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금융계 '국제' 태풍

새정부 출범 직후 사정 바람으로 곤욕을 치렀던 금융계가 또다시 태풍권에휘말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국제그룹의 해체 조치를 '위헌'으로 규정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전례없는것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부실기업 정리 등의 명목으로 사라진 기업주들이 잇따라 들고 일어날 가능성이 농후해 어떤 식으로든 기업정리에 깊숙이 관여했던 은행들의 입장정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더욱이 앞으로 량정모 전국제그룹회장과 재무부 등 공권력 또는 한일합섬등국제그룹 인수 회사들간에 벌어질 행정.민사소송에 헌재의 결정이 큰 영향을끼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국제그룹의 주거래은행이었던 제일은행은 물론10여개 관련은행도 가만히 좌시하고만 있을 수는 없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은행들은 이에 따라 곧 모임을 갖고 사태의 추이와 전망을 분석하는등 대응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이와 관련, "헌재의 결정이 내렸다고 해서 곧 은행의 조치가 뒤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고 개별 소송의 결과를 지켜 본 뒤에야 구체적인 문제점과 대응수단이 마련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제일은행은 헌재의 결정에 대해 "량전회장과 공권력간의 문제이며 은행은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니다"며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사태가 어느 방향으로 튈것인가를 예의주시하며 관계자회의를 긴급 소집, 대책을 숙의하는가하면 묵은 자료를 다시 챙기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제일은행은 특히 량전회장의 사돈인 김종호씨(김덕영 전국제그룹부회장 부친)와 소송중인 신한투자금융의 소유권과 관련, 신한투금은 국제그룹 계열이 아니므로 헌재의 결정과는 무관하며 김씨와 다른 주주들의 주식을 합해 모두1천6백10만주(액면가 5백원)를 당시 시가보다 훨씬 비싼 1백3억원에 인수한정상 거래라고 주장했다.

제일은행은 그러나 국제그룹 정리조치를 발표한 사람이 바로 당시 이필선행장이고 보면 이번 헌재의 결정을 반드시 남의 일로 치부하고 가볍게 넘길 입장만은 아니라는 것이 금융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헌재는 당시 전두환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김만제재무부장관이 작성한 국제그룹정리계획을 이전행장이 발표하는 형식을 취한 것으로 결론지었음에도 제일은행측은 "재무부와 은행감독원 등 관계 당국과의 협의는 거쳤지만 지시를 받은 사실은 아는바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부분도 석연치 않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또 국제그룹의 주거래은행은 제일은행이지만 계열사별로는 국제상사 무역부문과 원풍산업, 동서증권 등이 제일은행, 국제상사 건설부문은 상업은행, 연합철강은 서울신탁은행 등 주거래은행이 갈라져 있고 주거래은행이 아닌 다른은행들도 관계돼 있어 국제그룹 사태는 금융계 전반에 걸치는 문제로 부각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번 헌재의 결정으로 국제그룹과 비슷한 소송이 잇따를 경우에는 국내 재계와 금융계가 모두 얽히는 사상 유례없는 혼돈이 빚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금융계 관계자들은 그러나 헌재의 결정이 앞으로의 행정.민사소송에 영향을준다고 해도 이미 8년5개월이라는 세월이 흘러 국제 상사계열사들의 실체와내용이 인수 당시에 비해 워낙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완전한 원상복귀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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