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돼지는 길상과 흉조를 함께 상징하는 동물이다. '돼지같이 먹는다'라거나 '돼지 같은 욕심'이라는 말에서 흉조의 의미가 드러나며, 지저분한 모습을 빗대어 '돼지우리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반면 '돼지 돈(豚)자'에 복(福)이란 뜻도 있는 것처럼 돼지는 복과 행운을 가져오는 동물로도 여겨진다. 그래서 돼지꿈을 꾸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고대 우리 동이족들은 돼지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시신을 매장할 때 돼지를 껴묻거리로 함께 묻는 풍습에서 동이족이 돼지를 어떤 존재로 여겼는지 짐작할 수 있다. 가장 이른 시기의 껴묻거리 돼지 뼈는 내몽골 오한기(敖漢旗)지역의 동이족 유적인 흥륭와(興隆洼, 서기전 6200~서기전 5200)문화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고조선 선조들의 집 안 무덤과 돼지의 비밀
흥륭와 문화에서는 고조선을 대표하는 유물인 빗살무늬 토기가 많이 발견되었으며, 약 400~600명이 함께 생활한 가장 이른 시기의 대형 취락지구가 발견되었다. 그런데 흥륭와 사람들은 집 안에 시신을 매장하는 풍습을 가지고 있었다. 또 껴묻거리로 돼지를 함께 묻기도 했다. 이는 흥륭와 사람들이 돼지를 길들여 가축으로 사용했음을 알려 준다. 집 안에 시신을 묻는 것은 조상들이 후손을 보호해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며, 삶과 죽음이 서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했음을 뜻한다. 특히 시신과 함께 돼지를 묻었다는 점에서, 돼지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라 사후 세계와 관련된 특별한 존재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은 동이족 문화에서 돼지가 매우 중요한 상징적 동물이었음을 잘 보여 준다.
흥륭와문화에서 시작된 돼지껴묻기 풍습은 이후에도 오래 동안 이어졌다. 이 전통은 고조선 유적인 하가점하층문화(夏家店下层文化, 서기전 2000~서기전 1500)에 이르기까지 계속 확인된다. 한편 우리나라 통영 욕지도에서는 약 6000년 전의 돼지 토우가 발견되기도 했다. 또한 홍산문화의 옥저룡(玉猪龍)은 돼지의 귀와 코를 가진 용의 모습이어서 용의 기원이 돼지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돼지는 동이족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존재였다. 돼지를 중시하는 동이족의 인식은 중원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까. 이제 시선을 중원 지역으로 옮겨 그곳 사람들이 돼지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살펴보자.
◆중원으로 이어지는 돼지의 상징
하북성 한단(邯鄲)시에서 1972년 발견된 자산문화(磁山文化)에서도 돼지를 껴묻는 풍속이 확인되는데 이는 서기전 약 5900년 무렵의 일이다. 또 황하 유역 중·상류에 속한 섬서성 서안시 임동(临潼)에 위치한 강채유지(姜寨遗址)는 약 5천~6천 년 전의 유적으로 앙소문화(仰韶文化, 기원전 5000~3000년) 초기 단계에 속한다. 강채유지에서는 '돼지 얼굴무늬 작은 입 채도 병'이 출토되었는데, 돼지 눈과 얼굴 그리고 특유의 코가 검은색으로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 유물은 당시 사람들이 돼지를 매우 의미 있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잘 보여 준다.
고대인들은 자신들이 중요하게 여긴 존재, 즉 토템을 일상에서 쓰는 그릇에 새겨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돼지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그들의 신앙과 관련된 존재였을 것이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돼지를 숭배했다고?"하고 의아하게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돼지 그 자체를 숭배했다기보다 돼지가 지닌 의미와 상징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뜻이다. 즉 눈에 보이지 않은 생각이나 신적인 존재를 돼지의 모습으로 표현했다고 이해하면 된다. 이런 돼지 형상은 당시 사람들의 공동체 정체성과도 깊이 이어져 있다.
◆전욱의 아버지는 왜 돼지일까?
