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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수다]"다문화 며느리가 아니라 내 딸입니다"…고부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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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캄보디아 며느리, 대구 시어머니와 살아보니…

시어머니 양두희 씨와 베트남 며느리 레티몽찐 씨가 달서시장에서 함께 장을 보며 어묵을 서로 먹여주고 있다. 모녀처럼 다정한 두 사람의 모습이 정겹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시어머니 양두희 씨와 베트남 며느리 레티몽찐 씨가 달서시장에서 함께 장을 보며 어묵을 서로 먹여주고 있다. 모녀처럼 다정한 두 사람의 모습이 정겹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5일 오전 10시쯤 대구 달서시장. 장바구니를 든 두 여성이 채소 가게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시어머니는 시금치 잎을 집어 들어 신선도를 살피며 가격을 물었고, 옆에 선 며느리는 말없이 장바구니를 든 채 상인의 설명을 들었다.

며느리는 베트남 출신 결혼이민여성이었다. 한국인 시어머니와 외국인 며느리가 함께 장을 보는 풍경은 이제 전통시장에서 낯설지 않다.

◆ "며느리는 내 딸"… 베트남까지 가 신부 찾은 시어머니

성당동에 사는 양두희(73) 씨는 며느리 레티몽찐(28·한국명 이유리) 씨를 처음 만났던 순간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지난 2017년 결혼을 미루고 혼자 살겠다는 아들을 데리고 신부감을 찾으러 베트남으로 향했다. 국제결혼상담소를 통해 70여 명의 후보를 만난 끝에 며느리를 선택했다.

양 씨는 며느리가 한국 생활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40년 넘게 해오던 요식업도 접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낯선 환경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만큼, 곁에서 돕는 것이 먼저라고 판단했다. 양 씨는 "다른 나라에서 부모와 떨어져 혼자 오는 게 얼마나 힘들겠느냐"며 "내 자식처럼, 내 딸처럼, 내 가족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첫 아이를 낳았을 때는 석 달 동안 직접 미역국을 끓여 먹이며 산후조리를 도왔다. 산모에게 좋다는 미역을 수소문해 준비했다. 며느리는 그때를 떠올리며 지금도 시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른다.

시어머니 양두희 씨와 베트남 며느리 레티몽찐 씨가 달서시장에서 함께 장을 보고 있다. 두 사람의 모습이 마치 모녀처럼 정겹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시어머니 양두희 씨와 베트남 며느리 레티몽찐 씨가 달서시장에서 함께 장을 보고 있다. 두 사람의 모습이 마치 모녀처럼 정겹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 "깎아주세요"부터 배웠다

결혼 9년 차 레티몽찐 씨는 시부모를 모시고 남편, 두 자녀와 함께 3대가 한집에서 살고 있다. 그의 하루는 오전 7시 부엌 불을 켜는 일로 시작된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남편과 시부모의 아침 식사를 차린다.

전통시장은 시어머니에게 평생의 공간이다. 어느 가게가 싱싱한지, 누구에게서 사야 덤을 더 얹어주는지 몸이 먼저 안다. 시어머니가 장을 보러 나설 때 며느리에게 가장 먼저 가르친 말도 시장에서 쓰는 한마디였다. "이건 깎아주세요" 상인이 부르는 가격 그대로 계산하면 안 된다고 했다.

며느리는 처음엔 흥정이 부끄러워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시어머니 옆에서 하나씩 배웠다. 이제는 할인하는 마트를 먼저 확인하고, 전통시장이 더 저렴하면 시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시어머니 양두희 씨는 베트남 며느리 레티몽찐 씨를
시어머니 양두희 씨는 베트남 며느리 레티몽찐 씨를 "내 딸이라고 생각한다" 며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레티몽찐 씨는 시어머니 양 씨를 '엄마'라고 부른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 "대구 남자는 무뚝뚝해요"… 시어머니의 재치

레티몽찐 씨는 남편에 대한 아쉬움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대구 남자는 무뚝뚝해요. 서프라이즈 할 줄도 모르고, 드라마처럼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화이트 데이에 아내를 기쁘게 해주면 정말 좋겠는데요" 라며 말끝에는 웃음이 섞였지만, 아내로서의 바람도 담겨 있었다.

곁에서 이야기를 듣던 시어머니 양 씨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럼 셋째 아이를 낳으면 선물로 금 10돈을 줄게" 분위기는 단숨에 풀렸다. 농담처럼 건넨 말이었지만, 며느리는 "엄마, 정말이죠. 약속했어요"라며 되묻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애정 표현이 서툰 남편에 대한 며느리의 한마디는 시어머니의 재치 있는 응답으로 마무리됐다.

시어머니 양두희 씨가 베트남 며느리 레티몽찐 씨와 팔짱을 끼고 달서시장에서 함께 장을 보고 있다. 다정하게 걷는 두 사람의 모습이 마치 모녀처럼 정겹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시어머니 양두희 씨가 베트남 며느리 레티몽찐 씨와 팔짱을 끼고 달서시장에서 함께 장을 보고 있다. 다정하게 걷는 두 사람의 모습이 마치 모녀처럼 정겹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 고부 갈등 …5년 만에 건넨 시어머니의 사과

결혼 5년 차 캄보디아 출신 며느리 완낙(32·가명) 씨는 군위에서 살다가 대구로 이사하면서 시어머니와 함께 살게 됐다. 처음에는 기대가 컸다.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있고, 다문화센터에서 한국어도 배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함께 살면서 갈등이 잦아졌다.

남편은 "엄마 말 들어라"는 말만 했다. 임신했을 때 고향 음식이 먹고 싶어 캄보디아 지인이 음식을 해주러 왔지만, 시어머니는 "냄새 난다"며 치우라고 했다. 고향 사람들과 자주 만나지 말고 한국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국어를 빨리 배울 수 있다고도 했다. 전화 통화를 할 때도 눈치를 줬다.

아침에 늦잠을 자면 "빨리 일어나라"는 말이 돌아왔다. 남편이 출근할 때는 꼭 나가 인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참고 또 참았다. 2년 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회사에 다니기 시작했다. 맞벌이를 하며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자, 집안 분위기도 조금씩 달라졌다. 남편과 시어머니의 잔소리는 줄었다.

전환점은 뜻밖의 순간에 찾아왔다. 해외여행을 다녀온 시어머니가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얘야, 여행 가서 현지 음식을 먹어봤는데 내 입에 하나도 안 맞더라. 김치가 그렇게 먹고 싶었어. 너도 처음에 한국 음식 먹느라 힘들었지? 고향 음식 못 먹게 해서 많이 서운했지? 미안하다"

그 말에 완낙 씨는 오래 묵은 감정이 풀렸다고 했다. 이제는 한국말로 자신의 생각을 전할 수 있고, 서운한 일이 있으면 바로 이야기한다. 오해가 생겨도 오래 두지 않는다. "지금은 어머님도 제 마음을 이해해 주세요. 대구 사람으로 더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시어머니 양두희 씨와 베트남 며느리 레티몽찐 씨가 달서시장 어물전에서 오징어를 고르며 함께 장을 보고 있다. 두 사람의 모습이 마치 모녀처럼 정겹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시어머니 양두희 씨와 베트남 며느리 레티몽찐 씨가 달서시장 어물전에서 오징어를 고르며 함께 장을 보고 있다. 두 사람의 모습이 마치 모녀처럼 정겹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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