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실망스런 헌재결정

헌법재판소에 장기계류되고 있던 사형제도를 규정한 형법 제338조와 노동조합의 정치참여를 금지한 노동조합법 제12조가 위헌이라고 제기한 헌법소원이본안심판없이 {절차상 잘못}을 이유로 모두 각하해 개운치않은 뒷맛을 남겼다. 지난 9월 제2기 재판부가 구성된이래 헌재에 계류되고있는 헌소들 가운데사형제도와 노조정치참여건은 2기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가 주목돼오던 관심거리였다.그런데 이같은 중대한 사안의 헌소를 처리하는데 본안은 건드리지도 않고 절차를 문제삼아 위헌여부의 판단은 유보한채 사실상 기각처리한 것이 과연 헌재가 제할일을 제대로 했는지 짙은 의구심을 갖지않을수 없다. 헌재가 어제이같은 결정을 내리자 예민한 현안을 교묘히 피해가는 떳떳하지못한 몸사리기작전이라는 비난이 크게 일고있는데 어쨌든 최후의 권리구제기관으로서의 권위에 심한 상처를 남기게 됐다.

헌재가 두 소원의 절차에 문제를 삼은 것은, 사형제도의 경우는 소원제기한사람이 사망했고 소원을 수계할 연고자도 없어 소송당사자가 없는 상태이기때문에 심판이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노조정치참여금지 경우는 소원청구기간을 넘겨 제기된 소원이기 때문에 소원자체가 원천적 하자로 성립될수없다며재판도 하지않고 선고한 것같은, 수긍할수없는 결정을 내려 기대했던 헌재 2기재판부에 크게 실망했다.

사형제도의 경우는 접수된지 4년7개월 노조정치참여금지 경우는 3년11개월만에 내려진 결정인데, 이처럼 오랫동안 묵혀놨다가 이렇게 개운치않은 결정을내린걸 어떻게 떳떳한 조치로 볼수있겠느냐는게 지배적 여론이다. 어제의 헌재결정이 법적으로 어떤 하자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법리적으로는 헌재의 결정은 설득력이 없는 것이며 핵심을 피하고 변죽을 울린 정도를 벗어난것으로 보지않을수 없다.

제2기 재판부구성후 첫 결정이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빗나가버리자 헌재의달라지는 모습을 바라던 기대까지 허물어지는 기분이 아닐수없다. 새해가 되면 헌재는 곧 또하나의 뜨거운 감자인 {12.12사건}을 다루어야한다. 이미 몇차례의 평의를 가졌지만 난항을 거듭하고있는 현안인데 어제의 결정같은 {발빼기식 작품}이 나오지않겠느냐는 실망어린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있다.헌법정신을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로서 헌재가 제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하위법에 의해 입는 헌법의 상처는 막을수 없으며 나라 근간마저 흔들릴수 있다.통치권자에 부담을 주지않고 자신도 체면을 지킬수있는 방법으로 {곡예적심판}을 해선 안된다. 이제 6년의 역사밖에 되지않지만 그 어떤 국가기관보다당당한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한다. 헌재의 의연함이 헌법정신을 보호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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