돼지를 신앙적 존재로 인식한 흔적은 고고학 유물뿐 아니라 신화와 문헌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동이족의 인문·지리서이자 신화집인 『산해경(山海經)』이다. 『산해경』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유사(流沙)의 동쪽, 흑수(黑水)의 서쪽에 조운국(朝雲國)과 사국(司國)이 있다. 황제(黃帝)의 아내 뇌조(雷祖)가 창의(昌意)를 낳았는데 창의는 약수(若水)에 내려와 살며 한류(韓流)를 낳았다. 한류는 길쭉한 머리에 근이(謹耳), 사람의 얼굴에 돼지 주둥이, 비늘 돋힌 몸에 통뼈로 된 (굵은) 다리, 돼지의 발을 하고 있는데 촉산씨의 자손인 아녀(阿女)를 아내로 맞아 전욱(顓頊)임금을 낳았다."( 『산해경』 「해내경(海內經)」)
이 글에서 주목할 점은 『산해경』에서 동이족인 전욱의 아버지 한류가 돼지의 형상으로 묘사된다는 사실이다. 왜 하필 돼지였을까? 이에 대한 단서는 한(漢)나라 때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공자가 지은 『춘추(春秋)』에 주석을 달은 『춘추설제사(春秋說題辭)』에서 찾을 수 있다. 『춘추설제사』에는 "북두칠성의 정기가 흩어져 돼지가 되었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또 당나라 때 현종의 치세와 궁정 생활을 잡록 형식으로 쓴 역사·일화집 『명황잡록(明皇雜錄)』에서도 돼지를 북두칠성에 비유하고 있다.
서진(西晉)시대 역사가인 황보밀(皇甫謐, 215~282)이 쓴 『제왕세기(帝王世紀)』 에는 북두칠성의 일곱째 별빛이 여추를 감응시켜서 임신한 결과 전욱이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전욱의 아버지는 북두칠성이라는 것이다. 고대인들은 북두칠성의 신비한 힘, 별의 정기를 돼지로 상징했을 정도로 돼지를 높였다. 그래서 전욱의 아버지인 한류를 돼지의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다. 여러 시대의 문헌이 공통적으로 북두칠성과 돼지를 연결하고 있다는 점은, 이러한 인식이 특정 지역이나 특정 시대만의 생각이 아니라 오랜 시간 공유된 상징 체계였음을 보여준다.
또 신화에서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존재를 동물의 형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에서 한류는 단순한 인물이 아니라 창의의 아들이자 전욱의 아버지로서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자, 즉 교신자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돼지
이제 시야를 황하의 중·하류에 자리한 대문구문화(大汶口, 서기전 4300~서기전 2600)로 옮겨 보자. 대문구문화는 중국에서도 인정한 동이족 문화이다. 대문구문화에서는 '돼지 모양의 규(猪鬹)'가 발견되었다. 이 돼지 규(鬹)는 붉은 몸체를 하고 있고, 등에는 아치형의 손잡이가 달려 있으며, 손잡이 뒤쪽에는 술이나 물을 붓는 구멍이 있다. 내용물은 돼지가 벌린 입을 통해 흘러나오도록 만들어졌다. 돼지 규는 입을 벌리고 하늘을 우러러보는 모습을 하고 있어, 마치 무엇인가를 하늘에 호소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런 모습으로 볼 때, 돼지 규는 일상용 그릇이 아니라 하늘이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한 예기(禮器)였을 것이다.
◆태양조의 날개는 왜 돼지일까
이제 장강 중하류로 이동하자. 안휘성(安徽省)에 위치한 능가탄(凌家滩) 유적지에서는 옥으로 만든 새 장식이 출토되었다. 이 유물의 몸통에는 태양이 새겨져 있고, 활짝 편 양쪽 날개는 돼지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새는 태양을 상징하는 태양조이다. 한편 『산해경(山海經)』 「해외남경(海外南經)」에는 "병봉(幷封)이 무함(巫咸)의 동쪽에 있는데, 그 생김새가 돼지 같으며 앞뒤로 다 머리가 있고 검다"고 표현했다. 이 병봉의 모습은 태양조의 양 날개가 돼지로 표현된 것처럼 앞뒤에 모두 돼지가 있어서 몸통이 이어진 형상과 닮아 있다. 즉 병봉은 태양조의 날개를 표현 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왜 태양조의 날개는 돼지일까?
