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숨통트이는 지방대 취업전선

지난 19일 오전 11시30분 (주)우방의 신입사원 2차면접장.긴장되면서도 진지한 표정의 응시자 5명이 반듯하게 앉은 채 어려운 취업관문을 돌파하기 위해애를 쓰고 있었다. 30분 가까이 계속된 면접시험의 첫 순서는 자기 소개. 한응시자가 "…저는 대학시절 과대표를 맡아 활동한 경험이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생활해야 한다는 자세를 갖게 되었습니다. 저의 단점이라면성격이 급하다는 것인데 이를 고치기 위해 바둑을 배우면서 마음을 가다듬고있습니다.…"10여평 남짓한 면접장 안에는 조용하면서도 긴장된 분위기가 흐르는 가운데응시자들이 차례로 자기소개를 하는 소리만이 낭랑하게 울려퍼지고 있었다.자기소개가 끝나고 개인별 질문순서가 되자 이 회사 최고경영자인 이순목회장이 담배를 피워물면서 한 수험생에게 "경제학을 전공했다고 했는데 올해우리나라 통화량이 얼만줄 압니까?"라고 물었다. 질문을 받은 응시자는 당황한 모습으로 잠시 머뭇거리더니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한다.이회장의 질문에 뒤이어 임원들의 질문이 계속된다."아파트 영업부서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는데 아파트 영업차원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하는 아이디어가있습니까?" "요즘 소형아파트가 잘 안팔리는 현상을 빚고 있습니다. 20평이하의 소형아파트를 팔려면 주로 가족이 단촐한 젊은 부부를 공략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부부를 대상으로 하되 20평이라도 30평 못지않게 실내공간을 넓게 보이는 설계로 아파트를 짓는 것이 전제조건입니다.가령 방 수를 2개로 하되 거실을 넓게 해서 좁지 않은 느낌이 들도록 아파트를 지은 후 이를 뛰어난 판매기술과 연결시킨다면 판매율이 늘어날 것이라고판단합니다"

"APEC이 무슨 말입니까 ?" "아시아태평양 경제…" "아니 영어로 말해보시오""Asia Pacific Economy…C는 잘 모르겠습니다"

면접시험이 끝난후 어땠느냐고 물어보니 올해 영남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는박모씨(28)는 "잘 못 본 것 같습니다. 시사상식에 관한 질문에 대답을 못해서 마음에 걸립니다"라고 말했다.

대구가 고향이면서 지난해 숭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모개발회사에 다니다이번에 우방에 지원했다는 신무헌씨(28)는 "사전에 예상질문을 설정, 조리있게 답변하는 연습을 했는데 막상 시험장에 들어가니 떨려서 말이 조리있게되지 않았습니다"라며 역시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 회사는 올해 신입사원을 지난해보다 두배 가까이 늘어난 1백80~2백명을뽑기로 하고 당초 원서를 5천부 정도 배부했다. 그러나 응시자가 예상보다많이 몰려 6천부의 원서를 부랴부랴 더 만들어 배부했고 서류전형과 1,2차면접을 거쳐 최종합격자를 뽑는다는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다.이 회사의 경우올들어 회사가 전국적인 규모로 성장,이미지가 높아지다 보니 예년과 달리서울등 다른 지역 출신 응시자가 많았다고 한다.

올해 대졸자 취업은 기업의 채용규모가 늘면서 다소 숨통이 틔였으나 특히지방대학 출신자들에게 문호가 넓어졌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리크루트가 국내1백37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보험, 은행등을 포함한 11개 업종의 채용규모가 지난해보다 최고 1백57% 이상 늘어나 전체적으로는 16.3%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제일화재해상의 경우 지난해보다 배 이상인 90명을 뽑고 현대전자산업은 배가 늘어난 1천명을 뽑는다.또 효성중공업은 30% 이상이 늘어난 1백명을 뽑는 등 채용인원이 크게 늘어났다.

지역업체의 경우도 청구, 우방, 보성은 지난해보다 2배가량 늘어난 50~2백명을 뽑을 계획이다.

