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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채성준] 한국의 위기, 가장 경계해야 할 건 자만과 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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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성준 서경대 교수

채성준 서경대 교수
채성준 서경대 교수

병오년 새해가 밝았지만, 한국에 대한 위기 경보음이 곳곳에서 들린다. 경제성장률 둔화, 인구 급감, 안보 불안 등 구조적 위험이 누적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정도면 성공했다"는 안도감에 머물러 있다. 사실 한국이 6·25전쟁에서 맞서 싸웠던 중국이나 북한을 경제적으로 앞서기 시작한 건 불과 한 세대, 길어야 40~50년 남짓이다. 그러나 이 짧은 성취를 마치 영구적 우위로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자만하는 사이, 어느새 주변 판도가 달라지고 있다.

한때 우리가 얕보던 중국은 한국을 추격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명목 GDP는 최근 통계 기준 약 17.5조 달러로, 한국(약 1.7조 달러)의 10배 이상이다. 1인당 GDP는 여전히 우리가 앞서지만, 대중국 무역흑자가 2023년부터 적자로 반전되고 철강·전자·화학·조선·가전·자동차·생필품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중국산 저가 공산품이 국내 제조업 전반을 무서운 속도로 압박하고 있다. 중국은 제조업 규모·수출 역량·외환 보유고·우주개발·해군력이나 인공지능·반도체·교육·혁신역량·국제 금융 영향력·핵 억제력 등에서 미국과 경쟁하는 잠재적 패권국가다.

북한 또한 오랫동안 '곧 무너질 낙후된 존재'로만 인식해 왔다. 그러나 이제 그 전제를 냉철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약 50기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ICBM·SLBM·전술핵 등을 실전 배치 단계로 발전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핵미사일까지 개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리가 무시하고 방심하는 사이, 체제 보장 장치로서 핵 무력을 확보하며 한반도의 군사적 주도권까지 흔들 수 있는 단계에 진입한 것이다. 여기에 북·중·러 밀착 관계가 형성되면서 국제사회의 외톨이를 벗어나 역내 전략 구도의 한 축이 되고 있다.

한국의 위기는 외부 요인 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우리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 "그들은 더 이상 경계 대상이 아니다" "지금 방향이 틀리지 않는다" 등 정치지도자의 이런 달콤한 말이 경각심을 무디게 하고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국제정치는 자만이나 정치적 구호가 아닌 냉정한 객관적 지표 위에서 작동한다.

일본이 타산지석이다. 1980~90년대 일본은 세계 2위 경제 대국이자 제조업·기술 강국으로 군림했다. 그때 세계는 "일본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버블 붕괴 이후 '잃어버린 20년, 30년'이 찾아왔다. 이는 외부 충격 때문이 아니라 내부 환상에서 비롯됐다. 기득권 유지에 매몰되고, 인구감소·저성장을 방치하며, "이미 월등히 앞서 있다"는 암묵적 합의가 변화를 향한 경고 신호를 외면하도록 만들었다.

현재 한국이 겪는 저출산·성장 정체·산업경쟁력 약화 등 구조적 문제는 당시 일본과 놀랄 만큼 닮아있다. 합계 출산율은 OECD 국가 중 최하위로 인구는 이미 감소 국면이다. 이는 내수시장 축소, 병력 자원 감소, 혁신역량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주력 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도 하락세이고, 우리를 추격하는 국가들은 빠르게 늘고 있다. 국제환경 역시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되면서 외교적 선택지는 좁아지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급변하는 국제질서까지 겹치면서 위협이 증폭되고 있다.

중요한 점은 위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를 둘러싼 중국과 북한이 기대하는 건 한국의 실패가 아니라 방심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처럼 정치권의 포퓰리즘이 국민을 계속 현혹한다면, 위기 신호는 현실적 위협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역사를 돌아보면, 강대국은 외부 공격보다 내부 착각으로 무너지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한국은 단 한 세대 만에 산업화·민주화를 이루고 선진국 반열에 오른 드문 사례다. 그렇지만 한 세대 만에 이뤄진 성취는 또 다른 한 세대 만에 흔들릴 수 있다는 점 또한 잊어선 안 된다. 오래 번영하는 국가는 잘난 국가가 아닌 긴장을 유지하는 국가다.

병오년은 붉은 말의 해로, 관운장의 적토마가 떠오른다. 관운장은 무예와 충절의 상징이지만 지나친 자신감이 교만으로 변질되어 형주(荊州)를 잃고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힘이 아니라 힘을 다루는 태도가 운명을 갈랐다는 점은 오늘 우리가 새겨야 할 교훈이다. 자만이 아니라 경계가 미래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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