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태리영화감독 펠리니 가다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가 31일 로마의 움베르토 병원에서 7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라 스트라다(길)}, {카리비아의 밤}등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들을남기며 다섯번이나 오스카 상을 획득했던 펠리니 감독은 지난 17일 심장마비로 뇌손상을 입은 후 줄곧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기성천외한 언행과 독특한 스타일로 수십년동안 이탈리아 영화계의 대부로군림해온 펠리니 감독은 그의 영화가 개봉되는 날이 전국가적 행사일로 여겨질만큼 현대 이탈리아 영화의 살아 있는 기념비로 추앙받아왔다.영상의 마술사로 불릴만큼 당대 {최고의 혁신기법 감독}으로 손꼽히기도 한펠리니의 명성과 영향력은 이탈리아를 뛰어넘는 전세계적인 것이었다. 그의작품에는 흔히 광대, 난쟁이, 매춘부 등 별종 인생들이 등장, 그 특유의 풍자와 페이소스를 영상화시킨다.

떠돌이 흥행사와 백치 처녀의 이야기를 그린 그의 두번째 영화 라 스트라다는 오스카상을 포함해 전세계에서 50개가 넘는 각종 상을 수상했다.북이탈리아 아드리아해 연안의 휴양지 리미니 태생인 펠리니 감독은 젊은 시절을 방랑생활로 전전하기도 했으며 정규 학교교육을 받지 못했음에도 피렌체,로마등지에서 라디오방송의 스크립터로 활동하기도했다.

2차 세계대전중 여배우 줄리에타 마시나와 결혼한 펠리니는 그의 아내와 앤터니 퀸이 공연한 라 스트라다(54년)와 카리비아의 밤(56년)으로 최우수 외국영화부문 오스카상을 거듭 따내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이어 그는 자신의 환상을 자유롭게 펼쳐 보인 {라 돌체 비타(달콤한 인생)(60년칸영화제 대상)}와 반자전적 영화 {8과 2분의 1(63년 오스카 상)}로 전후시대 거장으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했다.

한편 카를로 참피 이탈리아총리는 31일 펠리니의 타계 소식에 [이탈리아는펠리니를 최고의 시인으로 기억할 것]이라며 애도했고 여우 소피아 로렌은[큰 등불이 꺼지고 우리 모두가 어둠속에 남게 됐다]고 전세계 영화인들의 슬픔을 대변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