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의 대법관 임명 제청을 둘러싼 청와대와 사법부의 갈등이 끝내 재제청 요구로 이어졌다. 헌법과 법률에는 대법관 제청 전 대통령과 후보자를 협의하거나 대면 제청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지만, 청와대는 그동안 이어진 '사전 협의 관행'을 근거로 손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기로 했다.
특히 대법관 정원이 현행 14명에서 26명으로 대폭 늘어나는 사법부 재편을 앞두고 대통령이나 대법원장 어느 한쪽의 의중에 좌우되지 않는 인선 원칙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법에 없는 '사전 조율'
청와대는 지난 28일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제청된 손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다른 후보자를 재제청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손 후보자 제청은 절차적 완결성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며 "실질적인 협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서면 제청됐다"고 설명했다. 반면 청와대와 대법원이 의견을 모은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임명동의안은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대법관 인선은 천거된 인사 가운데 심사에 동의한 후보를 대상으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3명 이상을 추천하고, 대법원장이 이 가운데 1명을 대통령에게 제청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후 국회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헌법 제104조 2항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할 뿐 대통령과 사전 합의하거나 대면 제청해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 법원조직법도 마찬가지다. 다만 실제 인선에서는 추천위 심사 이후 대통령실과 사법부가 최종 후보를 놓고 물밑 조율해 온 것이 관행이었다.
이번에는 양측이 손 후보자를 두고 끝내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이 같은 관행의 구조적 문제가 표면화됐다.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의중이 맞을 때는 물밑 협의로 인선이 진행됐지만, 의견이 엇갈리자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 경계를 둘러싼 충돌로 번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법관 인선 과정에서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사전 조율을 당연한 관행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헌법이 대법원장에게 제청권을 부여한 만큼 추천과 제청, 국회 동의, 대통령 임명이라는 각각의 절차가 독립적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극원 대구대 법학부 교수는 "대법관 제청 전 대통령과 사전 조율하던 관행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대통령이 제청 단계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면 이미 나뉘어 있는 견제 절차를 사실상 한쪽이 모두 쥐게 된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와 대법원장의 제청 절차를 먼저 존중하는 것이 삼권분립 취지에 맞다"고 말했다.
◆'26명' 대법관…인선 논란 반복 우려
이번 사태는 대법관 정원이 대폭 늘어나는 시점과 맞물려 더욱 주목된다. 개정 법원조직법에 따라 2028년부터 2030년까지 매년 4명씩 모두 12명이 추가돼 대법관 정원은 26명으로 늘어난다. 기존 대법관들의 임기 만료에 따른 후임 인선까지 겹치면서 이재명 대통령은 임기 중 최대 22명의 대법관을 임명할 수 있게 된다.
한 대통령 재임 기간 대법원 구성이 대폭 교체되는 만큼 특정 정치세력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반영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여권 일각에서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구성 자체를 바꾸자는 방안도 거론된다. 현행 추천위는 선임대법관과 법원행정처장, 법무부 장관, 대한변협회장 등 당연직 6명과 법관 1명, 비법조인 3명 등 모두 10명으로 구성된다. 여기에 헌법재판소와 지방변호사회, 법관대표회의 등의 추천 몫을 추가해 대법원장의 영향력을 줄이자는 취지다.
하지만 추천위 개편이 오히려 정치권이 대법관 인선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는 통로가 돼 삼권분립을 훼손할 수 있다는 반발도 거세다. 야당은 여권의 입맛에 맞게 추천위 구성을 바꿀 경우 대법원장의 헌법상 제청권이 사실상 무력화되고, 대법원 구성까지 대통령의 뜻에 좌우될 수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추천위원회 구성을 특정 정치세력의 영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바꾸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며 "대법관을 한꺼번에 12명 늘리기보다 우선 4명 정도 증원하고 필요하다면 이후 정부에서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장기적으로는 개헌을 통해 대통령의 임명권을 형식적인 절차로 두고 국회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대법관을 선출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며 "어느 한 진영에 치우친 후보가 쉽게 임명되지 못하도록 폭넓은 합의를 요구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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