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대구경북) 선거철 단골 전략인 '박정희 마케팅'이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어김없이 등장했다. 자치단체장 도전자들이 출사표를 던지며 잇따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산업화 성과, 고향 대구경북에 보여준 애정, 리더십 능력 등을 언급하고 있는 것.
물론 이번에도 환심 사기의 일환일 가능성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박 전 대통령의 과(過)는 인정하되 공(功)에 좀 더 무게를 두는 공과론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는 점을 연결고리로 짚어볼 필요가 있다.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해답을 구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박정희표 산업화 다시 한번" 출마선언 잇따라
주호영 국회부의장(대구 수성갑)은 지난 1월 25일 대구시장 출마 기자회견을 동대구역 박정희 동상 앞에서 개최했다. 그는 "대한민국 산업화와 근대화의 상징인 박정희 대통령의 길 위에서 대구를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며 자동차 부품, 로봇 산업단지 재편과 수성 AX(인공지능 전환) 혁신도시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대구 경제 재산업화'를 강조했다.
그로부터 나흘 뒤였던 29일엔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경북 구미 박 전 대통령 생가에서 경북도지사 출마 기자회견을 갖고 역시 박 전 대통령의 산업화 업적을 인용, "한강의 기적을 일군 '할 수 있다'는 정신으로 무너져가는 경북을 재건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대구경북이 박 전 대통령 때 산업화 수혜를 입은 과거와 지방소멸 위기에 이른 현재를 대비시킨듯 "중앙의 무관심으로 인한 '경북 패싱'의 고리를 끊어내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2월 2일엔 이강덕 전 포항시장이 구미 구미코에서 경북도지사 출마 선언을 하며 아예 "제2의 박정희가 되겠다"고 발언했다. 그는 "박 대통령께서 물려주신 경북의 철강·전자·자동차·기계 산업의 유산 위에 2차전지·반도체·방위산업·항공이 결합한 AI로봇산업으로 경북 중흥의 길을 새롭게 열겠다"고 했는데, 박 전 대통령이 국가산업단지를 만든 구미에 더해, 중공업을 뒷받침하는 포항제철(현 포스코)을 설립한 포항도 함께 띄운 맥락이다.
이어 9일 유영하 국민의힘 국회의원(대구 달서갑)이 대구 중구 삼성상회 터에서 대구시장 출마 기자회견을 열어 "대구는 박 대통령의 '하면 된다'는 신념을 앞장서서 실천했던 우리나라 현대사의 중심이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복심이기도 한 그가 두 전직 대통령 관련 장소를 기자회견장으로 고르지 않은 데 시선이 향했는데, 실은 연결고리가 있었다. 삼성상회 터는 삼성그룹이 태동한 곳으로,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정주영 현대 창업주 그리고 박 전 대통령과 함께 근대화 토양을 일군 '거인'으로 평가된다. 유영하 의원은 "삼성의 출발점에서 대구의 내일을 열기 위한 상징적 선택"이라며 삼성 반도체 공장과 삼성병원 분원 대구 유치를 공약했다.
◆과거 '공염불+포퓰리즘' 박정희 마케팅과 비교되네
후보들의 구체적인 공약 대결에 앞서 예고편(출마 선언)만 공개된 셈이지만, 과거와 비교해 박정희 마케팅의 질(質)과 격(格)이 좀 높아진 모습이다.
그동안 박정희 마케팅은 유권자들로부터 좋게 말하면 '호감을 얻는', 본색은 '환심을 사는' 뉘앙스였다. 2014년 6회 지방선거 때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경북도지사 후보 자리를 두고 경쟁한 박승호 예비후보는 "(박 전 대통령 고향인)구미시 명칭을 박정희시로 바꾸자"고 주장했고, 권오을(현 국가보훈부 장관) 예비후보는 박 전 대통령 생가 참배 후 "생가를 국가유적지로 지정케 하고 세계대통령박람회를 개최할 것"이라고 공약했다.
심지어 진보 진영 대구시장 후보였던 당시 김부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도 "광주의 김대중컨벤션센터와 교류하겠다"며 대구에 박정희컨벤션센터를 건립하겠다고 약속했다. 셋 다 떨어졌고 해당 공약들은 현실화되지 않았다.
2018년 7회 지선에서 경북도지사에 도전한 남유진 전 구미시장은 명함에 '리틀 박정희'라는 문구를 새겼다. 물론 그는 시장 시기였던 2013년 박 전 대통령 탄신 기념행사에서 "박 전 대통령은 반신반인(半神半人)으로 하늘이 내렸다란 말밖엔 할 말이 없다"고 하는 등 꾸준히 박정희 마케팅에 공을 들인 바 있다.