지방대졸자의 취업숨통이 트인것은 기업들의 채용규모가 늘어난 것도 원인이있지만 인성 중시, 지방대 차별철폐등의 긍정적인 경향이 생기면서 지역 대학생들의 취업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올해부터 지역대학들이 취업관련 프로그램과 시설보강을 하는 등 학생들의 취업에 적극 발벗고 나서는 노력을 해오고 있어 취업난의 해소를 돕고 있다.이러한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바람직한 현상에도 불구하고 취업전선의 내면에는 여러가지 부정적인 장애요인들이 자리잡고 있다는게 응시자들의 불평이다.삼성그룹의 경우 올해부터 원서에 출신대 표기란을 없애 지방대 차별을없애겠다고 했으나 최근 지방 대학에 내려온 취업관련 자료에는 원서에 출신대 표기란이 그대로 있어 대기업의 이중적인 태도를 엿보게 한다.지역대학이 심각한 취업난을 해소하면서 취업률을 높여 학교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노력도 치열하다.

계명대의 경우 신입생이 입학할 때부터 취업진로카드를 작성,적성검사나 상담등을 꾸준히 하면서 봄,가을학기에 각각 자체 TOEIC시험을 쳐 취업에 대비하도록 하고 있다. 또 이력서나 자기소개서 쓰는 방법등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입사시험 출제경향및 면접훈련등 취업특강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고 있다.

계명대는 4천여명의 졸업예정자중 순수취업률이 45~46%로 지난해보다 5~6취업률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지역대학 전반적으로는 5~10% 늘어날것으로 취업관계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이 대학 이영동 취업보도과장(56)은 "학생들이 취업에 신경을 쓰면서도 4학년이 되도록 진로설정을 못하거나 이와 관련된 취업준비를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면서 "올해 취업 숨통이 다소 트일 것이나 여전히 취업하기는힘든 형편"이라고 말했다.

지역대학들의 취업에 대한 지원 노력도 서울지역 대학들보다는 3년 정도가뒤처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학들의 취업지원 현상은 마치 고교에서 고3생들을 위해 진학지도 하는 모습과 거의 다를 바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때문에 일부에서는 대학이 취업지도기관으로 전락한 게 아니냐는 비난도 따르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생들은 대부분 기반이 든든한 대기업을 선호한다. 또 언론사나 전문직종등의 취업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경향이다. 과별로는 이공계통 학생들은 비교적 취업이 잘 되는 반면에 인문사회계통은 일부학과를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취업률이 낮다.더구나 여대생들은 우리사회의 의식이나 구조적인 문제와연관돼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는 하소연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역대학들의 경우 학교별로 차이는 있지만 전체졸업생의 30~40%가 자신감을갖고 대기업에 대한 취업준비를 하고 있으나 나머지 학생들은 중소기업이나다른 진로를 모색하고 있으며 자포자기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학 도서관에서 만난 진재운씨(25·경북대 심리학과 4년)는 이미 효성중공업에 취업이 됐으나 언론사에 가고 싶어 계속 공부를 하고 있다면서 "지난해보다는 취업이 잘 되는 것 같아요. 같은 과 선배들이 지난해 취업한 것보다올해 취업률이 두배 가까이 뛰고 있으니까요"

현대전자에 취업이 확정됐다는 김갑수씨(24·물리학과4년)는 취업결정 이전보다 마음이 느긋해진 가운데 요즘은 어학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취업을 준비하면서 불안감때문에 잠 못 이룬 적도 많았다면서 취업이 안돼 정신질환을 앓는 사례를 주위에선 보지 못했지만 충분히 이해가 간다고말했다.

여대생들의 경우는 매우 심각하다. 한 과에 고작 2~3명 정도가 취업을 하는게 일반적일 정도로 취업률은 형편없다.학교에서 내주는 추천장도 거의 남학생 위주로 돼 있어 불이익을 당하고 있고 취업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고도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전산직종등으로는 진출의 길이 어느 정도 열려있는데 그것도 남녀차별때문에 쉽지 않다는 게 여대생들의 말이다. 여대생들은 아예 대학원을 진학해서 학교에 남아있는 길을 모색하거나 공무원이 되는길 및 정보처리기사등의 자격증을 취득해 취업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려는 노력을 한다.

여대생 이모양(22·경북대 수학과4년)은 "취업과 관련된 사회적인 벽에 대해서 비애를 느끼기보다 차라리 면역이 돼 있다고나 할까요. 일부에서는 든든한 '빽'이 있으면 취업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좋은 환경 가진 남자만나서 시집만 잘 가면 편안하게 살 수 있지 않느냐는 '공주병'에 걸린 친구들도 꽤 있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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