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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31>대구에서 피란 중 작고한 독립운동가 오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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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정종여(1914~1984),
정종여(1914~1984), '오세창 선생 초상', 1948년(35세), 종이에 담채, 112.5×48㎝,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청계 정종여가 그린 '오세창 선생 초상'은 산수와 인물이 조화롭게 어울린 산수인물화 형식의 초상화다. 사당에 모시는 의례용 정식 초상화와 달리 인물의 개성을 살리며 자유롭게 표현한 이런 감상용 초상을 조선시대에는 소조(小照)라고 했다. 대부분 소품이다. '오세창 선생 초상'은 소조의 전통을 이은 작품이지만 세로 1m가 넘는 당당한 대폭이다.

상서로운 기운이 서린 웅장한 쌍송을 배경으로 괴석에 기대앉아 포즈를 취한 85세의 오세창(1864~1953)을 그렸다. 은근하게 올린 담채와 부드러운 먹색이라 맑고 산뜻한 분위기다. 오세창의 차림새가 고풍스럽다. 1948년인데 허리를 띠로 묶고 발목에 대님을 맨 바지저고리인 한복 차림에 버선을 신었고, 겉옷은 옷고름 대신 단추를 달아 개량한 두루마기를 입었다.

머리엔 동파관을 썼고 신발은 나막신이다. 중국 송나라 동파 소식이 창안했다고 하는 동파관은 오세창이 즐겨 썼던 모자다. 동파관을 쓰고 찍은 증명사진도 남아있다. 나막신은 여러 상징이 있지만 소식이 60의 나이에 멀고 먼 해남도로 유배됐을 때의 모습을 상상한 '동파 입극상(東坡笠屐像)'에 삿갓과 나막신 차림으로 그려졌다. 나막신을 신는다는 것은 시련과 고난을 감내하며 명예를 지킨다는 뜻이다.

앞쪽에 두 줄기 향이 꽂혀 있는 청동 향로와 손에서 방금 내려놓은 듯 책장이 펼쳐진 옛 책을 그려 넣은 것은 주인공이 고상한 독서인임을 알려준다. 소나무, 괴석, 향로, 서책 등과 어우러진 예스러우면서도 위엄이 넘치는 노대가 위창 오세창이다. 오세창이 기획하고 스스로 모델이 돼 탄생한 작품이다. 이런 유형의 근현대기 위인 초상화가 많이 그려졌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초상화의 전통도 소조의 전통도 잘 이어지지 못했다.

서울 한복판에 살며 시대와 정면으로 맞서 개화운동가인 언론인으로, 독립운동가로, 서예가이자 전각가인 예술가로, 한국미술사의 작품을 수집하고 보존한 수집가로, 우리나라의 화가, 서예가를 연구하며 정리한 미술사학자로 평생토록 분망했던 오세창이다. 오세창의 생전 모습은 그림과 사진이 여럿 남아 있지만 이 작품이 오세창의 풍모를 가장 잘 전해주는 것 같다.

6·25가 일어나자 오세창은 가족과 함께 대구로 피난했다. 피난지 대구에서 89세를 맞은 1952년 새해 첫날 여러 감회에 젖어 '문화보국(文化保國)' 네 글자를 썼다. 오세창 만년의 대표작이다. 일제의 유린과 수탈에서 겨우 벗어났는데 또다시 전란으로 피폐해진 조국을 문화로써 지켜가야 하리라는 소망을 담은 이 네 글자는 마치 자신의 평생을 요약한 듯하다.

'문화보국'을 쓴 이듬해 4월 16일(음력 3월 3일) 중구 대봉동 31번지에서 90세로 작고했고 사회장으로 모셔졌다. 1962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복장(複章·대통령장)이 추서됐다.

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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