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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의 예술기행] 인도 뉴델리에서 갠지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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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의 저물녘
갠지스의 저물녘

갑자기 서늘해진 늦은 밤의 버스 안에서, 이어폰으로 B. B. 킹과 게리 무어를 듣다가 비틀즈의 'Within You Without You'로 넘어간다. 요즘 예전의 블루스 피플로 되돌아온 나는 늦은 밤 버스 안에서 음악 듣기를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 몽환적인 존 레논과 악기들을 따라 흥얼거리다가 문득 곡에 섞인 시타르를 떠올린다. 갠지스의 낡은 오래된 움막 교실에 앉아 악기를 연주하던 백발의 시타르 연주자, 그날 그들이 피운 향도 예사롭지 않았지. 여행에서 돌아와 쓴 일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갠지스, 불가촉천민들 맨어깨에 둘러메고 온 시체 태우는 버닝가트에서, 시집 한 권 불태웠습니다. '비열한 거리'였습니다. 히말라야산 나뭇가지에 불붙어 찬란하게 사라지던 책은 누런 해 붙박혀 졸고 있던 타지마할 뒷골목만큼 참람했습니다. 삼천 년 전 남자가 여전히 그 자세로 쭈그려 앉아 돌을 쪼고 있었습니다. 갠지스 햇볕 알러지로 가려운 온몸이 비열해 저는 치를 떨었습니다. 갠지스는 그저 시침 뚝 뗀 채 백발 노파 허리 구부려 오래 몸 씻고 있는 걸 가는 눈으로 보고 있었지요. 삼천 년 전부터 여전히 몸을 씻고 있는 그 노파 말입니다."

인도의 어느 거리
인도의 어느 거리

◆그곳, 화양연화(和樣年華)였던 적이 있었을까

늦은 밤 뉴델리 공항은 누아르 영화의 한 장면인 양 안개가 자욱했다. 발리우드, 델리우드라는 별칭답게 할리우드에 뒤지지 않는 최대 영화 생산 국가다운 시작인가 했는데 누군가 온 도시를 누비는 '오토릭샤'라 불리는 삼륜택시에 나쁜 연료를 쓰는 탓이라 설명한다.

우리나라 면적의 약 33배, 인구 14억 명, 세계 10위의 경제대국, 종교의 용광로, 명멸하는 신(神)들의 나라 등이 그동안 내가 접한 인도를 일컫는 수사들이었다. 그러나 극심한 빈부격차, 카스트 제도, 그로 인한 학대와 빈곤과 차별, 문맹, 성차별·성폭력 등 여성 인권의 부재 등 지극히 부정적 시각으로 인도를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또한 그 모순과 부조리한 구조 속에서도 인도인들이 그늘 없이 명랑한 것에 분노하기도 한다. 신화와 현실의 틈바구니 속에서 윤회를 꿈꾸며 유연하게 살아간다니, 세상에 내던져진 그대로 풍경의 일부로 살다가 스러져 간다니, 어느 신인들 그들을 애휼해 마지않으랴만, 어쨌든 허술한 문명인이며 당시의 상처로 괴로웠던 나는 떼로 몰려드는 구걸하는 아이들과, 멀미가 날 만큼 많은 사람과 그리고 돌아올 때까지 비염과 기침을 멈추지 않게 한 스모그로, 내가 떠나온 곳과 그곳에서의 일을 곧바로 잊어버릴 수 있었다. 인도는 예측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얼굴을 가진 나라였다.

건기(乾期)의 뉴델리와 올드델리의 거의 모든 도로는 매연과 먼지로 뒤범벅이었다. 누군가의 표현대로 깻잎 한 장 정도의 간격으로 자동차와 오토릭샤, 오토바이가 서로 부딪칠 듯 달려가며 경적을 울려댔다.

자이푸르의 하와 마할(바람궁전)
자이푸르의 하와 마할(바람궁전)

◆바람 궁전의 슬픈 숨구멍

그 여정에서 스친, 연분홍 사암으로 도시의 건물을 지어 '핑크시티'로 불리는 인도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라자스탄주(州)의 광대한 타르사막 가장자리에 위치한 자이푸르의 아름다운 바람궁전(하와 마할)은 또 어떻게 설명할까. 무사 계급인 크샤트리아 고장의 아름다운 이 중세 궁전은 1876년 당시의 식민지배국인 영국 왕자를 위해 주정부가 환대의 상징으로 지은 연분홍색 건물이다. 삼천년 전 기법 그대로 지금도 개축된다는 벌집형 격자창은 토호세력 마하라자의 할렘에 갇힌 후궁들이 거리를 엿보던 일종의 '숨구멍'이었다고 해야 하나.

