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울변협선정 {시민인권상} 받은 인의협

서울지방변호사회가 23일 선정한 제2회 {시민인권상}수상자인 량길승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대외협력위원장(45)은 [이번 수상이 산업재해에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수상소감을 대신했다.서울변협은 량씨가 [소외계층에 대한 투철한 소명의식과 인도주의에 입각한의료활동을 통해 노동자의 직업병 규명과 산업보건에 헌신하는 한편 70-80년대 권위주의 시대에 발생한 고문과 의문사에 의한 인권유린에 맞서 사회정의 실현에 앞장섰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양씨는 질병 치유라는 의사 본연의 임무외에 점차 구조화하는 사회 병리에대한치열한 대결의식으로 산업재해와 소외계층의 인권보호를 위해 인술의 칼을 빼어든 실천가.

67년 서울사대 수학과에 입학한 그는 독재 권력에 대한 지성인으로서의 고민을안은 채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인 전남 나주로 가 1년간 농사를 짓다가{인술을 통한사회봉사}를 결심하고 69년 뒤늦게 서울대 의예과에 입학했다.{실천하는 지성}이라는 신앙을 늘 간직했던 그는 74년 긴급조치 위반으로학업을 중단해야 했으며 80년 어렵게 복학했으나 후배들의 정치활동을 도왔다는 이유로 다시 제적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가 노동자들의 산업재해와 직업병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한 신부의주선으로 입학한 아일랜드 국립 골웨이 의과대학을 졸업한 이듬해인 86년부터.

[찾아온 환자중 1명은 꼭 손가락이 잘려 있었습니다. 대부분 프레스 기계작업중 다친 것이었습니다. 잘린 손가락이 한 달에 한 가마니는 될 지경 이었습니다]인술의 길에 뛰어든지 16년 만인 85년 의사 면허증을 취득한 후 서울구로구 가리봉 5거리에 처음으로 병원을 개업했을 때 찾아온 환자들의 한결같은 모습을 보고 그는 {노동자의 의사}로서의 길을 가리라 결심하게 됐다.산업재해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던 그는 87년 인의협 결성에참여해 소외계층을 위한 의료혜택에 힘썼으며 이듬해 {노동과 건강연구회}를창립, 산업재해의 극복이 주요한 사회문제임을 인식시키는데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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