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지금의 음악을 연주할 용기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연주가 끝나갈 즈음, 객석의 공기가 먼저 바뀔 때가 있다. 아직 소리가 남아 있지만, 우리는 이미 다음 장면을 알고 있다. 마지막 화음이 쌓이고 지휘자의 손이 내려오는 순간까지. 이 음악의 끝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익숙함은 편안하지만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왜 이 음악을 다시 연주하고 있을까.

몇 해를 지나 다시 만나는 작품들이 더 많았다. 프로그램은 새로워 보여도 결말은 비슷했다. 이런 선택은 '시민을 위한 배려'로 설명된다. 그 말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묻게 된다. 그 배려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시민은 늘 같은 음악만 듣는 존재로 규정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근 읽은 한 논문은 이런 감각을 구조의 문제로 짚는다. '동아시아 오케스트라 레퍼토리의 전통과 혁신'이라는 연구에서 음악학자 이장직 박사는 인천시향과 대구시향, 일본의 지방 교향악단들을 대상으로 지난 20년간 정기연주회 레퍼토리를 분석했다. 그 결과 대구시향은 비교 대상에 비해 인기 작곡가의 익숙한 작품이 반복적으로 선택되는 경향이 두드러졌고, 현대적이거나 실험적인 시도는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났다. 레퍼토리 전반에서 보수적인 성향이 읽히는 대목이다. 이는 대구시향 무대 위에서 체감해 온 나의 기억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분석은 특정 단체의 선택을 평가하기보다, 정기연주회가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정기연주회는 교향악단의 방향과 정체성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자리다. 동시에 익숙한 명곡이 새로운 음악을 밀어내지 않도록, 프로그램의 역할을 분리할 필요도 있다. 정기연주회에는 동시대의 음악과 새로운 시도를 담고, 이미 검증된 명곡들은 별도의 시리즈로 운영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구조를 나누면 관객 확대라는 요구와 예술적 실험이 충돌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다.

새로운 음악은 한 번의 연주로 이해되기 어렵다. 선율보다 구조와 긴장이 먼저 다가오는 음악일수록, 다시 만났을 때 비로소 들리기 시작한다. 이런 음악은 연주자뿐 아니라 청중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런 시간을 허락하는 선택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사이 지금의 음악, 동시대의 소리는 무대에 오를 기회를 잃는다.

해외에서는 이미 이런 구조적 분리가 다양한 방식으로 실천되고 있다. 정기연주회와 별도로 명곡 중심의 시리즈를 운영하고, 성인과 어린이 관객을 구분한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편성한다. 어린이 공연 역시 하나의 시리즈로 운영되며, 아이들을 미래가 아닌 현재의 관객으로 대한다. 도시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는 과거의 성공을 안전하게 반복하는 데서 멈출 수 없다. 시민은 새로운 음악을 이해할 능력을 이미 갖고 있고, 아이들 역시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신뢰의 대상이다.

예술이 지금의 삶을 비추는 것이라면, 그 무대에는 지금의 음악과 새로운 시도가 더 많이 필요하다. 필요한 것은 배려보다 용기다. 지금의 음악을 연주할 용기, 그리고 청중을 믿는 용기 말이다.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입당 769일 만에 제명되면서 정치적 책임론이 부각되고 있으며, 그는 검사 특유의 리더십으로 비판받고 있다. 대구...
금값이 지정학적 위기감과 달러 약세 우려로 유례없이 급등하고 있으며, 29일 오전 11시 기준으로 금 현물 가격은 온스당 5천542.53달러...
대구 서구 한 초등학교에서 영양교사가 학생들에게 급식 잔반을 강제로 먹이도록 지시한 사건이 발생해 논란이 일고 있으며, 피해 학생들은 구토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한국에 대한 관세 압박을 강화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 국회가 '대미투자특별법'을 통과시키지 않음에 따라 발..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