여러 책에서 북두칠성의 정기(精氣)가 돼지가 되었다고 말한다. 고대 동이족에게 북두는 생명의 근원이었고,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북두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이런 인식 속에서 돼지는 죽음이나 끝을 뜻하는 동물이 아니라, 영혼을 하늘로 되돌려 보내는 생명의 매개체였다. 태양조의 양 날개가 돼지로 표현된 것은, 이 새가 죽은 이의 영혼을 북두로 인도한다는 믿음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동이족은 일찍이 돼지를 껴묻거리로 사용했고, 돼지 토우를 만들어 자신들의 신앙을 표현했다. 장강 하류의 하모도(河姆渡, 서기전 5000~서기전 3000)에서 발견되는 토기에는 배 속에 태양을 품은 돼지가 그려져 있는데, 이것 역시 하늘의 신성과 연결된 존재임을 보여준다. 돼지는 풍요를 상징하기도 하는데, 동이족은 그 풍요의 근원이 바로 북두에 있다고 믿고 그 힘을 돼지라는 상징을 통해 표현했다. 이렇게 볼 때, 돼지는 동이족의 세계관에서 하늘·생명·영혼·풍요를 잇는 핵심적인 상징 동물이었다.
◆『삼국사기』에 남은 돼지 신앙
내몽골, 한반도, 하북성, 황하의 중·상류, 산동반도, 양자강 중·하류 지역에서는 돼지를 함께 매장하거나 돼지 토우를 만들어 묻는 공통된 풍습이 널리 나타난다. 이러한 행위는 동이족이 자신들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물음의 답이자, 신앙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돼지를 껴묻고, 돼지를 형상화하며, 돼지를 우주 질서와 연결해 이해하는 사고방식은 단순한 생활 풍습이 아니라, 동이족의 세계관과 사후관을 담은 신앙 체계였다. 그러한 신성 인식에서 동이족은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돼지를 제물로 바쳤다.
돼지를 신성하게 여긴 의식은 시간이 흘러도 그 흔적이 남아 우리 역사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유리왕 때의 일화가 전한다. 하늘과 땅에 제사 지내는 제사에 사용할 교시(郊豕:제사에 사용하는 돼지)가 달아나자, 탁리(託利)와 사비(斯卑)가 돼지를 붙잡으며 다리의 힘줄을 끊었다. 유리왕은 "하늘에 제사지낼 희생에 어찌 상처를 입혀야 하겠느냐?"라고 꾸짖으며 두 사람을 처형했다. 이는 돼지가 하늘에 대한 제사에 제물로 사용되는 신성한 희생물로 여겨졌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또 유리왕 21년에 교시가 달아나자 설지(薛支)를 보내 그 뒤를 쫓게 했는데, 설지는 국내성 위나암에서 돼지를 붙잡아 민가에 맡겨 기르게 한 뒤 돌아와서 그 곳의 지형과 자원이 풍부하다며 천도를 건의했다. 이 일화는 돼지가 단순한 제물이 아니라, 국가의 도읍을 정하는 데까지 관여하는 신성한 힘을 지닌 존재로 인식되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돼지에 대한 신성 인식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종묘와 사직에 큰 제사를 지내는 납일에 납향(臘享)의 제물로 돼지가 사용되었다. 이처럼 돼지는 우리 동이족이 제천의식을 행할 때 바친 가장 신성한 희생물 가운데 하나였으며, 하늘·생명·공동체를 잇는 상징적 존재로 오랫동안 인식되어 왔다.
오늘날 돼지가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배경은 주로 서구의 오래된 역사와 종교 전통에서 비롯되었다. 고대 히브리 전통에서 돼지는 불결한 동물로 규정했고 이후 무슬림 사회의 『코란』에서 "죽은 고기와 피와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했는데, 이는 돼지를 신성시한 것이 아니라 기피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인식이 근대에 들어 우리 사회로 전해지면서, 돼지는 점차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동물로 인식되게 되었다.
병오년 새해가 밝았다. 비록 돼지해는 아니지만, 한때 우리 동이족이 신성하게 여겼던 돼지의 의미를 다시 떠올려 본다. 풍요와 생명, 번성을 상징했던 그 의미를 되새기며, 새해에는 넉넉함과 좋은 기운이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돼지꿈을 대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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