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건표의 연극리뷰] '영화 촬영장을 연상시키는 스튜디오 같은 무대, 알고리즘이 설계한 권력의 탄생의 정치스릴러극' 이준우 연출의 <빅 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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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서울시극단 빅 마더, 이준우연출.
서울시극단 빅 마더, 이준우연출.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광화문 광장이 확성기 소리로 시끌시끌할 법도 한데, 외국인 관광객들이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단체 관광을 온 듯한 행사장 같았다. 그 블록 사이로 미 대선 정국의 정치 스캔들을 다루고 있는 이준우 연출의 <빅 마더>(서울시극단, 번역 임혜경)가 공연되고 있었다. 작가의 허구지만 상당한 무대의 깊이감이 현실 정치를 닮았다. '빅 마더'는 프랑스에서 2019년에 초연된 프랑스 극작가 '멜로디 무레'(Mélody Mourey)의 작품인데, 이준우 연출에 의해 그려지는 <빅 마더>의 세계는 1984의 '빅 브라더'에서 한발 더 나아가, 미 대선 정국을 앞두고 대통령의 AI와 딥페이크가 결합된 섹스 스캔들 유출 영상 사건을 파헤치는 정치 스릴러극이다. "오늘 아침, 정체불명의 해커가 대통령의 성관계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이 영상에는 현 미국 대통령 앨런 스워츠가 미성년자로 보이는 한 소녀와 성관계를 맺는 장면이 담겨 있으며, 영상 속 장소는 댄 민스타인의 저택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서울시극단의 <빅 마더> 이야기다.

서울시극단 빅 마더, 이준우연출
서울시극단 빅 마더, 이준우연출

◇AI, 딥페이크, 알고리즘으로 조작된 '美' 대선 정국을 뒤흔드는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 "허구지만 현실감 높여"

작품은 '빅 마더 프로젝트'를 가동해 알고리즘으로 미디어, 권력, 국민을 감시·조작하는 시스템을 통해, 정보 스파이를 앞세워 언론과 미디어를 장악하고 막후의 정치 음모를 설계한 기획자가 '美' 패권 국가의 대통령이 된다는 설정이다. 1984가 '빅 브러더'를 통해 감시와 통제의 디스토피아를 예견했다면, <빅 마더>는 그보다 더 은밀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권력, 즉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인간의 인식과 선택을 설계하는 구조 속에서 프로그램 개발자가 결국 대통령에까지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대통령이라는 절대 권력자를 다루는 소재를 감안하더라도, AI와 알고리즘의 세상이 된 현시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처럼 현실감이 상당하다. 호르무즈 해협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패권 전쟁의 세계 정치판과 거대한 폭로전을 연상하게 하고, 미 대선 정국을 흔든 워터게이트, 르윈스키, 앱 스타인 사건도 겹쳐진다. 미 대선의 킹메이커 역할을 해온 정치판의 잔인한 해결사로 불리는 정치기획자 로저 스톤도 스쳐 지나가고, 요즘 도널드 트럼프와 정치적 갈등 관계에 있는 한 미국 일간지 편집국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연극의 에피소드는 60여 개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추문을 둘러싼 인물의 관계도와 연결 서사도 만만치 않다. 수집된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통해 정치적 음모를 꾸미고 여론을 조작하는 프로그램 '빅 마더'와 특정 정치인, 언론사 사주, 탐사보도팀 기자 등 극 중 인물들이 복합적이면서도 다층적으로 얽혀 있다. 장면들은 하나의 이야기라기보다 데이터처럼 배열되고, 드라마처럼 템포감 있게 교차 편집되는 구조에서 관객은 은밀한 알고리즘이 작동하는 과정을 따라가며 진실과 거짓 프레임으로 요동치는 섹스스캔들의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핵심은 AI 딥페이크 영상으로 조작된 현직 대통령의 진실을 파헤쳐도 국민은 은폐된 정보와 가짜 뉴스를 신뢰하고, 결말에 진입하면 '빅 마더' 프로그램을 통해 절대 권력자가 탄생한다는 점이다.