'죽음이 서로를 갈라놓을지라도…' 아그라의 타지마할만큼 연인들에게 표석이 될 것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에서 자질구레한 장신구를 팔던 열아홉 살 처녀 바누 베감에게 한눈에 반한 무굴의 술탄 샤 자한은 그녀에게 '뭄타즈 마할(궁전의 꽃)'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왕비로 맞았다. 그러나 열다섯 번째 아이를 낳던 서른아홉 살 왕비가 죽자 극도의 슬픔에 빠진 술탄은 평소 그녀와 약속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 타지마할(궁전의 왕관)을 짓고 세상에 다시없는 그녀에게 바쳤다.

시인 타고르는 그 무덤을 '영원의 얼굴 위에 떨어진 눈물 한 방울'이라 했다. 덧없으니 더욱 아름답지 않은가, 시인은 이렇게 사족을 달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불가촉천민들의 마을을 지나 폐허의 허물어진 벽에서 바라보는 '가장 타지마할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방법'에 담긴 슬픔을 선견지명의 시인은 미리 읽어낸 것이라 나는 믿고 싶었다. 그래서 필히 바라나시의 갠지스로 가야 했다.

역시 그곳에서 숱하게 겪은 것처럼 바라나시행 열차는 심한 안개 때문에 또 결행이었다. 나는 아그라역에서 급하게 택시를 타고 인근 툰두라역으로 갔다. 덜컹거리는 도로와 짙은 안개는 외지인들에게 1m 앞의 분간도 허용하지 않았지만 베테랑 택시기사 덕에 다행히 새벽 1시에 도착한다는 열차표를 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기차가 언제 올지, 내 앞에 서기는 할지, 과연 탈 수는 있을지 신(神)만이 아실 터.

아, 그런데 정말 성스럽게도 신이 도우셨는지 제시간에 열차가 도착했다. 물론 얼마 후에 제 시간에 도착한 그 열차가 꼬박 하루가 연착된 그 전날의 기차였다는 걸 알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지만. 그리하여 더더욱 구름떼처럼 몰려든 사람들에 휩쓸려 찬바람과 화장실 냄새가 그대로 들어오는 열차 연결부분 자리에 앉아 나는 꼬박 12시간을 바라나시를 향해 가야했다. 그것은 실로 내겐 오체투지에 버금가는 고행이었다. 이윽고 깊은 밤 바라나시에 들어설 수 있었다.

숙소로 가는 길 갠지스 화장터 쪽 좁은 골목에서 맨 어깨에 금박 천을 덮은 시신을 메고 만가(輓歌)를 부르며 지나는 머리를 박박 민 불가촉천민 행렬과 마주쳤다. 죽은 자를 위해 올리는 푸자(제사) 중 일종의 '노제(路祭)' 형식 같았다. 그들이 지나가던 순간 온 거리를 떠도는 매캐한 누린내와 선향(線香) 냄새가 산 자의 내장을 뒤틀리게 해 나는 낮에 먹은 것을 모두 토하고 말았다.

갠지스 강가의 시타르 연주자. 김호진 시인 제공
갠지스 강가의 시타르 연주자. 김호진 시인 제공

◆갠지스에서 태운 첫 시집

나는 바라나시를 벗어나는 차 안에서 떠나온 곳에 있는 누군가에게 부치지 않을 편지를 썼다. 아침엔 10여 년 만에 민물고래가 갠지스에 나타나 떠들썩했고, 나는 첫 시집 '비열한 거리'를 무슨 의식을 치르듯 갠지스강가에서 불태웠다. 돌아나오며 마하라자들의 별장 사이로 난 다리 아래에서 낡은 만년필도 하나 주웠다. 끝내 주인을 찾아주지 못하고 배낭에 넣어 집으로 가져왔다.

터번을 쓴 경찰이 바라나시 중심지에서 교통 체증을 일으킨 우마차를 모는 노인에게 채찍을 휘두르는 광경과 불가촉천민 소년이 단지 자신에게 부딪쳤다는 이유로 매몰차게 뺨을 때리는 젊은 인도 남자도 보았다. 나는 신물이 올라오도록 그곳에서 토하고 또 토했다. 인도를 예찬하는 이들과는 여행 이후 늘 다투는 이유가 되는 장면들이 아직도 눈앞을 스친다. 일기는 이렇게 또 이어진다.

"사실 어젯밤 가트 가장자리에 먹은 것들을 다 토해냈습니다. 갠지스의 냄새가 아니라 어쩌면 삼천 년 전 히말라야산 나무 잉걸불 위에서 타던 제 몸 냄새를 제가 맡은 탓일 수도 있습니다. 참, 그날 아침에 깎은 제 손톱도 '비열한 거리'에 싸서 같이 불태웠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삼천 년 바깥으로 떠돌다 온 저를 갠지스가 온전히 받아들여주었는지도 갑자기 두려워집니다. 삼천 년 전, 허리 구부려 오래오래 몸 씻던 저를 시침 뚝 떼고 바라보던 햇살 따갑던 그날의 그 갠지스가 말입니다."

그땐 분명히 후지와라 신야에 잔뜩 경도되었던 모양이다.

박미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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