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가 철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구미는 내륙 수출 전진기지로서 산업 규모와 경제적 기여도 면에서 경북을 넘어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산업도시이지만 1905년 경부선 개통 이후 120년이 넘도록 신규 철도 신설 사업에서 사실상 소외돼 왔다.
◆험난한 구미 가는 길
"구미로 출장을 가는 사람 입장에선 동선, 시간 낭비가 너무 심하고 피로감을 배로 늘립니다." 서울에서 KTX를 타고 김천구미역을 내린 한 기업인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역명에 '구미'가 들어가지만 사실상 김천에 있기 때문에 구미국가산단까지 가기 위해서는 다시 차량으로 30~40분가량을 이동해야만 한다. 구미를 찾는 기업인과 연구 인력, 공공기관 관계자들 사이에서 이런 불만은 낯설지 않다. KTX를 타고 구미를 방문하기 위해선 김천구미역에서 내려야 하고, 이후 택시나 별도의 차량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구미상공회의소는 고육지책으로 '김천구미역과 구미국가산업단지'를 오가는 전용 리무진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김천구미역 이용객의 70%가량이 구미와 연관을 맺고 있지만 역에서 구미 간 접근성이 떨어지는 게 구미 상공인들의 고민이다. 부득이 구미상공회의소가 자체 비용을 들여 'KTX 출장 리무진'을 운영하는 실정이다.
◆산업구조와 수요 인식의 한계
구미가 120년 넘게 신규 철도사업에서 소외된 배경에는 도시 형성과 산업 구조, 교통 수요에 대한 사회경제적 인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구미는 지난 1905년 경부선 개설 이후 한동안 독립적인 도시 기능이 뚜렷하지 않았고, 본격적인 인구 증가와 산업화는 1960~70년대 국가산업단지 조성 이후 시작됐다.
국가 철도 간선망의 기본 구조가 완성된 뒤 산업도시로 성장하면서, 신규 철도 노선에 대한 요구가 제때 형성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산업화 초기 구미의 생활권과 경제 활동은 도시 내부와 인접 지역에 국한됐다. 장거리 이동 수요가 크지 않았고, 교통 선택의 기준도 '속도'보다는 비용과 접근성이 우선됐다. 또한 수도권과 지방을 하루 안에 오가는 '1일 생활권' 개념은 현실적이지 않았으며, 철도는 필수 인프라보다는 보조 수단으로 인식됐다.
산업 구조 역시 철도 수요를 키우는 데 제약으로 작용했다.
전자·전기 산업 중심의 구미 국가산단은 철도 화물이 강점을 갖는 중량물·벌크 물류 비중이 크지 않았고, 신속성과 유연성이 높은 도로 물류가 더 효율적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경부고속도로와 국도망을 기반으로 한 트럭 운송 체계가 일찌감치 구축되며 산업 성장의 토대가 됐고, 이는 철도 신설 필요성을 상대적으로 약화시키는 요인이 됐다.
고속철도(KTX) 도입 초기에도 이런 지역 내 인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에는 'KTX 운임이 비싸다', '우리나라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회의론 속에 이용률 부진과 적자 논란이 이어졌다.
특히 지역 내 철도 수요와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되지 못하면서 철도는 비용 대비 효율이 낮은 투자로 여겨졌고, 신규 노선 필요성은 우선순위에서 밀려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산업 환경과 이동 방식이 급격히 변화하면서 이동 시간 자체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도래하는 등 패러다임이 전환됐다.
'시간은 곧 돈'이라는 인식이 개인과 기업의 의사 결정 기준으로 자리 잡으면서, 전날 출발하던 출장과 이동은 당일·즉시 이동으로 바뀌었고, 수도권과 지방을 하루 안에 오가는 1일 생활권 역시 현실이 됐다.
◆정치·정책 결정 과정의 아쉬움
지역에서 가장 아쉬워 하는 철도 사업은 경부고속선(KTX)이 구미를 경유하도록 못한 것이다. 현재까지도 지역 정치권이 KTX 구미역 정차나 신공항과 연계한 신규 철도 노선 반영을 추진하고 있지만, 경부고속선이 처음부터 구미를 축으로 설계되지 못한 구조적 한계로 인해 어려움이 반복되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추진된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정부 차원의 선제적 판단과 혜안이 뚜렷하게 드러난 사례로 평가된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차도 없는데 왜 고속도로를 만드느냐'는 비판 속에서도 산업화와 물류 확대를 내다보고 도로 건설을 강행했다. 특히 경부고속도로를 구미국가산업단지 입지와 맞물리도록 설계했고, 향후 확장을 염두에 두고 노선 양옆의 부지를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등 장기적인 안목을 보여줬다.
반면 철도 정책에서는 이 같은 국가 차원의 선제적 혜안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속철도(KTX) 노선이 논의되던 당시 정책의 초점은 서울~대전~대구~부산을 잇는 국가 간선 축을 얼마나 빠르고 직선적으로 연결하느냐에 맞춰졌고, 향후 국가산업단지 성장이나 중간 거점 도시의 역할에 대한 고려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평가다.
이 과정에서 구미는 지리적으로 직선화 노선에서 벗어나 있다는 이유로 검토 대상에서 자연스럽게 밀려났고, 철도 수요가 본격적으로 가시화된 이후에야 구미 철도 필요성이 뒤늦게 제기됐다. 이미 노선이 확정된 뒤였던 만큼 지역의 선택의 폭은 좁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고속철도 선형을 바꾸기 어려운 상황에서 나온 차선책이 김천구미역 설치였다. 이는 구미의 고속철도 접근성을 일정 부분 보완했지만, 도심과 국가산업단지를 직접 연결하지 못해 산업·생활 교통 측면에서 여전히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정우성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제조기업·혁신기업의 수도권 집중 현상을 지적하며 "지역 거점 도시를 중심으로 한 교통·산업 인프라 확충이 국가 균형발전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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