서사는 이렇다. 무대는 마치 뉴스생중계 현장처럼 변화하고 공간을 구조화했다. 스크린을 통해 전달되는 미국(美國) 대통령의 성관계를 유추할 수 있는 영상이 보인다. 영상이 외부로 유출되면서 탐사국 기자들은 미 정국을 흔들 수 있는 특종 냄새를 맡게 되고, 무대는 홍콩호텔에서 3개월 전 시점으로 플래시백 되면서 뉴욕 탐사부가 사건을 파헤쳐가는 구조로 연극 <빅 마더>의 촘촘한 스릴러를 견인하는 서사적 장치로 작동한다. 사건이 증폭되는 시점은 이렇다. 대통령의 성관계 영상이 공개되면서 정치 스캔들이 미 언론과 정치 정국을 뒤집는다. 대통령은 탄핵 위기에 몰리고 뉴욕탐사부 기자들은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기 시작하지만, 여론은 영상의 진위와 관계없이 이미 하나의 '진실'처럼 작동한다. 그 틈으로 현직 대통령을 저격하는 '투명사회연합'이 급부상한다. 투명사회연합은 대통령제 폐지와 국회해산을 요구하며 여론을 선동하고, 홍보를 맡은 '헌드레드 몽키'는 빅데이터 프로그램 '빅 마더'를 활용해 여론을 조작하기 시작한다. 사건은 단순한 정치 스캔들을 넘어, 영상의 '진실게임'의 국면으로 전환된다.

서울시극단 빅 마더, 이준우연출
서울시극단 빅 마더, 이준우연출

◇ 영화의 편집 영상 같은 연극 <빅 마더>, 대중적이면서도 감각적인 무대구조

뉴욕 탐사부는 영상이 AI 딥페이크로 조작된 것임을 밝혀내기 시작하며 극은 흥미롭게 전개된다. 진실의 실체에 가까워질수록 '빅 마더' 프로그램이 작동하면서 여론은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의해 조직적으로 대중에게 전달되고, '미' 대선의 민심은 가짜 뉴스에 열광하게 된다. 이때 작가는 뉴욕 탐사부와 언론사 내부 균열을 형성해 극적인 전환의 플롯을 긴장감 있게 형성한다. 언론과 방송은 알다시피 시청률과 구독자의 경쟁이다. 뉴스 조회 수가 급격히 하락하고 가짜 뉴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뉴욕 탐사 보도에 대한 신뢰가 붕괴한다. 언론사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고, 권력의 눈치 게임도 피해갈 수 없다. 이때부터 연극 <빅 마더>는 피할 수 없는 선택에 놓인다. 동영상의 진실을 끝까지 파헤칠 것인가, 아니면 적당히 거리를 두고 은폐할 것인가의 문제다. 뉴욕탐사부의 오웬, 쿡, 줄리아, 블랙웰은 영상이 AI 딥페이크로 조작된 것임을 밝혀내며 집요한 심리적 추격전을 펼친다. 그러나 가짜 뉴스와 정보가 진실로 위장해 조직적으로 형성된 여론 속에서 뉴욕 탐사부와 언론사 사주는 권력과 대중으로부터 외면받으며 코너로 몰리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연극 <빅마더>는 반전의 밀도가 상당하다.

결말의 전환점을 도는 서사는 이렇다. 기자들은 다시 홍콩호텔의 특종 발생 시작점으로 되돌아오고, 공격을 받는 신변 위협 속에서도 보도를 이어가려 한다. 그러나 이미 형성된 여론은 되돌릴 수 없고, 대중은 진실을 외면한다. 결국 '빅 마더'를 설계한 인물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진실이 밝혀져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세계'를 보여준다. 등장인물의 관계도 역시 만만치 않다. 줄리아(신윤지 분)는 끝까지 진실을 밀어붙이는 탐사 기자이고, 정부 기관의 비밀요원 에단(최호영 분)은 줄리아의 전 남자친구다. 또한, 헌드레드 몽키의 전략담당으로 여론 조작 작업에 연루되었다가 내부고발자로 돌아서는 인물이 보도국장 오웬(유성주 분)의 딸 로즈그린(조수연 분) 이며, 섹스 스캔들 사건을 추적하는 뉴욕 탐사 사장의 아들이 알레스 쿡( 이강욱 분) 이다.

