론가 백정우

예술이란 무엇일까? 권력의 상징물이기도 하고 상실을 견디게 하는 유일한 언어일 수도 있다. 이제는 정말 노인이 된 생트 콜롱브가 아침마다 만진 보쟁 씨의 그림(죽은 아내가 마시고 갉아먹은 사물들. 짚에 싸인 포도주병과 포도주잔과 주석 접시에 놓인 고프레)은 파스칼 키냐르와 생트 콜롱브 사이를 이어주며 영감을 실어 나른 나룻배가 아니었을까.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충만한 무언가에 휩싸여 집까지 걸어갔다. 귓가에는 비올라 다 감바의 거장 조르디 사발이 연주하는 '라 폴리아'가 울려퍼졌다.

(추신) 병오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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