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읽남(음반 읽어주는 남자)은 음원과 스트리밍의 시대에 음반을 매개로 음악을 다시 들여다봅니다. 음악 만큼 공 들여 사진을 찍고 채색해 디자인한 앨범 커버, 뮤지션이 앨범 속지에 적어 표현하는 포부와 속마음, 누가 어떤 연주와 임무를 맡았는지 아는 걸 넘어 그 시대 음악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앨범 크레딧 등 음반을 통해 음악을 듣는 맛을 더욱 살려봅니다. 요즘보단 옛날 음반이 더욱 맛난 것 같습니다. <편집자 주>
지난 5일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국민배우 중 국민배우'이자 '대구 출신 명배우' 안성기는 69년 동안 17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그러니 그가 출연한 영화 OST(오리지널 사운드트랙)도 하나의 신문 지면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맡은 배역이 그의 영화인생과 닮은 영화 OST 음반 셋을 선정해 소개한다.
첫 작품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다.
안성기가 1990년대에 주연으로 출연한 '남부군' '그대 안의 블루' '하얀전쟁' '투캅스' '태백산맥' '영원한 제국' 같은 작품들은 곧 그의 전성기를 나타낸다. 그러다 90년대의 마지막 해에 작업한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조연으로 자리를 옮겨 존재감을 드러낸 작품이다.
안성기가 연기한 살인범 장성민은 거의 대사 없이 극의 긴장감을 유지 내지는 폭발시키는 플롯 그 자체였다. 영화 말미에선 영화 '칠수와 만수'와 투캅스 이후 재회한 우영민 형사 역 박중훈과 1대1 격투 장면으로 20세기 대한민국 영화사의 마지막 페이지를 화룡점정했다. 안성기는 이 작품으로 그간 무수히 받았던 남우주연상 말고 첫 남우조연상(제22회 청룡영화상)을 거머쥐었다.
이후 21세기 작품들에선 정말로 주연작이 꽤 줄어들었다. 그러나 주연급 존재감으로 빛을 냈다. 대표적 작품이 영화 '무사'(2001)다.
주인공은 일찌감치 정우성(노비 출신 무사 여솔), 주진모(고려 장군 최정), 홍콩 배우 장쯔이(명나라 부용공주)가 차지했고, 안성기는 고려군 하급무사 진립 역할로 나왔다. 하지만 그냥 조연이 아니었다. 베테랑이었다. 노련한 전투 감각을 바탕으로 지휘가 서투른 젊은 장군 최정을 묵묵히 돕고, 무사 여솔을 챙기며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더니, 결국 동료 모두로부터 신뢰를 얻어 사실상 리더가 된다.
고려로 돌아가기 위한 막판 혈투를 끝내고 나니, 모두 죽고 진립 뿐이다. 남은 건 동료들의 유품을 실은 작은 나룻배 뿐이라 망망대해를 건너긴 어려워 보였지만, 진립은 "그래도 가야 한다"며 배에 오른다. 되돌아 보니 이 캐릭터는 그때쯤 한국영화계 속 안성기의 위치와 존재감, 그리고 그에게 부여된 일종의 사명을 비유해 보여준듯 하다.
서사는 5년 뒤 출연한 영화에서도 이어졌다. 주연 안성기의 존재감을 다시 드러낸 영화 '라디오스타'(2006)다.
철 지난 가수 최곤(박중훈 분)을 묵묵히 뒷바라지하는 매니저 박민수로 등장한다. 박민수는 최곤 바라기다. 자신이 가수왕으로 만든 최곤이 화려한 조명을 받을 때 지근거리 그림자 안에 있었고, 시대가 흘러 한물 간 최곤의 어두컴컴한 여관방에도 함께 있었다. 여기서 최곤을 한국영화로 치환해보자. 활황과 침체를 반복한 한국영화계를 안성기가 언제 한시라도 떠난 적 있었던가.
안성기는 지난 2019년부터 혈액암으로 투병했지만 최근까지도 회복에 매진하며 복귀를 준비했다. 60년 넘게 영화판에서 살았지만 단 몇 년의 휴지기도 견딜 수 없었을듯 싶다. 투병 기간에도 안성기는 영화 '종이꽃'(2020)으로 휴스턴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아들의 이름으로'(2021)로는 시카고 인디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새로운 전성기를 맞을 채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기에 더욱 아쉬움을 남긴다.
셋 중 가장 들을 거리가 많은 앨범은 라디오스타 OST다. 박중훈이 직접 불렀고 록 밴드 노브레인 버전도 수록된 '비와 당신'을 비롯해 안성기가 극 중 늘상 흥얼거린 신중현의 '미인', 안성기의 60년 친구 조용필의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 등이 수록, 한국 가요 명곡 컴필레이션 앨범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OST는 팝송인 비지스의 'Holiday'가 유명하고, 데뷔 앨범을 내기도 전 록 밴드 체리필터가 송대관의 '해뜰날'을 재해석해 불렀다.
무사 OST는 일본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음악을 제작했던 일본 작곡가 사기스 시로가 담당했다. 특정 냄새가 과거의 기억과 감정을 강렬하게 불러일으키는 '프루스트 효과'처럼, 몇몇 곡을 들으면 저절로 안성기가 열연한 백전노장 진립과 사막의 모래바람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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