이밖에도 뉴욕탐사부 기자로 오웬과 특수관계에 있는 케이트 블랙웬(최나라 분)은 스캔들의 권력 구조를 감각적으로 읽어내는 기자로 분한다. 한마디로 특종이 될만한 뉴스와 여론의 냄새를 잘 맡는다고 할까. 편집국장 오웬은 결국 조회 수와 권력의 압박 속에서 딥페이크 영상이 조작되었음을 알면서도 이를 유지하는 결정을 내린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낯선 목소리가 등장해 기자의 실종을 알린다. 그 목소리는 실종된 기자와 취재 사건을 추적하는 '포비든 스토리'를 대표하며 "기자들을 죽여도 언론의 진실은 사라지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극은 끝난다. 이러한 정치 스릴러 장르의 작품은 시공간이 분할되고 전환되면서 자칫 서사가 산만해질 수 있는데, 이준우 연출은 이러한 특수성을 고려해 건축적 공간의 벽면을 투명화하듯 구성해 시간의 간극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상황을 동시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무대화했다.

서울시극단 빅 마더, 이준우연출
서울시극단 빅 마더, 이준우연출

뉴스룸 스튜디오 녹화장처럼 무대 후면에 카메라와 조명 스탠드를 배치하고, 그 앞으로는 통유리 컨테이너를 연결해 슬라이드 도어를 U자형으로 구성했다. 전면 공간은 편집국의 단일 공간으로 설정되며, 그 위에는 스크린을 달아 실시간 스팟 뉴스가 진행되거나 극 중 인물들이 라이브로 중계되는 방식으로 장면이 전환된다. 장면변화는 자막으로 처리되기도 하고, 인물의 마지막 대사를 교차시키며 유기적이고 속도감 있게 이어진다. 모든 공간 구조는 '빅 마더'로 작동하는 세계를 마치 라이브로 관찰하도록 만든 연출적 장치다. 빠른 장면 전환과 몽타주식 구성으로 무대는 마치 연극 <빅마더>를 NT Live로 보는 듯한 구조를 형성하는데, 이보 반 호브의 <로마비극>(2019)에서 영상과 공간을 활용한 연출보다 매끄럽게 느껴진다.

한 번 더 강조하면. 마치 '빅 마더' 촬영 현장처럼 구조화해 영화적 시퀀스를 연속화하는 장면 전환 방식 속에서, 스크린과 다양한 비주얼 이미지는 무대 전체를 뉴스와 정보 데이터가 조작되고 수집되며 은폐되고 소비되는 세계로 기호화한다. 홍콩의 한 호텔에서 시작된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 특종은 과거 뉴욕 탐사 편집국의 사건 추적으로 이어지며 서사를 견인한다. 이준우 연출의 콘셉트도 인상적이지만 배우들의 안정감 있고 캐릭터의 몰입도를 높이는 연기도 속도감 있게 맞물린다. 배우들은 캐릭터를 살리는 리듬감이 돋보인다. 특히 뉴욕 탐사 편집장 오웬 그린 역에 유성주의 연기와 이강욱, 멀티 역을 보여준 김은희 그리고 극 중 배우들의 열연이 <빅 마더>의 세계를 형성한다. 국내 초연된 번역극임을 감안하더라도, 이준우 연출은 고선웅 표 <퉁소 소리> 이후 대중성과 완성도 있게 무대를 만들었다. 전례가 없던 파격적인 나이에 서울시극단 예술감독이 된 이준우 연출은 이번 작품으로 안정성과 향후 작품 방향성이라는 허들을 무난히 넘게 됐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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