대구시장에 도전했던 이진훈 전 대구 수성구청장은 동대구역에 박정희 동상을 세우겠다고 했는데 이 공약은 2022년 8회 지선에서 당선된 홍준표 대구시장이 2024년 실현했다.
◆"朴, 산업화 功 있다" 李 당선 결과 낸 TK 공략
이렇게 보수 텃밭 대구경북에서 박정희 마케팅이 성행하면 상대 진보 진영은 박 전 대통령의 독재 이력을 꼬집으며 견제했다. 그런 양상은 지난해(2025) 21대 대선 때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나섰던 이재명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의 산업화를 호평하며 크게 수정됐다.
그는 지난해 5월 13일 구미역 광장 유세에서 "박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말살한 아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보면 산업화를 이끌어낸 공도 있다"면서 "박정희 정책이면 어떻고, 김대중 정책이면 어떤가. 필요하면 쓰고 불필요하면 버리는 거다. 진영과 이념이 뭐가 중요하냐"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2017년 경기 성남시장 시기 대선 도전 땐 서울 국립현충원을 찾아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은 참배하면서도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은 찾지 않았고 이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은 군사쿠데타로 국정을 파괴하고 인권을 침해했던 그야말로 독재자이다. 인권을 침해한 독재자에게 고개를 숙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게 매우 찜찜했던지 8년 뒤 대선 후보 땐 첫 일정으로 박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고 즉각 구미를 찾아 박 전 대통령을 추켜세우는 등 '태세전환'으로 표심 공략에 나섰다.
꼭 이 발언 때문만은 아니었겠으나, 이 대통령은 경북에서 고향 안동(31.28%) 다음으로 많은 득표율을 구미(28.13%)에서 기록했다. 낙선한 20대 대선 당시 구미 득표율 기록(26.74%)을 경신한 것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대통령 당선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AI 산업 전환기에 '압축성장'이 롤모델?…美 한반도 군사적 역할 축소 우려에 朴 50년 전 대처 해법될까?
시대가 박정희를 다시 부르고 있어서일까? 인공지능(AI)과 로봇을 필두로 첨단산업으로 빠르게 전환하는 시기인 까닭에 앞서 박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경제의 기틀을 다진 것은 물론 그 속도까지 빨랐던 '압축성장'의 산업화 성과가 롤모델로 전해진다. 이걸 대구경북 단체장 출마 예정자들이 줄줄이 인용하는 모습이다.
또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지정학적 우선 순위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좁혀지면서 미국의 대한민국에 대한 군사적 역할이 축소, 이제는 우리 주도로 대북 억제에 나서게 됐다는 위기론을 두고는 박 전 대통령이 1970년대에 미국의 안보공약에 대한 의심을 품고 대미 안보·경제 의존을 줄이며 경제개발과 국방력 강화를 함께 도모한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미국 싱크탱크 스팀슨센터 제임스 김 한국프로그램국장은 미국 새 국방전략(NDS) 분석 자료를 지난 1월 23일 언론에 배포, "한국의 책임이 확대되고 반대로 미국은 선택적 관여라는 좀 더 광범위한 전략 아래 역내 군사적 역할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한미동맹이 이전에 비해 비대칭적 형태로 전환되고 있다"고 보면서 "한국이 이번 전환기를 전략적, 작전적, 산업적, 외교적으로 어떻게 헤쳐 나가느냐에 따라 한미동맹의 미래 뿐만 아니라 동북아 안보 구조의 미래도 결정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방위산업을 주목, "세계 10위권 무기 수출국으로 성장한 한국이 미국과의 방산 협력 유형·규모를 확대하는 게 동맹 재구성의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마침 당명을 바꿀 국민의힘은 박 전 대통령의 산업화를 당의 헌법이자 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 당헌·당규에 넣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금혁 국민의힘 미디어대변인은 지난 2일 매일신문 유튜브 '이동재의 뉴스캐비닛'에서 "반공 이데올로기 강화와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의 산물인 자유민주주의, 산업화 등을 더 명시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고했다.
다만, 민주주의 분야에선 명백하다고 볼 수 있는 박 전 대통령의 과오는 넓게는 보수 정치권, 좁게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박정희 마케팅을 펼치는 후보들이 슬기롭게 풀어내야 할 과제로 분석된다. 박정희 우상화사업 반대 범시민운동본부는 이달 2일 성명을 내고 "박정희 동상 앞 출마 선언은 민주주의에 대한 모욕이자 독재자 미화 행위"라며 "국민의힘 예비 후보자들은 박정희 동상 철거를 분명히 공약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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