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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희의 법도 문학도 아닌] '체면이거나 재산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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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희 변호사
김계희 변호사

'아, 그이의 귀는 얼마나 잘생겼는지!' 그녀는 듬직하고 당당한 그의 모습, 특히 둥근 모자 가장자리를 떠받친 모양이 강렬하게 인상적이었던 귀의 연골을 보며 생각에 빠졌다. 페테르부르크 기차역에서 자신을 마중 나온 남편 알렉세이를 본 안나의 독백이다. 그러나 브론스키에게로 마음이 움직이면서 이러한 찬탄은 '그의 귀는 왜 저렇게 볼록 튀어나왔을까?'로 바뀐다.

그리고 이혼을 요구하는 그녀에게 남편 알렉세이는 당분간은 체면이라는 외적 조건을 지켜줄 것을, 그동안 자신은 제 명예를 지킬 방법을 생각해보겠노라고 답한다. 그 방법은 쉬이 찾아지지 아니하고 알렉세이는 공공연한 '쇼윈도 부부' 역할극을 안나에게 요구한다.

상고이유서에서 최태원 회장 측은 소설 속 안나 부부처럼 자신들도 '쇼윈도 부부' 생활을 이어갔다고 자신의 불행했던 결혼생활을 강조했다.

<사랑과 전쟁>이 실화에 바탕을 둔 드라마이며 현장에서 마주하는 진실은 훨씬 더 지독한 드라마라는 것과 '쇼윈도 부부' 또한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사회적 관례로 다수 존재한다는 것이 길지 않은 변호사 생활에서 체득한 냉혹한 현실이다.

체면이거나 재산이거나 또는 양자 모두가 '쇼윈도 부부'를 발생시키고 존속시킨다. 안나의 경우처럼 유책배우자가 이혼을 요구할 때 상대방은 이혼하고 위자료를 청구하거나 이혼에 불응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소설 속 안나의 남편 알렉세이는 '체면'을 지키기 위해 이혼에 불응하며 '쇼윈도 부부'를 택했지만, 소설 밖 현실에서는 '재산'을 지키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혼은 곧 재산분할을 의미하므로 '쇼윈도 부부'는 결국 재산분할을 막기 위한 최후의 보루인 셈이다. 그리고 새로운 사랑을 위해 이혼을 쟁취(?)해야 하는 유책배우자로서는 상대방으로부터 원만한 이혼 동의를 끌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쇼윈도 부부' 요구를 전략적으로 수용하기도 하지만, 이는 임시방편일 수밖에 없다.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으나,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서 이혼에 불응하고 있는 경우라면 상대방도 혼인생활을 계속할 의사는 없다 할 것이어서 결국 이혼청구는 인용된다.

한편 이혼청구를 당하는 쪽이 유책배우자일 때 '재산'을 지키고자 하는 '쇼윈도 부부' 전략은 더 처절하고 치밀할 수밖에 없다. 그/그녀는 '쇼윈도 부부'에 동의만 해준다면 상대방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겠노라고 제안한다. 부동산 명의 이전은 물론이고, 보기 싫다면 따로 나가 살겠다고도 한다. 이혼하는 경우와 실제로 다른 것은 그저 서류 한 장일 뿐이라고 강변한다.

그런데 여기서 그/그녀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라진다. 그는 혼인신고를 해야 할 상대방이 있지 않은 한 '쇼윈도 부부'를 선택한다. 반면 그녀는 그 서류 한 장이 여전히 자신을 누군가의 아내, 며느리 등으로 옭아매고 있으므로, 그 서류 한 장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다고, 온전히 자신으로 새 출발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명절이니 집안 행사니 아무것도 챙길 필요가 없다고 해도 그녀는 그 서류 한 장으로 인해 명절이나 집안 행사에서, 그 수많은 관계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가 없다. 누군가의 아내, 며느리에게 부여되는 관습적·사회적 의무가 누군가의 남편, 사위에게 부여되는 의무와 아직은 같지 않다. 아니 적어도 정서적으로 같다고 받아들여 지지 않는다. '쇼윈도 부부'이기 위해 그녀가 담당하는 배역의 분량이 그보다 많다는 것이 아직은 엄연한 현실이다.

소설 속 안나는 죽었고, 세기의 이혼은 재산분할만 남았다. '쇼윈도 부부'의 체면은 지켜졌는지, 또 재산은 지켜질 수 있을지, 그 해답은 비슷비슷하다는 행복만큼이나 모호하다.

청혼은 사랑합니다는 고백으로 시작하지만, 결혼은 사랑하겠습니다는 약속과 다짐으로 마무리된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사랑하겠습니다!'라는 의지. 안나도 한때는 그런 의지를 발휘하였다. '그는 좋은 사람이야. 아주 정직하고 성실하고 선량해. 자신의 분야에서도 탁월하지.'라고 혼잣말을 한다. 마치 남편을 비난하면서 그를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설득하는 사람들에게 남편을 옹호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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