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사진첩 속 흑백 사진 한 장. 네댓살쯤 된 나는 엉거주춤 서 있고, 어른들은 선글라스를 낀 채 달성공원 입구를 바라보고 있다. 기억은 희미하지만, 사진이 증명하는 장소는 동물원이다. 키다리아저씨가 무서워 눈을 감고, 어머니 손에 이끌려 입구를 지나던 순간. 코끼리와 기린의 윤곽만 남은 장면들. 유년의 기억 속 동물원은 언제나 조금 두렵고, 조금은 설레는 공간이었다. 그 장소가 머지않아 사라진다.
동물원을 떠올리면, 인간 역시 전시된 존재였다는 불편한 역사와 만나게 된다. 데즈먼드 모리스의 '인간 동물원'은 현대 도시를 '인간이 갇힌 동물원'에 비유하며, 문명화가 인간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지적한다. 인간은 본래 작은 집단에 익숙하지만, 도시라는 거대 집단 속에서 살면서 스트레스와 사회적 긴장이 높아진다고 모리스는 말한다. 그의 관찰은 반세기 전이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설득력이 있다.
더 불편한 것은, 인간을 실제로 전시했던 '인간 동물원'의 역사다. 19~20세기 유럽과 미국에서는 비서구 지역 출신 사람들을 '원시적' 생활 방식으로 재현해 관람객 앞에 내보낸 사례가 있었다. 1906년 뉴욕 브롱크스 동물원의 '원숭이 집'에서는 콩고 출신 청년 오타 벵가가 유인원과 함께 전시됐다.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이러한 행위는 인간의 대상화와 차별이 얼마나 쉽게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최근 열린 '애니멀, 휴머니티-인공지능'을 주제로 한 전시는 이러한 문제를 현재형으로 되돌린다. 동물과 인간의 경계, 관리와 통제, 윤리라는 명분은 이제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존재에게까지 확장된다. 인간의 학습과 추론을 모사하는 기계 앞에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누가 설계자이고, 누가 관람 대상인가. 이제 관찰의 시선은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달성공원 동물원의 이전은 표면적인 공간 이동에 그쳐서는 안 된다. 1970년대 조성된 기존 동물원을 떠나, 동물 복지를 고려한 새로운 대공원으로 옮기겠다는 결정은 단지 쾌적한 관람 환경을 만들고 케이지를 넓히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동물을 바라보는 인간 중심적 시선을 바꾸고, 그 안에 비친 인간 자신의 모습을 함께 성찰해야 한다.
동물원 옆 미술관에서 우리는 결국 인간을 되돌아본다. 전시된 동물의 눈빛 속에서, 그리고 스스로 만든 울타리 안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인간의 모습을 본다. 달성공원의 상흔과 새로 지어질 대공원의 꿈 사이에서, 달성공원 이전이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시각과 성찰의 계기로 남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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