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긴급조치 9호는 국민의 입을 막았다. 그러나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1976년 3월 1일 재야·종교계 인사들은 민주구국선언을 발표하며 유신체제 종식과 민주주의 회복을 요구했다. 정부는 김대중, 문익환 등을 구속하고 김영삼도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기소했지만 민주화를 향한 목소리는 더욱 커져갔다.
그 무렵 경북에서도 또 다른 변화가 시작됐다. 안동댐이 준공되고 주왕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됐으며, 박정희 대통령의 영일만 유전 발견 발표로 전국의 시선이 포항으로 향했다. 민주화의 봄이 전국을 흔들었다면, 경북에는 개발과 성장의 시대를 알리는 봄이 찾아온 것이다.
◆ 안동댐이 바꾼 경북
안동댐은 단순히 댐 하나를 세운 사업이 아니었다. 1960~70년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대구·경북은 만성적인 물 부족과 반복되는 낙동강 홍수 피해를 겪고 있었다. 정부는 산업화에 필요한 안정적인 용수 확보와 홍수 조절을 위해 낙동강 개발을 국가적 과제로 추진했고, 그 핵심 사업이 안동댐 건설이었다.
1966년 기본조사에 착수한 안동댐은 10여 년의 공사 끝에 1976년 준공됐다. 하류 지역의 홍수 피해를 줄이고 농업·공업·생활용수를 공급하는 것은 물론 수력발전까지 가능한 다목적댐으로 건설됐다. 이후 대구와 경북은 물론 부산까지 식수를 공급하는 낙동강 수자원 체계의 중심축이 됐고, 안동호를 기반으로 관광과 레저산업도 성장하면서 지역 발전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다만 안동댐 건설은 적지 않은 희생도 남겼다. 댐이 완공되면서 모두 54개 마을이 물에 잠겼으며, 주민 2만9천699명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다. 당시 안동 전체 인구(17만2천여 명)의 17.2%에 달하는 규모였다. 지역 발전의 상징이 된 안동댐은 한편으로는 수많은 이들에게 고향을 잃은 기억으로 남았다.
◆ 주왕산 품고, 영일만을 꿈꾸다
안동댐 준공이 경북의 산업 기반을 다지는 계기였다면, 같은 해 경북의 자연과 미래를 향한 기대도 함께 커졌다.
1976년 3월 주왕산은 우리나라 1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당시 국립공원 지정은 단순한 자연보호를 넘어 지역 관광산업을 육성하려는 국가 정책의 일환이었다. 이후 주왕산은 경북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성장했다. 주왕계곡은 2003년 명승으로 지정됐고, 2017년에는 주왕산 일대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되며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자연유산으로 인정받았다.
또 그해 1월에는 영일만이 전국적인 관심의 중심에 섰다. 1975년 12월 포항 영일만 시추공에서 드럼통 한 통 분량의 검은 액체가 채취되자 '국내 첫 유전 발견'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1976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영일만에서 석유가 발견됐다"고 직접 발표하며 산유국의 꿈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밀 분석 결과 채취된 액체는 상업성이 있는 원유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산유국의 꿈은 현실이 되지 못했지만, 당시 영일만 유전 발표는 포항은 물론 경북 전체를 전국적인 관심의 중심에 올려놓은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았다.
민주화를 향한 외침과 산업화를 향한 기대가 교차했던 1976년. 전국에서는 자유를 향한 목소리가 커졌고, 경북에서는 개발의 청사진이 하나둘 현실이 됐다. 안동댐과 주왕산, 그리고 영일만 유전 발표까지. 모든 꿈이 현실이 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해 경북은 대한민국의 변화와 희망이 가장 선명하게 비친 무대 가운데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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