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성역없는 금융실명제

지난 6월14일 조계종 원로회의에서 전국25개 교구의 본사와 그가 거느린 1천7백여 사찰의 재산공개를 결정한데 이어 지난달 27일에는 종헌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거야말로 근래에 더 없을 정도로 반가운 일이고 또 영원히 역사의기록에 남을 일이다. 그것은 크게 두가지 이유때문이다. 하나는 불교를 중심한 우리 종교계의 발전을 위한 것이고, 하나는 사회정의의 실현을 위한 것이다.우리나라 근대 불교의 변천을 보면 오랫동안 유교정권에 눌려 있었던 나머지조선왕조가 일본침략에 망해갈때 불교는 불교를 앞세운 일본 침략에 자진하여 동참하거나 흡수되어간 모습이 많았다. 강화도 조약을 맺은 이듬해인 1877년에 일본 동본원사 별원이 부산에 설립되자 먼 길도 마다않고 유명무실의승려가 앞다투어 참배하였다. 1910년 나라가 망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회광스님은 일본으로 건너가 나라를 합쳤으니 양국불교도 합쳐야 한다고 불교 합동조약을 맺고 돌아올 정도였다. 그때 한룡운스님을 비롯한 양심적 승려에 의하여 민족불교가 지탱해갔지만 대부분의 사찰은 식민지 권력의 비호속에 불교재산의 안전을 도모하는데 급급했다.

그리하여 민족의 양심은 불교를 외면하게 되었다. 교단의 재산이 식민지 권력의 비호를 받은 것은 불교계 뿐만은 아니었다. 어떻든 불교만을 놓고 이야기하면 그후 오늘날까지 그 막대한 재산을 관리하며 눈살을 찌푸리게 한 구조적 추태나 승려 개인의 행동들이 적지않게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필자는 종교계의 신부 목사 스님 등 많은 성직자와 두터운 교분을 가지고 있지만 그 가운데 성직자가 직접 재산을 관리하고 있는 데 대하여 함께 걱정해왔다. 불교계에 대해서도 걱정해온지가 오래되었다. 불교계는 부동산이 많아그를 위요한 분쟁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라면 진작 어떤 조처가 강구되어야할 일이었다. 그 조처의 하나로 재산의 공개관리는 필수의 일이었는데 이번에조계종이 어느종교나 어느 종파에 앞서 용단을 내린 것은 현명한 일로서 민족과 역사의 축복을 받아 당연하다. 이번의 조처로 과거의 오류를 씻고 새로운 위상을 갖춘 불교가 될 것을 의심치 않는다.

종교 교단이라고 해서 재산을 축적해서 안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돈이나 재산은 그 자체의 질서와 절차 즉 경제적 방법에 따라 축적되고 유통되어야 한다는 기본원칙을 종교계는 지키고 도와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이다.그렇다면 교단의 재산을 경제적 절차에 따라 축적했는가를 반성해보아야 할것이다. 종교의 포교는 토착 사회의 양심에 근거할 때 뜻이 있고 대중화가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 의미도 갖는 것이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후 여러가지 개혁이 기대되는 가운데 그중에도 금융실명제가 실시될 것을 양심있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런데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면 부작용의 충격이 너무 심각하기 때문에 미루어왔다는 것이다. 사회정의를 실현하면 멍이 들 사람이 너무 많다는 말이다. 그동안 비리에찬 경제질서였기 때문에 비리속에 살아온 사람이 멍이 들면 경제질서 전체가멍이 들고 그렇게 되면 양심스런 일반인도 다친다는 말인 것 같다.그런데 그것뿐이라면 돈쟁이들의 이야기이므로 그렇다고 치부해버리겠는데한편에 금융실명제는 종교 교단에서도 반대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매주 매월에 들어오는 교당의 헌금이 금융실명제로 말미암아 노출되기를 꺼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돈쟁이들과 같이 종교계도 금융실명제를 반대하기도 했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사회가 더 이상 썩어내리기 전에 기대보다도 빨리 금융실명제가 실시돼 다행스럽다.

국민의 양심을 재건하기 위해서도 종교교단의 재산을 공개하고 종교계가 금융실명제의 실시에 적극적으로 앞장서야할 것이다.

우리 현대사에 누적된 비리척결에 조계종 불교가 앞장서 재산공개의 용단을내렸으니 그 발표를 보는 순간 필자는 1천7백년 한국 불교사에서 또한번 금자탑을 세우는 위대한 용단이라고 외쳤다. 종교계뿐 아니라 사회정의를 실현할 등불이 되기를 믿고 조계종 종단에 다시 한번 축하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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