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로석불로'는 화가이자 미술이론가이며 수필가인 근원(近園) 김용준의 선면화다. 늙지도 않는 바위와 오래된 소나무를 그렸다. 둘 다 장생(長生)의 상징인 십장생이므로 존경하는 분의 장수를 기원하며 그려드린 축수도(祝壽圖)일 것이다. 혹여 그분의 이름이나 호에 '돌 석'이 들어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선면의 크기와 모양, 접혔던 흔적으로 보아 일본 부채였다.
경북 선산에서 태어나 경성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 김용준은 재학 중이던 21세 때 조선미술전람회에 유화 '동십자각'이 입선하며 재능을 알렸다. 지금 경복궁 교차로의 도로 한가운데 갇혀있는 바로 그 동십자각이다. 원래는 경복궁 담장과 연결된 망루였으나 일제가 조선총독부 건립을 이유로 경복궁을 훼손할 때 이렇게 되는 광경을 그렸다. 원 제목은 '건설이냐 파괴냐'였으나 비판적, 시국적이라 순화시켰다고 한다. 젊은 김용준의 현실인식, 민족의식을 알려주는 일화다.
이런 생각이 결국은 동경유학까지 다녀온 잘나가던 서양화가 김용준을 동양화가로 화가의 길을 바꾸게 했다. 이론 연구도 한국미술사로 전환한다. 1939년 그의 나이 36세일 때다. 김용준은 자신조차 한때 "모멸감을 가지고" 대하던 동양화로 전향한 것을 "내가 지나온 청춘시절의 굉장한 역사"라고 스스로 대견해했다. 서구우월주의를 거스르기란 지금도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
을사늑약 한 해 전에 태어나 식민지시기에 자란 김용준은 우리의 문화나 전통, 미술에 대해 어떤 교육도 받지 못했다. 그가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낸 데는 유학시절 만난 상허(尙虛) 이태준(1904~?), 깊이 존경한 벽초(碧初) 홍명희(1888~1968) 등 사우(師友)의 감화가 있었다. 친구와 스승은 인간관계의 본질이다.
'송로석불로'는 김정희 예서의 영향이 느껴지는 글씨이며 "신사(辛巳) 유월(榴月) 방(倣) 완당선생(阮堂先生) 필의(筆意)"로 김정희를 본받았다고 했다. 일본에서 유화를 공부한 서양화가였던 김용준은 옛그림의 맥락, 지필묵 다루는 법, 서예 쓰는 법, 제화의 구성, 인장 활용 등을 착실히 익혔다. "광채 나는 전통"을 자각하며 조선 문인화의 미학을 방향으로 잡았던 그가 사숙(私淑)한 스승은 추사 김정희였다.
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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