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아이를 낳을 병원이 한 곳도 없다는 말을 듣고 나니 이곳에서 가정을 꾸려도 되는지부터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결혼을 앞둔 밀양지역 청년들에게 제일병원 폐업은 단순히 병원 한 곳이 사라진 문제가 아니다. 결혼과 임신, 출산으로 이어질 삶의 계획 전체가 흔들리는 문제다.
1986년 문을 연 뒤 약 40년 동안 밀양지역 산모와 신생아를 지켜온 제일병원이 지난달 31일 마지막 진료를 마치고 폐업했다. 이 병원에서는 그동안 2만 명이 넘는 신생아가 태어났다. 하지만 출생아 감소에 따른 경영난과 의료진 고령화, 산부인과 전문의 구인난이 겹치면서 끝내 문을 닫았다. 이로써 밀양에는 실제 분만이 가능한 의료기관이 단 한 곳도 남지 않게 됐다.
▶결혼 앞둔 청년에게 밀양은 '내 미래를 맡길 수 없는 도시'
결혼을 준비하는 청년에게 주거와 일자리는 정착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아이를 낳을 계획을 하는 순간 출산 의료환경은 그보다 더욱 절박한 문제가 돼버린다.
결혼 후 밀양에 정착하려던 청년들은 이제 임신 전부터 다른 도시의 산부인과를 알아봐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정기검진을 받기 위해 직장을 비우고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 출산이 임박하면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진통과 응급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특히 맞벌이 부부라면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남편이나 가족이 항상 곁에서 운전해 줄 수 없는 상황에 처할 경우, 임신부가 혼자 다른 지역 병원을 오가는 일도 발생할 수 있다. 물론 밀양시는 이에 대해서 119응급 체계로 대응하고 있다고 하나, 겨울철 눈이나 폭우, 출퇴근 시간 교통체증이 겹치면 이동시간과 불안감은 고스란히 산모의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청년들이 느끼는 가장 큰 좌절감은 "밀양에 남아 달라"는 시 행정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다. 청년정책과 출산장려금, 인구 증가 대책을 아무리 내놓더라도 아이를 낳을 병원이 없다면 지역 정착을 권할 최소한의 설득력마저 잃게 된다.
결혼을 앞둔 청년에게 분만실 폐쇄는 먼 훗날의 일이 아니다. 신혼집을 어디에 마련할지,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있을지, 임신한 배우자를 어떻게 보호할 지 등 지금 당장 결정하게 만드는 현실적인 문제다.
결국 지역의 청년들은 묻게 된다.
"아이를 낳을 병원조차 없는 도시에서 과연 내 가족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습니까?"
▶출산 앞둔 예비 엄마에게 원정 출산은 '생명의 문제'
출산을 앞둔 임신부가 느끼는 공포는 더욱 직접적이다.
출산 예정일은 말 그대로 예상일에 지나지 않다. 진통이 갑자기 시작될 수도 있고, 양수가 먼저 터지거나 임신중독증·태반조기박리·대량출혈 등 응급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산모는 밀양 안에서 분만이나 응급수술을 받을 수 없다.
창원·양산·부산 등 인근의 다른 지역 의료기관으로 이동해야 하지만, 예비 엄마들에게 이같은 '원정 출산'은 단순히 불편한 장거리 이동이 아니다. 산모와 태아가 감당해야 하는 위험과 공포의 시간이 돼 버린다.
정기 검진부터 출산까지 다른 도시의 병원을 이용하려면 교통비와 시간 부담 등 경제적 부담도 늘어난다.
무엇보다 임신부를 괴롭히는 것은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제때 치료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출산을 축복과 기쁨으로 기다려야 할 예비 엄마가 진통보다 병원까지 가는 길을 먼저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119 이송체계만으로 산모의 불안 해소할 수 있나
밀양시는 제일병원 폐업에 대응해 임신부의 119안심콜 등록을 확대하고, 고위험 임신부를 관리하면서 다른 지역 분만 의료기관으로 이송하는 비상 대응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필요한 조치지만 근본적인 해법은 아니다. 119안심콜은 응급상황이 발생한 이후 산모를 다른 도시로 신속하게 옮기기 위한 제도다. 밀양 안에서 즉시 분만과 응급수술을 받을 수 있는 체계와는 전혀 다르다.
응급 이송이 분만실을 대신할 수는 없다. 산모에게 필요한 것은 위급해진 뒤 태워다 줄 구급차가 아니다. 위급한 순간 곧바로 아이를 받아주고 수술할 수 있는 의료진과 병원이다.
▶출산장려금 이전에 '아이 낳을 권리'부터 보장해야
저출생 정책은 아이를 낳으면 얼마를 지급 하느냐의 문제로만 해석해선 안 된다. 청년이 결혼하고 임신한 뒤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하는 게 우선이다.
출산축하금과 양육수당은 출산 이후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하지만 산모와 태아의 생명을 지킬 의료기관 자체가 없다면 현금성 지원만으로 청년과 임신부의 불안을 해소할 수 없다.
분만실은 수익성만으로 존폐를 결정할 수 있는 일반적인 편의시설로 봐선 안된다. 산모와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고 청년들이 지역에서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만드는 필수적인 정주 조건이 된다.
밀양시는 단기적인 응급 이송대책을 넘어 새로운 분만 의료기관 유치, 공공위탁 방식의 분만센터 운영, 인근 상급병원과 연계한 24시간 응급분만·전원체계 등의 마련을 시급하게 서둘러야 한다. 만약 재정과 인력 문제를 시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면 경남도와 정부가 직접 책임을 나눌 수 있도록 시가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과연 이 도시에서 안심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습니까?"
40년 동안 밀양의 생명을 받아온 마지막 분만 병원은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이번 사태는 결혼을 앞둔 청년들이 밀양에서 살아갈 이유를 잃게 만들었고, 출산을 앞둔 예비 엄마들은 가장 축복받아야 할 순간을 두려움 속에서 기다려야 하는 처지로 전락시켰다.
밀양의 청년들에게 여기에 남으라고 말하기 전에 다음 질문에 밀양시가 먼저 답해야 할 것이다.
"과연 이 도시에서 안심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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