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수가 4천200여명에 불과한 경북 의성군 안계면엔 미술관이 한 곳 있다. 지난 2022년 3월 문을 연 안계미술관이다. 서양화가인 김현주(43) 관장이 40년도 넘은 시골 목욕탕을 개조해 개관한 작은 미술관이다. 의성 지역에서 미술전시 공간으로는 유일하다. 리모델링을 했지만 목욕탕 타일 등 건물이 가진 고유한 매력을 남겨둔 독특한 공간이 눈길을 끈다.
안계미술관은 의성군의 문화 중심지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개관 이후 4년 동안 모두 46차례 전시를 선보였다. 연간 5천명 정도가 방문한다. 관람은 무료다. 평일에는 인근의 초·중·고등학생들이 삼삼오오 몰려와 전시를 구경하고, 학부모들도 주요 관람객이다. 주말에는 인근 대구와 군위, 안동 등 인근 도시에서도 관람객이 다녀간다. 지금은 내부 수리로 임시 휴관 중이다.
지난 15일 안계미술관에서 만난 김현주 관장은 "문화예술 향유 기회가 부족했던 지역 주민들에게 다양한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전시공간을 열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에서 시작한 게 벌써 5년차가 됐다"며 "다들 미술관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해주시는 덕분에 뿌듯함도 크다"고 말했다.
-다소 늦은 나이에 미술을 시작했다.
▶대학에선 동아시아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다가 2008년쯤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로 어학연수를 갔다.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 영어를 잘하면 직업적으로 선택의 폭이 넓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어학원을 다니며 남는 시간을 활용해 2년제 대학인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다양한 수업을 들었다. 동양미술사에 관심이 생겼고 공부를 더 해봐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미술학자가 돼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미국에서 정착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런 생각으로 포틀랜드 주립대에 편입했다. 이곳에선 미술사를 전공하려면 실기 과목도 들어야 했는데, 그렇게 미술에 첫발을 딛게 됬다.
이곳엔 한국인 여성 교수가 계셨다. 서울대와 하버드대를 나온, 학벌로는 빠지지 않는 분이셨는데 제 기준에선 너무 힘들게 사는 거였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남편을 1년에 한두 번 만날 정도로 거의 모든 시간을 3평짜리 연구실에 틀어박혀 사셨다. '아! 이건 아니다'란 생각이 들었다. 미래의 제 모습을 떠올려보니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다.
반면 실기 수업을 들을 때면 늘 즐거웠다. 창작자의 삶도 괜찮을 것 같았다. 결국 미술 실기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현대미술을 전공해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6년의 일이다.
-그리곤 바로 귀국한 건가.
▶아니다. 미국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살 계획이었다. 졸업 직후엔 스튜디오를 시애틀로 옯겼다. 그림을 그리면서도 통역 등 여러 가지 일을 했기에 형편이 어렵지는 않았다. 전시회에 참여하고 작품도 판매하며 열심히 살았다.
그 무렵 오리건주의 한 시골마을에 있는 '아티스트 레지던시'(작가들에게 창작공간을 제공해 작품활동을 돕는 사업)에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됐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이렇게 다양한 예술가를 만나 창작에 대한 생각을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레지던시에 대해 큰 매력을 느꼈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한국의 레지던시 프로그램도 찾아보게 됐다.
미국은 입주 기간이 길어야 3개월 정도인데 한국은 평균적으로 1년, 길면 2년 정도씩 준다는 점에 놀랐다. 2018년 입주작가를 모집하는 한국의 레지던시 몇몇 곳에 지원서를 냈는데 영상 면접 일정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이럴 것 같으면 잠시 한국에 가서 면접을 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해 말 한국에 들어와 레지던시 면접을 보러 다녔다. 그 결과 2019년 대구 가창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로 참여하게 되면서 귀국하게 됐다.
이를 계기로 가창창작스튜디오의 해외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해 항저우에도 있었고, 이듬해엔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이 운영하는 경남예술창작센터에서 작품활동을 했다.
