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깨어 창가에 다가선다.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도시의 밤, 도시의 밤은도무지 적막이라는게 없다. 끊임없이 술렁이며 귓전을 맴도는 소음, 급박히지나가는 구급차의 가쁜 경보음이 이 시대의 밤을 대변한다.도시는 우리에게서 너무도 많은 것을 앗아가 버렸다. 약간의 먹을 것과 입을 것, 편리한 생활의 수단을 제공했지만 인정의 강과 인륜의 바다, 풍요롭던 삶의 공간마저 몰수해 버리고 이제 그 모든 것이 오히려 족쇄가 되어 우리를 옭아매고 있다.쌓인 명함철을 펼쳐보았다.도시를 떠돈지 30여년, 세월의 부피만큼 명함철의 두께도 늘어났다.세월의 낙루가 번져 누렇게 빛바랜 명함으로부터 새하얀빛깔의 이름들이 세월의 가고 옴을 말해준다. 지금까지 자주 내왕하고 있는사람, 간간이 소식만 주고 받는 사람, 오래 소식이 두절된 사람, 그들의 이름석자가 가지런히 꽂혀 있다.
여지껏 교류하고 내게 도움을 주었던 많은 사람들 틈엔 돈을 떼어먹은 채무자의 이름도 얼핏 보인다. 연두빛 옥호의 마담의 명함도 한 켠을 지키고 있다. 칠팔개의 거창한 직함의 명함을 보니 그의 유들 유들 했던 얼굴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 또한 세월이 흐르면 다른 사람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고 내 기억의 낭하를 돌아 멀리 사라질 것이다.
불교의 전생윤회사상은 인간은 전생, 금생, 내생을 윤회하며 전생에 오백번만났던 인연이 금생에 옷깃 한번 스친다고 하니 여기 이 명함의 주인공들은나와는 특별한 인연이리라.
그러나 문명의 현란한 불빛과 날카로운 도시의 눈빛들은 지금 인연의 단단한고리마저 녹이려 하고 있다. 도시의 밤, 어둠이 등신처럼 출렁이는데 우리는 서성이며 또 여기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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