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8월 초.경북 달성군 가창면(1995년 대구시 편입)의 여름은 숨이 턱턱 막힐 만큼 뜨거웠다. 낮 기온은 35도를 훌쩍 넘었다. 매미들은 아침부터 해 질 녘까지 쉼 없이 울어댔고, 들녘은 온통 짙푸른 벼와 농부들의 땀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날도 박종식 할아버지는 새벽부터 논으로 나갔다.모내기를 마친 벼 사이로 자란 잡초를 뽑고, 논둑을 손보느라 허리를 펼 새가 없었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는 땀이 빗물처럼 흘렀고, 허리춤에 찬 수건은 이미 몇 번이나 흠뻑 젖었다. 그래도 "농사는 하늘이 절반, 사람이 절반"이라며 묵묵히 일손을 놓지 않았다.
해가 서쪽으로 조금 기울 무렵.박종식 할아버지는 논에서 돌아와 대문을 들어섰다.
"아이고, 오늘은 햇볕이 사람 잡겠네."
한숨과 함께 마당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대야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목에는 노란 수건이 걸려 있었고, 햇볕에 달궈진 어깨에서는 김이 날 것만 같았다.
그 모습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여덟 살 손녀 영희였다.
양 갈래로 머리를 묶은 영희는 우물에서 길어 올린 찬물을 바가지에 담아 조심조심 할아버지 앞으로 가져왔다.
"할아버지, 제가 목물 시켜드릴게요."
"우리 영희가 다 컸네."
할아버지는 환하게 웃으며 두 손을 대야에 담갔다.
영희는 작은 손으로 바가지를 들어 할아버지의 어깨에 물을 부었다.
촤르르—
우물물은 햇볕에 달궈진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이고, 시원하다."
그 한마디에 영희의 얼굴에는 꽃이 피었다.
"더 부어드릴까요?"
"그래, 조금만 더."
영희는 연신 물을 떠서 등을 적셔 주고, 고사리 손으로 등을 문질러 주었다. 그러다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물을 한 움큼 떠서 할아버지 얼굴에 살짝 끼얹었다.
"에구, 이 녀석."
할아버지는 깜짝 놀라는 척하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러자 영희는 배를 잡고 깔깔 웃었다.마당에는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그 시절에는 에어컨도 없었고, 냉장고조차 귀한 집이 많았다. 더위를 이기는 방법이라곤 우물물에 발을 담그거나 선풍기 바람을 쐬는 것이 전부였다.
세월이 흘러 그 여름도 어느덧 40여 년 전의 추억이 되었다.아마 지금의 영희는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살아가는 동안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기억 가운데 하나는, 폭염 속에서 논 일을 마치고 돌아온 할아버지 등을 시원한 우물물로 씻겨 드리던 그날 오후일 것이다.
사람들은 행복이 거창한 성공이나 많은 재산에서 오는 줄 안다.하지만 진짜 행복은 마당 한켠의 대야 속에도 있었다.
사랑하는 손녀가 건네는 바가지 한 그릇의 우물물, 그리고 "시원하다"며 환하게 웃어 주던 할아버지의 미소.그것이야말로 그 어떤 냉방기보다 시원했고, 그 어떤 보물보다 값진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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