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동전화국 {전자식} 교체 기계식 교환기 "폐막"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교환원없이 다이얼 조작만으로 통화할 수 있는 자동통화시대를 열었던 기계식 교환기가 사라졌다.지난달 30일 안동전화국의 기계식 교환기가 전자식으로 교체, 대구.경북지역의 기계식 교환기가 33년을 역사로 완전히 퇴장했다.

한국통신은 이 교환기의 일부를 2001년 건립될 전기통신박물관에 전시할 예정이다.

기계식 교환기의 완전 철거를 계기로 우리나라 전화소통방식.교환기 발달사를 대구.경북지역을 중심으로 되짚어본다.*

우리나라에 처음 전화기가 도입된 것은 1882년3월경이었고 전화가 공중통신용으로 사용된 것은 1902년3월20일 서울-인천간 전화가 개통된 이후였다. 경북지역에는 1906년 7월1일 대구우편국에서 자석식 전화를 개통한 것을 계기로전화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 당시 사용됐던 교환기는 수동식이었다.

가입자의 집에 통화용 전지와 전화기를 설치하고 교환기에서 교환원이 잭과플러그를 이용, 가입자와 통화상대 가입자를 연결해주었다.가입자가 개별적으로 비치했던 축전지를 없애고 교환국에 집중화시킨 공전식교환기는 57년 대구전신전화국에 3천8백회선이 개통됐고 71년에는 왜관전화국에 8백회선이 개통됐으나 82년까지 왜관지역에서만 사용됐을뿐 자석식교환기처럼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다.

자석식교환기 전성기였던 60년대와 70년대 전화기는 {울화통}이라 불리기도했다.

시외전화 한번 하려면 반나절이나 걸려 대구에서 서울로 시외전화를 거는 것보다 열차를 이용하는 것이 더 빨랐다고 한다. 그나마 연결된 전화는 그 좁은우체국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러야 겨우 얘기를 할수 있었던 시절이었다.우체국 교환원의 세도도 대단해서 명절때면 선물을 전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자장면 배달전화도 교환원이 잘아는 중국음식점에만 연결해 주는 바람에 음식점 주인들은 교환원에게 환심을 사지 않고는 장사를 할수 없었다.택시회사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특정 회사를 지정하지 않고 교환원에게 [택시를 불러달라]고 하기 때문에 교환원이 평소 안면이 있는 회사에만 전화를연결해줘 다른 회사 사장들이 애간장을 태우기도 했다.

수동식 전화기는 갖가지 에피소드를 남긴채 86년 경북지역에 남아있던 1만6천5백회선의 자석식 교환기 철거를 계기로 전화국에서 자취를 감추었다.국내 최초의 기계식 교환기는 35년3월 나진에서 개통됐다. 당시 일본은 군사목적으로 나진전화국에 4백회선 규모의 기계식 교환기를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대구.경북에서는 61년9월3일 대구전화국의 전신인 대구전신전화국에 독일 지멘스사의 EMD교환기가 설치된 것이 기계식교환기의 시초다.기계식이 등장하면서 위세 높던 교환원들이 교환대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자동식 교환기의 일종인 기계식은 가입자가 직접 다이얼에 의해 자동교환기를 조작, 상대방을 호출하는 방식이어서 교환수가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기계식은 또 전화번호에 국번과 지역번호를 부여했으며 자동시외통화를 가능케 했다.

대구 최초의 전화국번은 2번으로 62년11월10일부터 대구전신전화국내 가입자에게 부여됐고 74년7월14일 대구-서울 장거리 자동전화(DDD)가 개통됐다.기계식은 그러나 70년대까지 일부 대도시에만 설치됐고 농어촌지역은 여전히수동식교환기를 사용했다. 기계식이 본격 보급된 것은 70년대 중반이후였다.트랜지스터의 발명과 컴퓨터 등장으로 기계식도 자신이 몰아냈던 수동식과같은 길을 가야했다.

80년대에 이르러 전자교환방식이 본격적으로 공급되고 국산화계획이 진행되면서 기계식교환시대에서 전자식교환시대로 돌입하게 된다. 이른바 3세대 교환기 시대가 열린 것이다.

79년12월 서울 영동과 당산전화국에 벨기에식 반(반)전자교환기인 M10CN 2만회선의 개통으로 전자교환시대가 열렸다.

대구.경북지역에서는 81년 대구전화국에 M10CN 1만회선 개통을 시작으로 기계식교환기가 전자식으로 교체되기 시작, 13년만에 완전 전자식으로 바뀌었다.전사식교환기시대의 개막으로 전화는 단순 통화수단에서 단축다이얼.착신통화 전환등 전자교환특수서비스와 음성정보서비스가 가능한 정보통신기기로 탈바꿈 했다.

82년 4월 단축다이얼 착신통화전환 통화중대기 부재중안내등 4종류의 전자교환 전화특수서비스가 대구지역에 처음 등장했으며 이듬해 5월 지정시간통보3인통화 직통전화등이 추가됐다.

이와함께 90년 들어서 수성전화국 범어분국에서 {대구700생활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또 기계식교환기로는 불가능했던 무선호출.이동전화등과의 교신이 가능해져86년10월 대구지역에 무선호출기가 등장했으며 89년부터는 차량전화(이동전화)가 개통돼 이동전화시대를 열기도 했다.

80년대는 우리나라 교환기발달사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국산 전(전)전자교환기를 개발, 실용화함으로써 디지털방식전화교환기가 단일 국산기종으로통일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84년 세계에서 9번째로 디지털방식의 국산 전전자교환기(TDX)가 개발돼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국내 기술에 의한 종합정보통신망구축이 가능하게 됐다.86년 고령에 전국에서 처음으로 국산전전자교환기(TDX-1)가 설치돼 6천회선이 개통되면서 국산전전자교환기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94년9월말 현재 대구.경북지역의 교환기 디지털화율은 65%에 이르며 2000년까지 반전자교환기는 국산 전전자교환기로 완전 교체될 것으로 보인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