-경남 진주가 고향이다. 의성과는 어떻게 인연이 됐나.
▶2021년 의성군의 '예술가 일촌맺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이곳과 인연을 맺었다. 이 프로그램은 의성군이 2020년부터 3년간 추진한 사업이다. 군은 의성 지역 몇몇 마을에 창작촌을 만들어 청년 예술가를 불러모으고 예술 활동을 지원했다. 작가들에게 주거공간과 거주 지원금을 제공하면서 주민을 대상으로 한 예술체험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식이었다.
당시 제가 머문 곳은 생송마을이란 곳이었다. 20가구가 채 안 되는 작은 마을로, 낙동강이 인근에 있어 경관이 무척 아름다웠다. 저는 마을 찜질방에서 생활하며 작품 활동을 했다. 마을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미술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어르신들이 다들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품 등 배울 점이 무척 많았다. 이런 할머니들과 살면 평생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곳에 미술관을 열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
▶마을살이가 끝나갈 무렵, 할머니들의 작품전을 준비할 때의 일이다. 당시 기준으로 인구수 5만명인 의성군 내에 제대로 된 전시시설이 한 곳도 없다는 것에 많이 놀랐다. 다행히 의성청년테마파크의 일부 공간을 활용해 작품전은 무사히 치렀지만, 의성에 전시공간이 없다는 사실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전시회 때 생송마을 할머니들은 다들 예쁘게 꾸민 모습으로 30분 거리의 전시장까지 차를 나눠 타고 오셨다. 거기서 꽃다발을 주고받으며 편지를 낭독하며 울고 웃고 하셨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 할머니들이 문화와는 너무 동떨어진 삶을 살고 계시구나. 의성에 저들과 같은 분들이 얼마나 많이 계실까. 이런 분들이 한 번씩 전시장을 방문할 수 있게 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겠다. 그렇다면 내가 한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의성군엔 '청년시범마을 일자리사업'이라는 창업지원 프로그램이 있었다. 의성군의 지원을 받아 목욕탕 건물을 리모델링한 뒤 2022년 미술관을 개관하게 됐고, 저도 의성군에 정착하게 됐다.
-지난 4년 동안 많은 전시를 선보였다. 군청소재지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곳이지만 방문객도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은 내부 공사로 전시를 잠시 쉬고있지만 지난달 전시가 46번째였다. 전시가 가장 많았던 해는 15차례 전시를 선보였다. 관람객은 한 달 평균 400여명쯤 되는 것 같다. 관람객이 많을 때는 주말 하루 동안 70~80명 정도가 방문하기도 한다.
-지자체의 창업지원을 통해 시작했지만 전시회 비용이나 건물임차료, 공과금 등 연간 운영에 필요한 비용도 상당할 것 같다. 특히나 상업 화랑이 아니기에 전시를 할 때마다 작가들에게 사례비도 줘야하는데다 입장료도 무료다.
▶그래서 정부나 지자체의 공모사업에 많이 지원하고 있다. 공모사업엔 기획 비용이나 작가 사례비 등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공모사업 만으로 전시를 이어나가는 건 불가능하기에 나머지는 사비로 운영하고 있다. 강의나 심사 요청이 있을 때 받은 강의료나 심사비를 운영경비에 보태는 식이다. 가장 많이 차지하는 부분은 제 그림 판매 수익금이다. 미국과 프랑스의 갤러리와 계약이 돼있는데, 그래도 작품이 꾸준히 판매가 되고 있어 미술관을 운영할 수 있는 것 같다.
-사비를 들여서까지 미술관을 운영하는 이유는 뭔가.
▶해보고자 마음먹었던 일이니 잘 해보고 싶다. 사실 이 정도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지역 활성화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등 주위에서 다들 괜찮은 공간이라며 좋게 봐주시는 것 같다. 한편으론 어깨가 무겁긴 하지만, "의성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 "훌륭한 일 한다"며 칭찬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보람도 크고 힘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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