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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신압록강대교 개통의 역사적 미래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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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호 포스텍 교수·유라시아 원이스트씨 포럼 회장

정진호 포스텍 교수·유라시아 원이스트씨 포럼 회장
정진호 포스텍 교수·유라시아 원이스트씨 포럼 회장

신압록강대교가 마침내 개통되었다. 중국이 22억 위안(약 4천400억원)을 투자해 2014년 완공한 지 12년 만에 문이 열린 것이다. 신의주-단둥을 연결하는 총연장 3km 4차선 도로가 열리면서 조중 물류 처리능력이 4배가량 확대될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었다. 중국 측은 리창 총리 및 외교부 담화를 통해 양국 정상의 관심 속에 진행된 이번 대교 개통을 축하하고 중조 무역과 왕래의 새 시대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하였다.

그러나 12년간 신의주 쪽 진입도로와 통관, 화물시설을 완공하지 않고 지연시켜온 북측의 입장은 다르다. 대중 무역 의존도 심화에 대한 우려, 중국의 유엔 제재 동참 등 정치적 변수로 인해 북측은 중국 측의 추가 투자를 요구하며 공사를 지연시켰다는 분석이 있다.

2017년 11월 29일 북한의 핵무력 완성 선언 이후 남북·북미 회담이 이루어지자 조중관계도 급격히 가까워지면서 압록강대교 개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COVID-19로 또다시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그러나 북한의 러-우 전쟁 파병과 북러 관계 밀착으로 유엔 대북 제재의 집행력도 약화되면서 북한의 입지가 높아졌다. 최근 북러 간 두만강 자동차다리를 먼저 개통한 데 이어 오랜 숙원이었던 신압록강대교를 개통한 것은 중러 견제관계를 이용한 등거리 외교로 중국을 상대하려는 북한의 정치적 포석이 정교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압록강 다리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후를 아우르는 애환과 고통의 우리 근현대사와 맞물려 있다. 1911년 세워진 제1압록강철교(한국전쟁 시 단교, 절반만 남아 있음)는 일제의 대륙침략 통로이자 독립투사들이 숨죽이며 만주와 상해를 오가던 주요 교통길이었다. 1943년 세워진 제2압록강교(중조우의교, 철도·자동차 겸용)는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참전 통로가 되기도 하였다. 이번에 개통된 제3압록강대교는 침략과 전쟁의 가교였던 역사를 뒤로하고 한반도와 유라시아대륙을 잇는 경제대교로서 역할하기를 기대한다. 언젠가 대한민국의 컨테이너를 실은 트럭들도 이 다리를 질주하며 유라시아를 향해 뻗어갈 날이 속히 도래하기를 바란다.

평양과기대에서 가르치던 무렵, 나는 비행기보다 하룻길이 걸리더라도 기차로 압록강대교를 지나다니곤 했다. 순박한 북측 사람들이 싸가지고 온 과일과 닭알과 과자를 건네며 먹으라고 주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북향민 제자 한 친구가 한국에 와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기차 탈 때였다고 고백하던 말도 생각난다. "북에 있을 때는 우리는 기차를 타면 모두 친척이 되고 만답니다. 온종일 떠들며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여행을 했는데, 한국에 오니 기차 안에서 모두 화난 표정으로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어서 무서워서 말을 걸 수 없었어요." 그 말을 듣고 보니 똑같았던 시절이 떠오르며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리고 사는지 알 것 같았다.

그 시절 나는 북측 당국의 허가를 얻어 평양과기대 졸업반 학생 30여 명을 데리고 매년 여름 중국 수학여행을 2주간 다녀오곤 하였다. 제2압록강철교를 지나며 감회에 젖은 표정으로 끊어진 제1철교를 바라보던 학생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들에게는 닫힌 세상에서 열린 세상으로 나아가 세계를 바라보는 소중한 기회였다. 중국의 발전된 모습과 대학과 기업, 심지어 이케아와 KFC를 방문하며 생각에 잠기던 제자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우리 조국도 곧 이렇게 경제강국이 될 것이야요."라며 다짐하던 친구도 있었다. 장차 그들이 북한이 세계를 향해 뻗어갈 때 마음껏 활약하는 국제적 교량 인재가 되기를 바란다.

이제 북한은 북부 접경의 두 다리를 새롭게 개통하여 북쪽으로는 러시아와 서쪽으로는 중국과의 21세기 경제 연결로를 확보하였다. 그러나 정확히 2년 전인 2024년 10월 15일 북한은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도로를 폭파하고 DMZ에 장벽을 쌓았다. 남쪽으로는 오히려 길을 끊어 적대적 두 국가체제로 따로 살기를 결심한 듯하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로 인해 대륙으로 갈 길을 잃은 우리는 오롯이 섬나라가 되고 말았다. 하루속히 남북관계를 복원하여 신라와 발해, 고려시대에 실크로드와 중동, 아프리카까지 누비며 대륙과 바다를 함께 경영했던 '사통팔달 코리아'의 영광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후대에게 남겨줄 가장 값진 유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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